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를 간병하며 불안해하는, 세상의 수많은 지영 씨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마음은 앞서지만 방법을 모르는 초기 치매환자와 보호자들이 궁금해 하는, 어떻게 하면 치매를 예방하고 악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뇌졸중보다도 치매를 더 두려워한다. 이상행동을 하는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심리 탓이기도 하다. 치매에 걸리면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결국 가족이나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치매란 환자 혼자만의 질병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을 파먹는 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치매 치료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부는 젊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도전해나가면 우리의 뇌는 점점 새로워진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본적으로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질환이다. 내측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대뇌피질과 상호작용하여 들어온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방금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밥을 먹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단기기억을 공고화하여 장기기억으로 변환하지 못하는 탓이다.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것은 기억의 저장이 아니라 ‘인출’과 관련된 기능이다. 초기 알츠하이머 치매환자는 수십 년 전의 일을 떠올리는 데 문제가 없다. 기억의 인출은 내측두엽이나 해마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있었던 경험과 정보를 저장하지 못하니 이야기할 것이라고는 예전 기억밖에 없다. 옛날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신경세포는 새로 생성되지 않지만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되고 기존의 시냅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신경세포의 기능도 바뀐다. 운동기능을 담당하던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주위의 세포들이 변화하여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뇌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다. 어제와 같은 뇌는 없다. 뇌는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새로운 영역을 넓히기도 하고 차지했던 영토를 빼앗기기도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에서 우리는 기억 유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뇌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쌓이면 그것이 기억력 저하를 막는 든든한 방벽이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얼굴이 아닌 두뇌를 성형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기억의 시냅스가 1,000개인 사람과 100개인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신경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남아있는 인지능력의 차이는 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뇌 부자가 되어야 한다. 되도록 많은 시냅스를 형성해서 인지예비능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잃더라도 남는 것이 많게 된다.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하고 친목모임을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다채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때마다 뇌는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한다. 집에만 틀어박혀있으면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인지예비능은 고갈되어간다. 멍하게 있다 보니 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운동을 해서 자극을 주어야 근육이 자라는 것처럼, 뇌도 자극이 필요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권한다. 자기 전도 좋고,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도 좋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자.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혼잣말도 좋다. 말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머릿속에 있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에 큰 자극을 준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 하루에 한 가지만이라도 새롭게 습득한 지식이나 지혜가 있다면 대뇌피질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인지예비능을 늘려줄 것이다.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첫걸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에 비해 깜박거리는 일이 잦아졌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트레스나 과로처럼 가볍고 일시적인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건망증이 지속된다면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경도인지장애가 치매의 위험신호라면, 건망증은 경도인지장애의 위험신호다.
전두엽은 뇌의 CEO이자 사람 그 자체의 CEO다. CEO가 사라진 회사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지 못한다.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면 당신의 뇌에서 일하는 CEO가 근무태만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커피머신이 되는 순간, 이미 전두엽은 점점 일을 하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꼰대 소리를 듣고 있다면 더 이상 젊은 시절의 말랑말랑한 뇌가 아닌, 에누리 없이 고지식한 뇌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미 위험지역에 발을 들인 것이다. 두뇌성형을 통해 예전의 뇌로 돌아가야 한다.
몸이 아프면 뇌도 아프다. 몸이 아프면 없던 치매도 생기게 된다.
하나를 깊게 파는 것도 좋지만, 뇌는 넓게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뇌가 건강해진다. 실제로 내가 진료했던 환자 중에는 은행 지점장, 교장선생님 등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도 많았다. 그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도 좋지만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여 디지털 기기가 발전할수록 딱히 기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전화번호야 스마트폰에 다 담겨있으니 외울 일이 없고, 스케줄도 다 저장되어 알람으로 알려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친구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알람이 뜨고, 외우기 어려운 것은 그냥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저장하면 된다. 정보가 뇌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에 저장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뇌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사용하지 않는 뇌는 퇴화할 수밖에 없다. 뇌에 저장된 게 없으니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정보를 인출할 수도 없다. 디지털 치매다.
요리를 하는 것에는 매우 많은 인지능력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야 하고, 손을 잘 놀려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후각과 미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렇기에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도 인지능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음식을 잘 하던 분이 갑자기 음식 맛이 바뀌면 인지저하의 징후로 보기도 한다. 가끔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매번 익숙한 요리만 하는 것보다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상, 젊을 때 나타난 우울증은 치매의 위험을 높이고, 노년에 나타난 우울증은 치매의 초기증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운동은 근력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근력이 있어야 야외활동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즉, 운동 자체가 인지예비능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걷고 산책하자. 그것만으로도 뇌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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