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사람은 귀찮은 존재처럼 여겨지는데 돈이 없고, 속수무책이며 도착한 나라 또는 오랫동안 정착할 나라의 국민총생산에 전혀 긍정적인 이바지를 할 수 없고 그저 상황을 복잡하게만 만들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그들이 공중 보건 비용을 증가시키고, 일자리를 뻬앗으며, 테러리스트가 될 수도 있고, 아주 미심쩍은 가치를 들여오고, 분명 사회의 “행복”을 빼앗을 거라는 후안무치한 주장을 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도 빈곤과 불평등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쟁과 궁핍을 피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 겪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그래서 이것은 제노포비아의 사례라고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여기에는 어떤 좋은 것도 나올 것 같지 않은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향한 경멸과 무시, 공포, 거부를 뜻하는 ‘가난포비아(아포로포비아)Aporophobia’가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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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포비아는 다른 유형의 증오나 거부와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비자발적 빈곤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징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정체성이 끊임없이 변하는 역동적 사회 환경과 대화를 통해 절충되지만, 민족성과 인종은 정체성을 이루는 분명하고 변함없는 요소 중 하나다. ... 그러나 비자발적 빈곤은 한 개인의 정체성이 아닐뿐더러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가난을 체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마치 다른 환경은 없다는 듯 자기 가능성의 틀 안에서 선택하고 환경이 아주 조금만 개선이 되어도 고마워한다. 그것을 ‘작은 선물들’과 ‘순응적 선호(Adaptive preferences’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것을 비판적인 눈으로 봐야 한다. ... 비자발적인 경제적 빈곤은 불행이며 21세기에는 이것이 제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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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이나 문화적 편견을 일으키는 감정들은 부분적으로 사회적 감정에 근거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감정들은 위험과 공격을 유발할 수 있는 뭔가 다른 점들을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마도 이러한 반응은 부족 사회들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뇌는 여전히 이 메커니즘을 따른다. ... 대다수의 이러한 돌봄 관계가 친척이나 지인들과의 공동체가 시작되면서 확장되었지만, 그 대상이 모든 인간으로 확대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돌봄의 관계는 확실히 선택적이다. 따라서 이런 보편적 경향을 선택적 공감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타인에게 확대된다. 얼굴로 식별하고 자기 집단과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구분한다. 이러한 선택적 공감은 그 집단을 ‘그들’이 아닌 ‘우리’로 인식해서 협력하게 한다. 여기서 문제는 계속 생기는데, 자기 이익이 선택적 협력과 충돌할 때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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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계는 계약 능력으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고 받는 교환만으로 맺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의 바탕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했던 관계가 놓여있다. 오로지 관계를 깨트리거나 강화하는 시도만 가능할 뿐이다. 결국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타인이 그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상호 인식이 관계 즉 리가티오(Ligatio)를 만든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벌은 타인에게 투명인간 취급, 무시, 경멸을 받는 것이다. 상호 인식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포용적 사회의 기초를 놓는 연민과 동정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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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을 자유의 결여로 보았다. 물론 극빈층은 생필품이 부족한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일차적인 것이 최우선’이다. 전통적인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일차적 욕구는 기본 욕구들을 채워주고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더 넓은 빈곤 개념 안으로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자유가 없고, 가치 있는 삶의 계획들을 이룰 수 없는, 즉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데 필요한 기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운이 좋아야 자연적이거나 사회적 행운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따라 행복을 추구할 수 없어서 원치 않는 결과를 겪는 사람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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