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목회는 마을을 품고 세상을 살리는 목회를 지향한다. 지역사회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세계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목회로, 지역과 함께 세계를 품는 일종의 ‘글로컬’(glocal)한 목회를 강조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글로컬이 아니라, ‘로글로’(loglo)로서 지역사회를 우선으로 강조하면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목회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의 세계화는 지역사회를 생략하며 무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지역사회에 방점을 두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로글로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서문 _ 마을목회와 프런티어 교회들_노영상」중에서
마을공동체 회복은 단순히 마을을 만든다는 물리적이고 위로부터의 기획의 측면에서 벗어나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시민의 주도적 참여를 끌어내 시민자치를 확대하고 연결망을 복원하며 경쟁을 넘어선 호혜의 경제를 일으키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을 품는 교회인 ‘마을교회’의 부활은 마을 운동에 얼마나 잘 참여하느냐 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 사업의 세속성이 초래하는 위기들이 그 공동체를 전복시키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거룩성 혹은 초월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마을교회의 중재적 역할만이 세속적 마을공동체 운동이 그 과정 중에 맞이하게 될 무력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을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풍요로운 삶 속에서 한국교회는 풍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그 풍요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묻게 하는 빈자리, 낮은 곳이 되어야 한다.
---「1장 _ 마을을 품는 교회_민건동」중에서
일단 교회 공간부터 철저하게 마을 주민들을 먼저 배려하여 운영했다. 인근 식당과 유흥업소, 마을 주민들과 늘 마찰을 빚었던 주차장을 상시 개방하여 예배 시간 외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도록 했다.예배 소음으로 불편해하는 이웃들을 위해 교회 창문을 모두 메우고 흡음재를 시공해서 찬양이나 기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했다. 40년 이상 운영하던 어린이 선교원도 과감히 폐원하여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이양했다. 다락방 사랑방 소그룹 순모임도 가능하면 교회에서 하지 않고 인근 식당, 혹은 커피숍에서 하게 해서 매출을 올리도록 도왔다.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든, 그곳이 교회든, 마을이든, 아니면 해외 선교지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선교사로 살아가는 선교적 삶을 사는 이들의 공동체가 곧 끌어모으는 선교적 교회다.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할 때 지역에서 매력적인 공동체가 되고, 사람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 공동체, 사랑 공동체가 되리라 확신한다.
---「2장_ 끌어모으는 선교적 교회 마을목회론_김윤태」중에서
교회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고, 약한 자들을 돕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사회로부터 많은 관심과 환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회적인 신뢰도는 급감하고 있고,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자는 교회가 사회를 외면하고, 교회 안에서 울타리를 치고, 세상과 단절한 채 개교회주의로 전락한 데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인 ‘디아코니아’(섬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진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교회가 다시 지역사회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팔로 감싸 안아 주신 것처럼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 지역과 소통하며 지역을 섬기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3장_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디아코니아 예배_김한호」중에서
우리는 흔히 치유(Healing)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는 마음의 치유를 연상하기 쉽지만, 넓은 의미의 치유는 영, 혼, 육의 치유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영(Spirit)의 죄악과 혼(Soul)의 상처와 몸(Body)의 질병의 치료를 말하는 것이다(살전 5:23; 히 4:12).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은혜받아라!”, “육적으로 축복받아라!”만 강조하였다. 그 결과 마음의 터치를 해주지 않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은혜도 많이 받고 축복도 많이 누리고 중한 직분도 받아서 평생토록 봉사도 많이 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중직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근본적으로 그들의 마음이 치유 받지 못해서이다.
---「4장_ 치유목회의 이론과 실제_김의식」중에서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체류 외국인이 5%를 넘어서는 다문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다문화 통합의 우산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인본주의라는 거대한 우산으로 수많은 다문화를 포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기에 다문화 자녀들은 정체감에 혼란을 겪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우산으로 수많은 다문화를 포용해야 할까? 사회가 미처 준비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다문화 목회(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내적으로는 다문화 교육을 통해 나그네를 환대하는 환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외적으로는 다문화 선교를 통해 이주민들의 영혼을 구원함과 동시에 그들이 사회의 주체적인 세력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들이 든든히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 상호 협력할 때 더욱 튼실한 사회로 성장할 것이다.
---「5장_ 다문화 마을목회_김휘현」중에서
교회가 지루한 극장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성경이라는 대본에 담긴 복음의 역동성을 상실한 채, 말씀의 극적 힘을 딱딱한 교리와 윤리로 만들어버리는 경우이다. 즉, 성경과 복음에 담긴 풍성한 다의성을 차단하고, 특정 교리로 모든 논의를 종결시키는 시도이다. 두 번째는 교회가 성도를 구체적 수행으로 안내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점점 갈 길을 잃고 미궁에 빠진 한국교회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정체성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움직이는 사랑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선교적 교회의 사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목회의 지평을 마을 단위로 확대하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6장_ 안산제일교회의 드라마 교회론_허요환」중에서
마을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복내면 일봉리 일대를 유기농 생명 농업 단지로 조성하여 믿을만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이다. 계약재배를 통해 믿을만한 재료를 확보할 수 있고, 농가 입장에서는 판로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혜택은 도시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결국은 생명의 선순환을 이루어 공생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다. 마을기업 운동은 자본주의 폐해로 갈수록 황폐해져 가는 이 사회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대안이다. 마을을 살리면 작게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고, 크게는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지금 농촌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변화하는 농촌에 대해 농촌 교회는 어떤 응전을 해야 할까?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종교적 제의를 주관하는 일에만 스스로 역할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지붕 없는 교회인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마을공동체 재건에 힘써야 한다.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 흩어지는 교회로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마을 속으로 들어가서 주민들의 고통과 기쁨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7장_ 천봉산희년교회 마을목회 이야기_이박행」중에서
2000년에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복지에 관한 관심이 더 많아졌고 이에 대한 공공 또는 민간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노인복지서비스에 대한 필요와 기대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복지 서비스는 어느 민간 기관이나 단체보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기관이나 단체에서 일을 잘 수행을 해왔다.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노인 문제는 어느 분야보다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노인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여러 영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
복지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일부 교회 목회자 가운데는 지시자나 감독자의 역할에 그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교회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장 속에서 그들과 함께 피부를 접촉하고 함께 식탁을 나누는 현장 안의 복지목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무실 안에서 아무리 기획이 잘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현장과 연결되지 못하고 복지 현장에 있는 서비스대상자(클라이언트)와 공감하고 함께 하지 못한다면 현장이 요구하는 실제적인 서비스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농촌교회의 노인복지 서비스는 더더욱 현장으로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
---「8장_ 농촌노인복지사업과 마을목회_최상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