문해력의 깊이가 앞으로 그가 꿈꾸고 바라보는 세상의 규모를 결정한다. 지금까지는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 의해서 권력의 지도가 그려졌지만, 이제는 높은 문해력을 가진 사람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된다. 감동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느끼며 그것을 세상에 알려 감동을 주는 일상의 혁신가가 될 것인가. 세상은 간절히 후자를 원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고 주변의 미세한 움직임을 섬세하게 관찰해 그것을 대중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불가피한 결과로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게 된다.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점점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며,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라. 세상은 이미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나는 이미 닥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10, 한 권의 책이 우리 삶을 구할 수 있다면
노력은 하지만 뭔가 이루어지지 않아 걱정이라는 그대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아무 데나 던지는 사람인가, 원하는 곳에 던지는 사람인가? 던지고 싶다고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던질 체력을 기르고, 던질 목표점을 발견하고, 거기로 던질 섬세한 기술을 연습을 통해 하나하나 쟁취해야 한다. 문해력은 결국 시각의 수준과 방향이 결정한다. 쌓는 것이 아니라 배제하는 것이며, 배우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기회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풍경과 지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자신을 허락하지만, 시각적 문해력의 수준에 따라 이를 가져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 p.33, 메시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라
하나의 질문에 답을 낼 줄 알면 앞으로 살아갈 최고의 무기 하나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전히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들을 글로 써서 공개할 때마다 가장 자주 듣는 말과 글은 이것이다. “작가님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을 실천하시네요.” 이유가 뭘까? 먼저 본질이 될 문장을 공개한다.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안다는 것과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 문장에서 함께 나올 수 없다.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 p.68, 알아도 모두가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
언어 능력의 부재로 가진 것의 절반만 전한다는 것은 공들여 준비한 자기 삶을 스스로 절반이나 잘라서 버리는 것과 같다. 능력을 과장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반대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직장에서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네가 하려는 말이 정확하게 뭐야” “그게 문제야? 원인이야? 해결책이야” “앞으로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하나” “결론이 뭐야? 짧게 압축해서 설명할 수 없나” 결국 업종이 무엇이든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위에 나열한 4개의 문장에 대한 답을 끝없이 찾아 제시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각가지 회의와 프레젠테이션이 이루어지고, 그에 맞는 제안서와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외부에서는 고객을 만나 소통을 해야 한다. (…) 일의 중심을 발견하지 못한 채 형체가 흐릿해지며 불안한 이유는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미래를 정한 후 시작한 모든 일에는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반대로 우리가 자기 삶에서 자신감을 잃는 이유는 바로 앞의 미래도 바라보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서다.
--- p.98, 우리가 언어와 싸우는 이유
이기는 게 아니라 돕는 거다. 율곡이 임금에게 늘 백성과 나라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적힌 상소를 올린 것처럼, 우리가 읽은 내용은 우리에게 실천할 사항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율곡의 근본적인 이유는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읽으면 당신이 읽은 그것이 저절로 실천할 것을 알려줄 것이다. 율곡의 관찰 읽기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깊이와 섬세함이 달랐다. 그는 자신이 펼친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와 먼지 하나까지 세세히 바라보고 연구한 후에 “이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의심이 들지 않을 때까지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백성의 어려움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특유의 관찰 읽기법에 있었다. 하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굳이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
--- p.140, 천재도 성장시키는 ‘지적 관찰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