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소소한 어휘 차원의 변화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귓속말로 전해들은 말을 다른 삶에게 다시 귓속말로 옮기는 아이들 놀이 ‘옮겨 말하기’(Chinese Whispers)에서?이 말놀이는 전화기, 전화 교환원, 망가진 전화기, 그레이프 바인, 가십, 우유 마시지마, 비밀 메시지 게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프랑스어로는 아랍 전화 또는 무선 전화 놀이로도 불린다. 놀이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우선 일렬로 줄지어 서거나 둥글게 원을 만든다. 놀이를 시작하는 사람이 전할 문장이나 말을 생각해 옆에 선 두 번째 사람에게 귓속말로 전달한다. 이 사람은 자기 옆에 선 세 번째 사람에게 다시 말을 전달하고, 세 번째 사람은 네 번째 사람에게 말을 전달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놀이를 진행해 나간다. 그러다가 마지막 사람의 차례가 오면, 이 사람이 자기가 전해들은 말(메시지)을 모두에게 알려준다. 이어 애초 메시지를 고안한 사람이 자기가 처음에 속삭였던 말과 그 말을 비교한다. 처음의 말과 마지막 사람이 전해들은 말 사이에는 대개 큰 간극이 존재한다. 재미와 교육적인 측면을 두루 갖춘 이 놀이는 간접적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정보와 해석이 얼마나 쉽사리 변질되는지 보여준다.
--- p.14, 「야콥 파브리시우스, 서문」 중에서
현대의 도시들은 음향적 다양성이 부족하다. 같은 도로에 같은 차들이 달리고, 같은 디자인의 상품들을 팔고 있는 같은 쇼핑몰, 같은 바와 클럽들은 같은 음악을 틀고 같은 술을 팔며 같은 여객기들이 머리 위로 날아 다닌다. 물론 이것이 전부 맞는 말은 아니다. 아래를 볼 때혹은 들을 때라고 말할 수 도 있겠다- 많은 차이를 찾아 볼 수 있다. 서울에 있을 때 한국의 악기들을 사고 싶다고 내 호스트에게 말했다. 처음에 그들은 나를 기타와 드럼, 키보드로 가득 차 있는 상점으로 데려갔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그 다음 우리는 큰 절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는 나무로 된 목탁을 살 수 있었다. 그날 밤, 분주한 거리에서 노인이 박스를 두고 골동품을 파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서 나는 한국 무악에서 쓰는, 가운데 구멍에 보랏빛으로 물든 실크가 꿰어져 엮인 자바라 한 쌍을 샀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 p.54, 「데이비드 툽, 부산을 듣다」 중에서
부산은 인구 340만, 면적 768제곱킬로미터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다. 하나의 산과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부산이 이처럼 성장하기까지 그 중심에는 부산항이 있었다. 흔히 부산을 ‘항구도시’로 일컬을 만큼, 드넓은 바다와 어우러진 거대한 항구는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부산의 상징임에 틀림없다. 이곳은 거대한 수출입 화물선이 바쁘게 드나들고 주홍빛 컨테이너가 겹겹이 쌓여있는 공간 이상이다. 근대 도시 부산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자 내륙을 향해 뻗어나가는 도시 성장 동력의 구심점으로서 시대의 상흔과 번영의 결과들이 누적된 복합체이다.
--- p.82, 「김미영, 부산항에 담긴 시간의 형적」 중에서
부산이 영화적 도시cinematic city-라는 규정은 새롭지 않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먼저 영화를 자신의 산업적, 문화적, 경제적 차원과 통합한 도시, 즉 영화-도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부산은 분명 영화적 도시다. 1996년 최초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부산의 브랜드로 특성화하고자 했던 문민정부 시기 지방자치제의 기획과 부산을 아시아의 문화적 허브cultural hub-로 조성하려는 지역적 프로젝트가 국제영화제를 당시 성장 일로에 놓인 영화산업과 영화문화의 촉매로 수립하고자 했던 영화인들의 열망과 제휴한 결과였다. 줄리안 스트링거-Julian Stringer-의 견해를 활용한다면 ‘영화의 바다’를 브랜드 이미지로 수립한 부산국제영화제는 “글로벌/로컬 동역학에 참여하고 로컬 영화 문화의 국제적 차원을 충분히 시사하는 행사”로서 “시네필리아라는 공유된 감각과 문화적 교환의 역동적 과정에 대한 참여에 근거한 진정한 로컬 도시 정체성을 낳을 수” 있었다.
--- p.90, 「김지훈, 부산을 기록하기: 김정근, 오민욱의 영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