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는, 처음으로 마음의 소리를 채집하게 해준 공간이다. 숲속에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장소는 오직 텐트뿐이다. 내가 가진 2인용 작은 텐트는 따뜻한 잠자리는 물론이고, 도시에서 다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병실의 역할도 했다. 때로는 허기를 달래는 식당, 술을 마시는 바로 변모했으며, 누군가와 함께할 때는 전망 좋은(!) 카페가 되기도 했다.
--- p.14, 「내집 마련의 꿈-텐트」 중에서
비닐 타프 위로 ‘타닥타닥’ 소리 내며 떨어진 빗방울은 금세 합쳐져 물줄기가 되고 고인 빗물은 ‘스르륵’ 처마 끝에 모여 쏟아진다. 가끔 비가 그치면 투명한 창 위로 별들이 쏟아질 듯 보였다. 비가 내린 아침이면 봉우리나 계곡 사이로 생긴 운해를 보곤 했다. 그것은 언제나 상상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 p.18, 「빗방울에 취하던 밤-타프」 중에서
여러 차례의 추위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2만 원짜리 발포 매트리스가 100만 원에 달하는 따뜻한 침낭보다 훨씬 요긴하다는 것. 그만큼 한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캠핑의 매력이란, 이토록 다양한 방해 요인을 헤치고 끝내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인위적인 모험, 그게 캠핑이다.
--- p.30, 「침낭보다 중요해-매트리스」 중에서
석유 랜턴과 가스 랜턴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노을의 빛을 닮아서다. 그 등불 앞에서 서면 누구나 솔직해진다. 이건 그저 마법이라고밖엔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다.
--- p.34, 「등불 앞에 서면 누구나 솔직해진다-랜턴」 중에서
항상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높은 건물을 짓고 그 위에서 내려만 보려는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을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높이는 땅과 가장 가까울 때다. 그래서 오늘도 산으로, 바다로 뛰쳐나간다. 낮은 캠핑 의자에 앉아 대지의 온도를 느낀다. 들풀이 바람에 눕는 모습을 보고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그리고 나는 오늘 누군가의 행동과 표정에, 누군가의 목소리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 p.38, 「대지의 온도-의자」 중에서
방수 재킷은, 이처럼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를 잠시 보관해주는 장소다. 겨울 산행에서 느끼는 눈과 추위, 바람과 같은 물리적인 경험은 방수 재킷의 겉면에 묻어난다. 내면을 성숙하게 하는 사유와 깨달음 같은 것은 방수 재킷 안쪽 면에 흥건히 고여 있다고 믿는다.
--- p.84, 「고독의 힘-방수 재킷」 중에서
사대부들이 산에 오를 땐 작은 가마나 말을 탔다. 물론 걷기도 했다. 적게는 10명 미만,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인원을 대동했고, 이불, 화롯대, 밥솥까지 산에서 수일간 머물 수 있도록 많은 생필품을 지고 다녔다. 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으면 3일, 길면 수십 일이었는데 잠자리는 대부분 절이나 산 밑에 있는 지인의 집이었다. 유람을 떠난 사대부가 늦은 시간까지 숙소에 도착하지 못해 산에서 잠든 기록도 볼 수 있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수백 년 전부터 이 땅에도 캠핑은 존재했다. 다른 것은 그저 장비일 뿐.
--- p.102, 「조선의 캠핑 기록, 산수화-펜과 종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