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규칙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는 끊임없이 작은 규칙들을 만들곤 한다. 인터넷 비접속 규칙이 있는 공간을 만든 것처럼 어떤 요일에는 특정 장르의 영화를 본다든지, 시간대별로 듣는 노래 장르를 정한다든지 하는 사소한 규칙들을 만든다. 이렇게 내 공간만의 질서를 세우고 지키면서 집과의 정서적 교감이 더 깊어지고, 한층 더 특별한 나만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나다운 물건과 일상이 쌓여 나다운 집이 되고, 더 나아가 나다운 삶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 p.23, 김규림, 「집에서 혼자 잘 노는 법」 중에서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스르륵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한 고집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소파에 가로누운 남편 옆에 굳이 붙어 앉아 역시나 그러거나 말거나의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그러고서 조용히 스탠드 조명을 켜면,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어둑한 기내에서 유일하게 깨어 있는 탑승객이 된 기분이 든다. 나는 고독하게 페이지를 넘긴다. 상상력이란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 p.41, 송은정, 「어엿한 책상 생활자」 중에서
밤을 길게 두면 외로워진다. 아침의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밤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아침을 길게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 대충하지 않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하되 할 수 없는 부분에는 욕심내지 않으며, 그 경계를 지켜 시작하고 마무리를 지을 줄 아는 것이다.
--- p.56, 봉현,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드라마」 중에서
또다시 확진자가 늘어서 2주 연속 등원을 못하던 시기였다. 평소에는 실수를 해도 괜찮아, 담에는 꼭 변기에 하자, 하고 넘어가던 엄마가 갑자기 꺽꺽거리니 유하도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방에서 일하던 남편도 놀라 뛰쳐나왔다. 나도 내가 애 오줌이 줄줄 흐르는 바지를 들고 오열씩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 진짜, 코로나 언제 끝나?
--- p.78, 이지수, 「대체로 무기력하지만 간혹 즐겁게」 중에서
“나 집에 왔어.”라는 말. “잘 다녀왔어.” “잘 도착했어.”의 의미를 가진 말. “나 집에 왔어.”라는 문장 안에 우주의 미아가 되어 헤매다 귀환한 모험가의 기분이 들어 있다. 먼지의 냄새와 고단한 소음과 헝클어진 기분이 신발을 벗으며 그 문장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순간 날아갔다. 그것은 착륙의 주문이었다.
--- p.103, 김희정, 「집이라는 브랜딩」 중에서
집에서의 생활을 단단히 만들어 삶의 무게중심을 안으로 이동시키는 일은 어디로 도망치지 않아도 괜찮은, 밖에서 나를 증명받지 못해도 변치 않을 거라 믿어지는 일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요즘의 나는 적당한 책임감을 가지며 일하되 너무 무리해서 잘하려 하지 않고, 적당히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산책하고, 이웃을 만나는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런 매일 덕분에 자꾸만 다른 것에 기웃거리고 싶던 마음이 간결해졌다.
--- p.128, 강보혜, 「내 몫의 여러 책임에 충실한 생활」 중에서
이제 알았다. 집은 가장 온전한 쉼의 공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아주는 친구다. 그 안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불완전한 자아를 내려놓는다. 어디서도 드러내지 않는 나태함을 발산한다. 내가 만든 공간. 나를 만든 공간. 집 안 구석구석에는 내 모든 성격과 취향과 가치관이 묻어 있다. 어딘지 조금 엉성하고 부족하지만 정다운 집이 바로 나의 집이다.
--- p.147, 김키미, 「게으름의 상대성 이론」 중에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같은 방에 있는 책상으로 출근하는 과정을 며칠 반복하니 몸이 쉽게 찌뿌둥해졌다. 사무실로 출퇴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에 얼마나 많이 몸을 움직였는지 알게 되었다. 침대에서 책상으로 바로 출근하면, 몸이 충분히 풀리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경험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업무에 몰입하기에 충분한 활기를 얻기 위해서 주말에만 가던 동네의 낮은 산을 매일 오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걸으면 충분히 땀이 났고 몸에 생기가 돌았다.
--- p.160-161, 신지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 증거」 중에서
멀리 여행을 온 것도 아닌데, 오로지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진 집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나와 분리되는 신비가 펼쳐진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나의 집에서 책을 만들다가 문을 열고 나가,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뛰어드는 거다.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든, 야근이 일상인 회사원이든, 질풍노도의 청소년이든, 누구에게나 독립적인 자신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내 취향으로 가득한, 나만의 물건들이 나만의 질서로 자리 잡은 곳.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
--- p.181-182, 문희정, 「엄마의 두 집 살림」 중에서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고 싶다’가 아닌 ‘머물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집에서만큼은 언제든 나를 멈추게 하고 싶고, 나의 집에서 가장 진하게 표시되고 싶다.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집은 현재의 내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종착지이다.
--- p.205-206, 임진아, 「오늘이라는 아무 날의 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