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90년생 여성 임지은이 살아오며 마주한 것 중 덜 모르겠는 것 위주로 써내려간 수필이다. 임지은이 근 몇 년간 써온 것 중 가장 나은 실패작들이며, 임지은의 애매한 마음들이 거기 있음을 저 나름 존중해온 결과이다. 책은 페미니즘 에세이라고 알려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여도 괜찮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내 삶을 이야기하려는데 내가 사는 사회를 경유하지 않을 수는 없고, 몇 년간 페미니즘은 내가 그 사회와 더불어 내 마음을 응시하게 하는 힘을 길러주었으니까.
--- 「서문」 」 중에서
그런 걸 떠올리며 나는 카메라를 가져오고, 사진을 찍기 싫다는 미경을 어르고 보채 가끔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 같이 맥락 없는 말을 뱉으면서 자꾸 미경에게 말을 걸고, 내가 즐거워한다는 걸 숨기지 않으면서 자꾸 미경에게 다가간다. 실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을 쏟아가며 자꾸 미경에게 기대한다. 내가 아는 가장 제대로 된 사랑을 나도 흉내 내보는 것이다. 현상한 필름 속 미경은 나를 보며 아기처럼 웃고 있다. 나는 메모를 열고 사진을 붙인 뒤 우리가 가진 건 과정뿐, 이라고 적어두었다.
--- 「1부 1장 ‘나의 페미니즘은 왜 엄마를 밀어내는가’」 중에서
나는 이혼가정이라는 단어가 싫지 않다. 그 단어는 내가 무엇을 겪어낸 사람인지 알려주는 동시에 내 부모가 이별을 회피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단단한 사람들만이 부서질 수 있다. 정면으로 상실해본 내 가족의 얼굴들은 부서졌지만 사라지진 않았고, 단지 이별한 자리에 남아 윤슬처럼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다.
--- 「1부 2장 ‘이혼한 부모를 가진 이에게’」 중에서
말하자면 내가 지난 십 년간 살아온 곳은 이혼시 고추없어구 여자셋만살아동 만만한번지일 것이다. 그곳의 거주자들은 남성의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리를 비워둔 가난한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온갖 형태로 꾸준히 감각해야 했어서. 나는 곤죽이 된 마음으로 자주 미래를 의심했고 어느 새벽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 「1부 3장 ‘이혼시 고추없어구 여자셋만살아동 만만한번지’」 중에서
어제는 슬쩍 효원의 노트 필기를 보았다. 익숙한 글씨체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된다.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이 자주 그렇듯 수험생 시절 나는 내용보다는 글씨체에 공을 들이며 공부를 했다. 효원이 그런 내 노트를 가져가 필체 연습을 한 건 나중에 알았다. 자매의 글씨체는 같다. 나를 미워하기 충분했던 시절부터 효원은 자기만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 애는 나를 늘 지독하게 짝사랑하고 있었다.
--- 「1부 6장 ‘달려라, 효원’」 중에서
영훈은 예뻤다. 드러난 영훈의 팔이고 얼굴이고 나는 자꾸 쓰다듬거나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영훈이 내가 하듯 날 욕망해주길 바랐고, 그런 내 마음은 청결하긴커녕 언제나 추잡스럽고 비위생적이었다. 살균 컵을 써봤자 말짱 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훈이 내 삶을 어떻게 위협할지도 모르면서 그와의 미래를 알고 싶었다. 기어코 무언가를 무릅써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사랑에 있어 확신을 찾거나 무해함을 메리트로 여기던 내 태도를 슬그머니 쓰레기통에 버렸다.
--- 「1부 8장 ‘페미니스트가 남자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상)’」 중에서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떤 여성이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거나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지나치게 자주 접한다. 겪었거나 겪을 뻔했거나 겪을지도 모르는 일들로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나와 달리 영훈은 어떤 이유건 간에 덤덤할 때가 있다. 같은 일을 두고도 감정의 농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영훈이 내가 살아온 지옥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다는 걸, 그런 우리가 동등할 리 없다는 걸 새삼 깨닫고 혼자 읊조린다. 시발…. 지 세상은 괜찮으니 상관없다 이거지….
