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은 흐른다’는 진리를 절감하는 순간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스스로가 작아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떡국을 먹고 멋진 새해 계획을 세워봅니다. 저는 새해 계획에 희망만을 가득 담습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굳은 포부를 가져봅니다. 그러고 나면 왠지 운명의 지배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말이지요.
장엄한 대자연을 홀로 마주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다는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보여요. 그 신의 영역 앞에 지팡이를 짚은 남자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고독해 보이지만 자연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요.
저는 자연을 ‘운명’이라는 말로 바꿔봅니다.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로도 불리는 프리드리히의 운명은 누구보다 가혹했어요.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엄마가 천연두로 돌아가시고, 이후 두 누이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열세 살에는 형이 스케이트를 타다 호수에 빠진 프리드리히를 구하고 익사한 사건까지 일어나지요. 이처럼 가혹한 운명을 마주했던 프리드리히는 적막감이 감도는 쓸쓸한 풍경에 ‘고난에 빠진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담아냈습니다.
--- p.18, 「1 WEEK_희망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중에서
다시 그림을 봅니다. 그는 입술이 아닌 뺨에 키스합니다. 자꾸 무너져내리는 몸을 겨우겨우 그에게 기댄 채 서 있습니다. 그녀는 진실을 외면하며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아야만 꽃밭인 사랑입니다. 〈키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플뢰게가 클림트와 주고받던 편지를 태우지만 않았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드러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림트는 플뢰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을까요? 둘은 어쩌면 그림 속 남녀의 모습처럼 서로의 몸에 기대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앗, 제가 환상을 깨버렸나요? 클림트의 개인사에 비춰 그림을 봤더니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들춰졌네요. 하지만 사랑만이 세상을 한순간에 온통 금빛으로 물들게 한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환상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 일상에 사랑이라는 꽃이 피면 좋겠습니다. 금박의 화려한 옷으로 둘러싸이지 않더라도 발밑에 있는 작은 꽃밭과도 같은 사랑이 남아 있길 바랍니다.
--- p.36, 「5 WEEKS_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중에서
라르손은 ‘삶이 곧 예술’이라는 평범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가치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야 조용히 책을 읽는 아내의 모습, 아이들이 놀고 숙제하고 바느질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축하 파티를 준비하는 등 소소한 일상과 함께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화폭에 녹여냈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에게 안락한 가정을 선사했던 그의 진심은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어요.
라르손의 가정은 부부가 ‘애써’ 일궈낸 예술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보잘것없는 제 일상도 예술이었다는 위로를 받습니다. 반복되는 청소와 밥을 하는 일이 허무하고 그저 지루하기만 했는데, 가정을 꾸리는 손길이, 밥 한 그릇이 예술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은 저도 예술을 하며 살고 있던 거였어요!
때로는 때려치우고 싶었던 일상의 예술이지만 라르손이 다독여줍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모두가 애쓰고 있다고 말입니다.
--- p.119, 「20 WEEKS_일상을 예술로 만들다: 칼 라르손 〈숙제를 하는 에스뵈욘〉」 중에서
유독 밤에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외로움 같은 내면의 감정들처럼요. 어쩌면 고흐도 저 틈에 끼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흐는 화가들이 연합해 자기 그림을 공동체 소유로 하고 그림을 판 돈을 나눠 가지는 화가 공동체를 꿈꿨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작업이 아닌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위대한 인상파 화가들이 자신의 권익을 유지하며 에드가 드가,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카미유 피사로와 함께 카페에서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길 바랐지요. 경제적인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작업했던 그였기 때문에 화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자의적으로 색채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려한 색채로 낮보다 밝고 아름답게 표현된 밤의 카페 테라스는 어두운 현실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 하는 고흐의 마음을 나타낸 게 아닐까요?
--- p.134, 「23 WEEKS_끝내 이룰 수 없었던, 그러나 영원히 바라는 꿈: 빈센트 반 고흐 〈아를르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중에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죽음과도 같다. 내 작품은 언제나 민족혼을 주제로 시대적인 여과 과정을 거쳐 국제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군상〉에는 민족혼이 담겨 있습니다. 3·1 운동, 8·15 광복, 광주민주화 운동 등 의로운 선조들의 혼을 느끼게 하고, 현재 나의 삶을 있게 해준 감사한 유산을 되새길 수 있게 합니다. 나는 내 의로운 선조들에게서 왔다는 자부심과 감동, 감사함이 밀려듭니다. 지금 제 삶이 얼마나 감사한 유산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나의 찬란한 하루도 선조들에게서 왔음을 기억하겠습니다.
--- p.190, 「33 WEEKS_선조의 혼이 담긴 몸짓: 이응노 〈군상〉」 중에서
꽃과 마릴린 먼로, 코카콜라와 캠벨 수프 등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함께 똑같이 즐길 수 있도록 대량 생산했던 앤디 워홀. 크리스마스도 많은 사람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을 담아 크리스마스 카드를 대량으로 만들었을 테지요. 아기 천사가 날아드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성스러우면서도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워홀의 의외의 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즐겁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크리스마스입니다. 이날은 한 명이라도 슬퍼해서는 안 되는 날이라고 워홀은 생각했겠지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여러분에게 워홀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선물합니다.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 p.277, 「51 WEEKS_해피 크리스마스: 앤디 워홀 〈크리스마스트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