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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08쪽 | 656g | 128*188*35mm
ISBN13 9788932912660
ISBN10 8932912661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건 망신이야. 우리 중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이 있고, 그중 몇은 성유를 바른 악당이지. 하지만 젠장, 우리는 직업적 존엄성을 지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여기저기 떠도는 땜장이보다 나을 게 없잖아. 우리는 신뢰를 받고 있어. 내 말 알아듣겠어? 신뢰를 받는다고! 솔직히, 나는 아시아에서 온 그 모든 순례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하지만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낡은 넝마 짐짝을 싣고 간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아. 우리는 조직화된 집단이 아니야. 그러니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그런 인간다움이라는 명분뿐이지.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면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거야. 강인함을 보일 기회가 전혀 없이 바다 생활을 거의 마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기회가 왔을 때는…… 아! 만약 내가…….
--- p.97

〈선장님은 제 등 뒤로 뱃머리 아래쪽 갑판에서만 160명이 곤히 잠들어 있고, 고물 쪽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잠든 상황에서 제가 저 자신만 생각했을 거라고 여기십니까? 그리고 위쪽 갑판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습니다. 설사 시간이 있었다 할지라도, 구명정에 태울 수 있는 사람 수보다 세 배는 더 많은 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제 눈앞에서 철판이 갈라지고 그 사람들이 누워 있는 곳으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어둡고 동굴 같은 곳에서 대양의 물이 가하는 무게를 버티는 칸막이벽과, 벽 일부를 비추는 공 모양 램프 불빛 아래 아무런 의식도 없이 잠든 승객들의 숨소리를 듣는 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떨어져 나온 녹 덩어리를 보고 깜짝 놀라며 절박한 죽음의 예감에 짓눌린 짐이 철판을 응시하는 모습도 눈앞에 그려지고.
--- p.119~120

판에 의지해 침몰을 간신히 면한 채 뱃머리를 숙이고 있는 배를 선장님은 지켜보신 적 있나요? 네? 배를 버틴다! 저는 그 부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칸막이벽에 5분 안에 버팀목을 댈 수 있겠습니까? 아니, 50분이 있다고 해도 가능하겠습니까? 배 아래로 내려갈 사람은 어디서 구하고요? 그리고 버팀목은요? 버팀목을 어디서 구한단 말입니까! 그 칸막이벽을 본다면 그 누구도 감히 버팀목을 세우기 위해 한 번이라도 메질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겁니다. 선장님은 했을 거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선장님은 직접 보지 않으셨잖습니까. 그 누구도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제길, 그런 일을 하려면 적어도 가망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천에 하나라도 가망이 있어야 한다고요. 실오라기 같은 가망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벽을 보셨다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없으셨을 겁니다. 그 누구도 그런 믿음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선장님은 제가 그곳에 그냥 서 있기만 했다고 저를 망나니 놈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선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어떻게요! 알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요. 상황을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장님이라면 제게 무슨 일을 시키셨겠습니까? 저 혼자 힘으로는 구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승객 모두를 겁에 질려 미치게 만드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보세요! 지금 제가 선장님 앞에서 이렇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건 확실한 사실이었어요…….
--- p.129~130

〈증기선의 빛이 사라진 뒤, 그 구명정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절대 그 일을 알 수 없을 거고요. 저는 그걸 느꼈고,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어둡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널찍한 무덤에 갇힌 산 사람들 같았습니다. 세상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의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화를 시작한 뒤 세 번째로 짐은 거칠게 웃어 댔지만, 주위엔 짐이 그냥 술 취해서 그런다고 생각할 사람조차 없었어. 〈두려움도 없었고, 법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고, 눈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해가 뜰 때까지는 우리 자신의 눈조차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짐의 말이 의미하는 진실에 충격을 받았어.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보트에는 무언가 특이한 데가 있지. 구명정의 지탱을 받아 죽음의 그림자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간신히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그 위로 광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탄 배가 우리를 배반하면 온 세상이 우리를 배반하는 것처럼 보여. 우리를 만들어 내고, 통제하고, 돌봐 온 세상이 말이야. (……) 하지만 특히 이 조난 사고에는 그자들을 더욱 철저히 고립시키는 비참한 뭔가가 더 있었어. 상황의 극악함이 그자들을 나머지 세상 사람들, 즉 그토록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농담에 본인의 이상적 행동 규범을 시험당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철저하게 격리시켰어.
--- p.168~170

침몰해 죽거나 헤엄을 쳐서 살아나야 할 운명을 이미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은 이제 막 배에 발을 내딛는, 빛나는 눈으로 광대한 바다의 반짝임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에게 마음이 쏠려. 사실 그 반짝임은 자신들 눈 속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수면에 반사된 것일 뿐이라는 걸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말이야. 그리고 이런 심정이 되는 걸로 따지면, 이 세상 어떤 직업의 사람들보다 선원들이 가장 대단하지. 우린 다들 각자 기대하는 게 있어서 바다로 왔고, 엄청나게 막연한 기대감, 가슴이 두근거리는 불확실성, 모험에 대한 찬란한 욕구, 그런 각자의 고유하면서 유일한 자기만족 때문에 바다로 왔어!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얻는 것은…… 뭐, 그 이야기는 하지 말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환상과 현실 간 괴리가 선원만큼 큰 경우는 없어. 선원의 삶처럼 온통 환상으로 시작해서 재빨리 현실에 눈을 뜨고, 게다가 그보다 더 빠르게 현실에 철저히 복종하는 경우는 다른 직종의 삶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 우리 모두는 똑같은 욕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똑같은 것을 알며 선원 생활을 끝내게 되고, 야비하고 저주받은 날들을 거치면서도 똑같이 소중히 여긴 황홀한 매력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잖아.
--- p.180~181

우리가 다른 사람의 가장 깊숙한 필요를 파악하려 애쓸 때, 바로 그때 우리는 깨닫게 돼. 우리와 함께 별을 보고 함께 태양의 온기를 쬐는 사람들이 실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흔들리고, 모호한지 말이야. 마치 존재하려면 외로움이라는 가혹한 절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만 같지. 우리는 피와 살로 된 육신을 똑바로 바라보지만, 그 육신은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녹아 버리고, 어떤 눈으로도 좇을 수 없고 어떤 손으로도 잡을 수 없는, 변덕스럽고 위로할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유령만이 남아.
---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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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콘래드의 모든 작품 중 최고이다.
- 버지니아 울프
콘래드는 영문학에서, 아니 모든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이다.
- 프랭크 레이먼드 리비스
세계에 대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려 해도 결국은 환상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가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콘래드의 생각이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틀림없이 그는 산문에서 이제까지 출현한 가장 잊을 수 없는 존재이다.
-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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