--- 「1부 9장 ‘페미니스트가 남자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 중에서
여성학회 여자의 비난이 떠올라 움츠러들 때면 건네받은 그날의 언어를 가만가만 꺼내 본다. 다정한 그 말들이 여태껏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만들어준 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진짜 페미니스트의 자격이나 그에 대한 나 자신의 해당 여부는 알지 못하고, 단지 몇 가지만을 수긍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잘 빨아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성에게 들었던 말만큼이나 잘 빨아준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들었던 말 역시 한 여성의 삶을 파괴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선 현실 속 다정함을 축적해야 가능했다.
--- 「2부 1장 ‘소화되지 않는 말과 기왕의 다정함’」 중에서
내가 혐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 때는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무해하다는 편견 같은 걸 가진 사람을 바라볼 때다. 그래서 끝내 그가 면적을 논하고자 하는 내 말들을 듣지 않았을 때, 자신은 소수자이자 약자이고 그럴 리 없다고 분개했을 때 나는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신이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고.
--- 「2부 2장 ‘약자‘도’ 상처를 준다’」 중에서
언어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다. 나는 내 부모나 운이 나쁜 친구들에게 왜 세련되게 말하지 못하느냐고 탓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학력에서 배운 거라곤 그게 전부다. 언어는 때로 특권이며, 나 자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방어하거나 설득할 수 있다는 걸로 말미암아 특권이 증명된다는 것. 연예인에게는 그런 세련된 지성의 언어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고인들은 알려주었다.
--- 「2부 3장 ‘K가 김희철에게 했어야 하는 건’」 중에서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나’를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고 무한 긍정하라는 바디 포지티브의 주장은 내가 매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건드리면서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전보다 퉁퉁한 내 팔뚝이 미웠고 잡히는 뱃살이 괜찮지도 않았다. 거리와 티브이 속에선 여전히 마른 여자들이 걸어 다녔다. 어떤 몸을 선호하거나 혐오하는 사회의 풍토를 모른 척하고서, 나를 미워하는 나를 돌보지 않으면서, 그런 게 괜찮지 않은 마음에 대해 더 충분히 들어주지 않고서 갑자기 내 몸을 긍정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건 내게 가능하지 않았다
--- 「2부 6장 ‘바디 포지티브 대실패’」 중에서
그러나 어떤 동네에서는 좁은 골목 어딘가의 차에서, 어린아이의 무지를 이용해 천 원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사람이 있다. 어떤 동네에서는 여자아이의 자라지도 않은 가슴을 주물거리며 골목을 배회하는 다 자란 남성이 있다. 같은 동네의 골목에서마저 균형은 없다. 거기서 자란 남성은 그 골목의 정다움을 기억하고, 거기서 자란 여성은 자기 딸을 걱정한다. 미아동 내 친구는 내가 겪은 일을 모른다.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불균형 속에서 자란다.
--- 「3부 1장 ‘균형 감각’」 중에서
그러나 나는 거기서조차 피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했다. 그 시절부터 느꼈던 두려움이나 무력감에 대해, 어느 성별과 가까워야 성당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던 성당의 여자들에 대해, 여전히 또 언제까지나 성모마리아는 조용히 바깥에 머물러 있던 일에 대해…. 그러니까 내가 겪을 삶의 예고편과도 같았던 그 기억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이 없는 옛 친구에게 기도하듯 묻는 밤들이 있었다. 여전히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흐린 하느님에게 말을 거는 밤들이.
