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이 부는 10월 어느 날의 깊은 새벽,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데번주 남부의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은 낡은 시골 택시를 내렸다.
---「첫 문장」중에서
3시간 전 빈에서, 매그너스의 아내 메리 핌은 자기 방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남편이 선택한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놀라우리 만치 고요한 세상이 거기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커튼을 닫지도 않고, 불을 켜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그녀를 보았다면 손님 맞을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는 파란색 풀오버와 카디건 차림으로 1시간 동안 창가에 서서 차가 오기를, 초인종이 울리기를, 남편이 열쇠를 부드럽게 돌리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는, 매그너스와 잭 브러더후드 중 누구를 그녀가 먼저 받아들이게 될지를 두고 불공정한 경주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 p.24
메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이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토록 다급하게 여러 사람이 난입할 줄은. 잭 브러더후드의 분노가 이토록 크고 복잡할 줄은. 그의 당혹감이 그녀의 당혹감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와준 것이 이토록 지독히 위안이 될 줄도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현관홀로 들어온 그는 메리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너는 눈치를 채고 있었나?」 「그랬다면 당신에게 말했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제대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싸움부터 하는 꼴이었다. 「누구에게서도 연락이 없다고? 아까 그대로라고?」 「네.」 「그가 전에도 이렇게 사라진 적이 있나? 네가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그녀가 계속 더듬거리는 동안 브러더후드가 다그치듯 물었다. 「아뇨.」 「난 솔직한 걸 원해, 메리. 런던 전체가 지금 내 목을 노리고 있어. 보는 우울증에 빠졌고 나이절은 대사와 함께 처박혀 있지. 이런 한밤중에 아무 이유도 없이 공군 비행기가 날지는 않아.」
나이절은 보 브래멀이 부리는 사형 집행인이라고 매그너스가 말한 적이 있었다. 보는 모든 사람에게 두말하면 잔소리라면서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고, 나이절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의 목을 자른다고. 「없어요, 그런 적은. 맹세코.」 메리가 말했다. 「어디든 그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 자기만의 은신처라든가.」 「한번 아일랜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농가를 사서 글을 쓰고 싶다고요.」 「북쪽, 남쪽?」 「몰라요. 남쪽 같기도 하고. 바다만 있다면요. 그러다 갑자기 바하마가 나왔어요. 좀 더 최근에.」
「거기 누가 있는데?」「아무도 없어요. 내가 아는 한은.」 「혹시 저쪽 편으로 가는 얘기를 한 적은 없나? 흑해 옆의 작은 러시아 별장이라든가.」「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그래, 처음에는 아일랜드, 그다음에는 바하마라. 바하마 얘기는 언제 한 거지?」「말 안 했어요. 『타임스』에 실린 부동산 광고에 표시를 해둔 걸 내가 본 거예요.」「무슨 신호 같은 건가?」「질책이에요. 날 다그친 거죠.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살고 싶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매그너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니까요.」 「자신을 처리한다는 얘기를 한 적은? 사람들이 네게 물어볼 거야, 메리. 그러니 내가 먼저 묻는 편이 낫겠지.」 「아뇨, 아뇨, 그런 적 없어요.」
--- p.103
벽장은 낡은 옷더미와 다락방 잡동사니 뒤편 구석에 있었다. 핌은 어떻게든 벽장문으로 다가가 힘껏 열었다. 릭은 계속 쾅쾅 소리를 내면서 서류함의 서랍들을 닫고 열쇠를 돌려 잠갔다. 그러고는 핌의 팔을 붙잡고, 그의 바지 주머니 깊숙이 열쇠를 찔러 넣었다. 모직 바지의 주머니가 작아서 열쇠 하나와 작은 사탕 봉지 하나가 간신히 들어갔다. 「그걸 머스폴 씨한테 줘, 알았니? 꼭 머스폴한테 줘야 돼. 그러고 나서 이 서류함이 있는 곳을 머스폴에게 가르쳐 주면 된다. 여기까지 데려와서 가르쳐 줘. 다른 사람은 안 돼. 너, 아빠를 사랑하지?」 「네.」「그래, 됐다.」핌은 파수병처럼 자랑스럽게 벽장문을 잡아 주었다. 릭은 바퀴가 달린 서류함을 굴려서 벽장 안으로, 더 어두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온갖 잡동사니들을 던져서 서류함을 완전히 감춰 버렸다. 「어디 있는지 알겠지?」「네.」「문 닫아라.」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