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 트럼프가 똑똑해서 세금을 안 낸다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은 세계화의 과실을 차지하면서 소득의 폭발적 증가를 경험했고 그리하여 전례 없이 많은 재산을 쌓기에 이르렀지만, 그들을 대상으로 한 세율은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노동계급의 경우 임금 상승은 정체되었고 노동조건은 열악해졌으며 빚도 커졌는데, 세금은 올랐다. 1980년 이래 미국의 조세 체계는 시장경제의 승리자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경제성장의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처지의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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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_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내는가
1980년 상위 1퍼센트는 미국의 국민소득 중 10퍼센트보다 조금 더 벌었고 하위 50퍼센트는 20퍼센트가량을 벌고 있었다. 오늘날은 그 수치가 거의 정반대가 됐다. 상위 1퍼센트는 국민소득 중 20퍼센트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소득은 12퍼센트에 가까스로 도달하는 수준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상위 1퍼센트는 전체 노동계급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두 배 가까이 벌어들이고 있는데, 인구통계적으로 보자면 노동계급의 인구는 상위 1퍼센트에 비해 50배나 더 많다. 240만 명이 차지하는 파이의 크기는 1억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경제적 손실과 거의 유사한 규모로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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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연방에서 정한 최저임금에 따라 일하는 전일제 근로자는 2019년 현재 1년에 1만 5000달러를 가까스로 벌게 되는데, 이는 성인들이 버는 국민소득 평균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1950년에는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받는 급여가 국민소득 평균의 절반 수준을 상회하고 있었다. 세전 소득이 이렇게 극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급여에 따라붙는 세금마저 상승했다. 1950년에는 소득의 3퍼센트 정도가 세금이었지만 지금은 15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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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부가가치세와 달리 미국에서 적용되는 매출세와 내국소비세 등은 대부분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부과되지 않는데, 재화가 아닌 서비스의 소비가 전체 국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는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주로 재화를 소비하는 가난한 이들의 소비에는 세금이 붙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여유 있는 이들이 소비하는 서비스는 면세 항목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부가가치세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만 부가가치세를 내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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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같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조세 정의의 핵심 원리라고 한다면, 지난 20여 년 사이에 조세 체계는 그 원리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 원칙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조세 체계를 망가뜨린 폭발물의 구성 성분은 단순하다. 자본 소득을, 다양한 층위에서, 면세 소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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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_ 부자들에게 거리낌없이 세금을 거두던 시절
소득세의 목적은 조세 재정을 확충하는 데 있었다. 적어도 소득세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1930년대까지는 그랬다. 소득세란 부자들이 낼 능력이 되는 만큼 공공 재정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세금이었다. 그런데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득세에 새로운 목적을 덧붙였다. 그 누구도 특정 액수 이상의 돈을 벌 수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초과 소득을 압류하는 것이었다. (…)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각은 1942년 4월 27일의 의회 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매우 낮은 소득과 매우 높은 소득 사이의 격차는 반드시 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여 본인은 이 엄청난 국가적 위기의 시기 속에서, 모든 초과소득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투입되어야 하며, 미국 시민이라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모든 세금을 내고 난 후에는 연 2만 5000달러 이상을 벌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세후 2만 5000달러, 오늘날로 따지면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벌었을 때 적용될 100퍼센트의 세율은 급여뿐 아니라 비과세 유가증권으로부터 나오는 이자까지 모든 종류의 소득원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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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_ 애국적인 일로 둔갑한 조세 회피
조세 회피 서비스 시장은 시장이 공공선을 저해하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조세 회피 서비스 시장은 단 한 푼의 가치도 생산해내지 못한다. 정부,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재정을 희생양으로 삼아 부자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어 줄 뿐이다. 조세 회피가 창궐한 것은 조세 회피 서비스 시장에서 온갖 창의성을 발휘한 결과였다.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세금에 대해 큰 반감을 품었던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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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주권국가가 그렇듯이 스위스는 자신들의 법을 만들 권리가 있지 않은가? 스위스는 은행의 비밀을 엄격하게 유지하고 금융기관이 고객에 대한 정보를 가져가는 것을 가로막아야 할 동기가 충분한 나라인데, 대체 왜 스위스가 자신들의 법을 바꾸려 들겠는가? 그런데 그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다. 2010년, 의회에서 통과된 해외금융계좌신고법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외국 은행은 자동적으로 미 국세청과 자료를 교환하게 된 것이다. 전 세계의 금융기관은 자신들의 고객 중에 누가 미국 시민인지 인지하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좌와 그리로 들어오는 소득에 대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경제적 제재가 가해진다. (…) 미국의 선례를 따라 여러 국가들이 조세 도피처에 대해 유사한 협정을 맺었고 은행 정보를 자동 공유하게 함으로써 이는 2017년부터 사실상 국제 표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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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_ 구글이 세금을 떼먹는 방법