--- 「3부 2장 ‘성당에서의 사춘기’」 중에서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로 ‘합리적’이기 위해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범죄들이 뒤늦게 문제가 되는 지금, 어쩌면 범죄를 용인하고 추동해온 기존 사회란 가해자 위주의 소통 양식을 선택하고 통지해온 게 아닐까? 그들이 말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소통의 양식은 피해자를 대변할 수 있을까? 이 사회와 사회의 시민들은 이제라도 기존의 소통이 여성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을 누락시켜
왔다는 맥락에 주목하고, 그와 다른 소통 방식을 구체화해야 하는 게 아닐까?
--- 「3부 6장 ‘N번방을 대하는 당신의 정확한 언어’」 중에서
내게 미투 운동의 의미는 거기 있다. 때론 정당한 그 감각을 더는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는 여성들에게서, 훼손된 얼굴과 유해한 존재로도 기어이 살아가기를 선택한 여성들에게서, 그것이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한 측면임을 인정하는 여성들에게서 나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는데.
--- 「3부 7장 ‘거기 무해하려고 죽은 사람이 있었다’」 중에서
그러니까, 나는 그 무엇도 네겐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싶어 충동적으로 클리닉을 찾아간 거였다. 아무것
도 필요하지 않은데? 이대로도 충분해, 당신 같은 사람을 몰라보는 사람들이 바보야 바보! 막막했던 나는 어떤 권위자가 나의 충분함을 진단해줄 거라 믿었고 그런 싸구려 대사라도 리버브되어 들릴 거라 믿었다. 나는 선량한 의사와 선량한 자본주의에 감사하며 나에 대한 믿음을 다잡는 아주 멍청한 시나리오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 「4부 1장 ‘어느 날의 성형외과’」 중에서
그 시기에 나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따돌림은 싸우고 물리칠 수 있는 명확한 대상이 아닌, 저항할 수 없게 내려앉은 분위기 같은 거였다. 밤마다 아이팟에 하루치의 음악을 잔뜩 업로드해 놓아야 다음 날 모르는 척 간신히 버틸 수 있는 그런 거. 나는 매일 귀에 이어폰을 꽂았고, 급식 대신 싸 온 도시락을 먹거나 밥을 굶곤 했다. 그날 텅 빈 교실에서 나는 김진희의 핸드폰을 함부로 계속 여닫으며 문자를 보고 또 봤다. 임지은이 싫고 불편하다는 문자를 한 번 읽고, 임지랑 같이 밥 먹자, 그 문자를 두 번 읽고, 그렇게. 그 문자를 훔쳐보고 지옥 같았던 고3 시절을 견뎌냈다. 나중에 이 얘기를 해줬더니 김진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 니 뒷담화도 많이 했는데 네가 본 문자가 하필 그 문자라 다행임, 하고 제 발 저려 했다.
--- 「4부 4장 ‘내 친구 김진희’」 중에서
얼마 전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지 않다고 증명해야 하거나 반대로 이상함을 증명해야 하는 관계에서는 멀리 도망가라고. 나에 대한 증거는 나뿐이니까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어쩌면 그래서 슈에무라도 멀리 도망간 거 아닐까. 증명하지 않으려고. 그 애는 그 애 자신이 나와 같다고 증명하거나 나와 다르게 특별하다고 증명하려고 애쓰던 과정 중에 날 만난 건 아닌지. 나는 그 애의 남다름 혹은 나와 같음을 그 스스로
증명해보라며 부추기고 이용해버린 건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 애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지….
--- 「4부 5장 ‘나의 게이 친구 슈에무라’」 중에서
사람들이 서비스를 말할 때마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장사하는 사람 속은 개도 안 먹어. 다 문드러졌거든.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들에게 엄마는 지쳐 있었다. 한 손님이 12,000원어치 음식을 먹고 주정을 부리다 사라진 날이었다. 그 돈이라도 벌겠다고 나와 있지만, 그 돈 주고서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줄 모르겠다고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와 막 토를 치운 참이었다.
--- 「4부 6장 ‘승객과 택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