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까 라마뿟따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싯다르타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내심 기뻤다. 그는 정성껏 자신이 닦아온 명상 기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싯다르타는 그리 머지않아서 웃다까 라마뿟따가 가르치는 수행법이 알라라 깔라마의 가르침에서 한 단계 넘어선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알라라 깔라마가 무(無)의 경지(무소유처)를 성취하고 더 이상의 수행을 중단했음에 비해 웃다까 라마뿟따는 스스로 ‘의식도 비의식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 경지는 결국 알라라 깔라마가 시초의 두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채택했던 것과 같은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즉, 알라라 깔라마가 허공과 의식을 초월하여 무소유처에 이르기 위해 사용한 방법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알라라 깔라마가 무소유처를 최종의 절대적 경지로 인정했음에 반해, 웃다까 라마뿟따는 한발 더 나아가 그것이 실체적인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무소유처 자체를 분석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떠한 실체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웃다까 라마뿟따는 그것을 넘어 명상의 궁극적 경지는 어떤 형태의 의식도 아니요, 동시에 의식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웃다까 라마뿟따는 이 경지, 즉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모든 일상적인 지식을 초월한 절대적인 경지로 간주했다.
다만 호흡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내쉬는 비율을 엇비슷하게 조율하고 있는 반면, 웃다까 라마뿟따는 숨을 멈추는 꿈바까(Kumbhaka, 멈춤: 호흡을 정지하는 행위)의 비율을 취하고 있었다. 즉 호흡의 단계를 숨을 마심, 숨을 참음, 숨을 내쉼의 세 단계로 나눌 때, 알라라 깔라마의 명상법은 비율을 균등하게 한 반면, 웃다까 라마뿟따의 명상 기법은 숨을 멈추는 시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웃다까 라마뿟따 선인의 지도를 받으며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웃다까 라마뿟따의 수행법도 알라라 깔라마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르고자 하는 궁극적인 경지가 아니다. 그 역시 염오(厭惡)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이 법 역시 일시적으로 높은 황홀경을 누리게 할 수는 있으나 평상시까지 대자유가 이어지지 않는다. 한순간 마음을 풀면 다시 욕망과 불안과 고통에 속박될 뿐이니 이것 역시 내가 찾는 완전한 의지처가 아니다.’
--- pp.207~209
숫도다나 왕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 가슴에 얹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내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붓다를 보고 가는 마지막 길이 행복합니다.”
숫도다나 왕은 누워서 합장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연을 마친 것이었다. 왕을 돌보아왔던 사끼야 족 의사가 향수로 왕의 몸을 씻고, 솜과 털과 명주로 시신을 감싸 관에 안치했다. 시신을 다비장의 사자좌로 옮길 때였다.
“제가 앞쪽에서 관을 들겠습니다.”
붓다가 이렇게 말하자 친족들이 말리고 나섰다.
“세존께서는 하늘 위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분이십니다. 아무리 숙세의 인연이 깊다지만 인천의 스승께 인간의 상여를 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상여를 들지 않으면 비구는 부모의 은혜도 모른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생길 것입니다.”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간 후, 붓다는 시신을 드는 대신 향로를 들고 다비장으로 앞장섰고, 꽃을 뿌려 공양하고는 쌓아놓은 땔감 위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달려들 듯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붓다가 말했다.
“이 세상은 무상하고, 무상하기에 고통스럽습니다. 영원한 것이란 어디에도 없으니, 몸뚱이 또한 본래 덧없는 것입니다. 한세상을 산다는 것, 환상과 같고 타오르는 불꽃과 같고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습니다. 모두가 잠시 그렇게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무상한 몸으로 잠시 살다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는 저 사나운 불길을 보십시오. 이 불길을 뜨겁다 여길지 모르지만 욕심의 불길은 이보다 더 뜨겁습니다.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
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즐거움을 얻으십시오.”
부왕 숫도다나의 장례를 마친 후 붓다는 한동안 니그로다 동산에 칩거했다. 먼 여행과 부왕의 임종을 지키고 다비를 지켜본 탓에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 pp.508~510
붓다가 가장, 아니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야소다라. 그녀는 붓다로부터 직접 비구니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붓다의 최초 비구니 제자인 고따미의 제자가 되어 비구니가 되었다. 고따미가 웨살리에서 첫 비구니가 된 이후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동산에 수행처를 마련하고 정진하고 있을 때 야소다라가 고따미를 찾아와 출가를 허락받고 비구니가 된 것이었다.
이후 조용하게 정진하던 야소다라가 78세가 되던 해, 붓다를 찾아왔다. 그때 붓다의 나이는 80세였다.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라훌라의 아버지이며, 상가의 최고 지도자인 붓다를 찾아온 야소다라는 그날 밤 자신이 입적에 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다른 제자들처럼 붓다에게 열반에 들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만큼 독립적이었다. 비구니가 된 뒤에도 야소다라의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성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에게 직접 출가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으로부터 계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에 귀의했습니다.”
붓다는 부쩍 기력이 쇠해진 야소다라를 바라보며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출가 전, 아니 출가 후에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세상에서 하나뿐인 혈육 라훌라를 낳아준 여인, 기꺼이 자신의 출가를 허락해주었고,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주었으며, 마침내 자신도 출가하여 불사(不死)의 경지를 이룬 위대한 여인 야소다라를 바라보는 붓다의 눈에는 사랑과 연민과 존경이 교차했다.
야소다라가 힘을 모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세존이시여. 당신과의 인연, 당신과 나눈 사랑, 그리고 함께했던 세월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당신께서 제시해 준 위대한 가르침으로 인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사의 길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랑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 pp.845~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