CEO의 목표는 자신을 고용한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 따르자면 기업이란 투자자들이 그들의 자원을 모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그러나 주주가 왕이라는 원칙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이 같지 않고 다양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1970년대 이전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의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하지는 못했어도 이사회가 단지 기업의 주주뿐 아니라 그 밖에 많은 이들, 가령 피용자와 고객, 지역 공동체와 정부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당시는 경영자들이 조세 회피를 자신들의 의무로 여기지도 않았고, 세무 설계를 위해 기업 예산을 대거 책정하는 일도 없었다. 50여 년 전에도 제너럴일렉트릭은 전 세계적인 대기업이었지만 지금처럼 1000여 명의 세무 변호사를 고용한 회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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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다국적기업은 탈세 산업의 도움을 받아 자기업 사이에서 어떤 유형의 자산과 서비스를 거래하기 시작했는데, 그 거래 품목에는 한 가지 핵심적인 특징이 있었다.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로고, 트레이드마크, 매니지먼트 서비스 같은 자산과 서비스에는 객관적인 시장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 애플 로고의 가격은 얼마인가? 알아낼 방법은 없다. 애플 로고는 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키의 저 상징적인 “스워시” 마크의 가격은 얼마인가? 구글의 검색 및 광고 기술의 가격은? 이런 로고나 트레이드마크 혹은 특허는 외부에서 거래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기업은 자신들의 편의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고 내부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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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구글은 주식시장에 등록하며 공개기업이 되었는데, 그보다 한 해 앞선 2003년의 일이다. 구글은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검색 및 광고 기술을 “구글홀딩스”라는 자회사에 매각했다. 구글홀딩스는 아일랜드에 설립된 자회사인데, 아일랜드에 세금을 신고할 때에는 구글홀딩스의 “판단 및 관리”가 이루어지는 곳이 버뮤다제도라는 이유를 들어, 대서양 어디쯤에 있는 버뮤다제도를 세무 거주기준지로 신고한 상태였다. 구글이 구글홀딩스와 검색 및 광고 기술을 매매한 가격은 공시되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홀딩스가 구글의 기술을 구입한 가격은 간단하게 추산해 볼 수 있다. 그 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그 매매가 비싸게 이루어졌다면 2003년 구글이 미국에서 냈던 세금에 그 거래의 영향이 크게 드러났어야 하기 때문이다. (…) 납부한 세금을 통해 추산해 보면 그 무형자산의 가치는 7억 달러 이하로 책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기준으로 보더라도 매년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만들어내는 구글의 핵심 무형자산의 가치가 그렇게 낮을 수가 있는 걸까. 현재 확인 가능한 최신 자료를 보면, 2017년 버뮤다에 위치한 구글홀딩스는 227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구글홀딩스는 구글이 가진 가장 값진 기술의 법적 소유권자이기 때문이다. 구글홀딩스는 유럽의 자회사에 그 기술의 사용권을 주고 돈을 받는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위치한 자회사들은 구글홀딩스에 이른바 ‘버뮤다산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로열티를 내면서, 독일과 프랑스에 내야 할 세금의 과세표준을 줄여 나간다. 대신 그만큼 버뮤다에서 과세표준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버뮤다의 법인세는 몇 퍼센트일까? 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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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_ 유령회사 놀음을 끝장내기 위한 호루라기
정치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금 문제를 무역 정책의 중심에 놓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이루어질 무역 협상은 조세 정책 차원에서의 공조에 대한 협약을 담고 있지 않는 한 체결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은 지적 재산권이나 해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세금 문제가 전적으로 간과되고 있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유권은 오직 권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납세의 의무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p.220
8장_ 경제성장의 열매는 공평하게 분배되는가
부는 권력이다. 부의 극단적인 집중은 권력이 극도로 집중된다는 말과도 같다. 권력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경쟁자의 목을 졸라 버린다. 권력은 그들을 위한 이념을 만들어낸다. 종합해 보면, 시장에서, 정부에서, 언론에서, 결국 누가 얼마만큼의 소득을 가져갈지 그 무게추를 기울이는 것은 권력이다. 왜 누군가가 극도로 많은 부를 독점하게 되면 그 밖의 우리들의 몫이 줄어들게 되는지, 그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이는 늘 그래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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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_ 건강 · 교육 · 노후를 책임지는 사회국가를 향하여
현실적으로 값싼 의료와 값싼 교육이란 필요할 때 제공되지 않는 의료와 교육을 뜻할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의료를 마치 이발이나 식당처럼 가격에 따라 제품의 질과 양을 맞춰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처럼 바라보곤 한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허상에 불과하다. 가난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와 교육은 부자들에게 필요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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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보는 과제는 일차적으로 엄마들에게 넘겨진다. 정부가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사실상 여성들의 시간을 세금으로 거둬가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세금 중 가장 원시적인 세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성들은 그 세금을 내느라 경력 개발에 큰 지장을 받으며 성별간의 격차는 더욱 커져만 간다. 미국의 경우 첫째아이를 낳고 나면 엄마들의 수입은 아빠들에 비해 평균 31퍼센트가량 추락한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대학 졸업률도 남자들보다 높은데도 여전히 소득에서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이 버는 성별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등교육에 그렇게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나라에서, 아이들의 초기 교육에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그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엄마들이 경력을 쌓아 나가야 할 핵심적인 시기를 낭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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