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과연 도피인가 취미인가? 덕후라는 정체성의 크기는 개인마다 어떻게 다른가? 때론 실제 연인과의 사랑보다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덕심(心)이란 무엇인가? 현실의 친구보다 다정하고, 가족에게조차 쉽게 하지 못할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덕후 사회의 유대감과 친밀감의 근원은 무엇인가? 또 덕후는 이타적이며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덕후에 대한 편견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덕질에 대한 많은 질문을 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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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이런 언어의 강압적 자의성을 깨뜨린다. 매력이 흠뻑 담긴 별명은 공감을 얻어 약속이 됨으로써 언어의 약속이라는 강직성을 깨뜨린다. 복슬복슬하니 노란빛이 도는 털을 가진 강아지 이름은 해피인데, 그보다 ‘인절미’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것은 강아지가 인절미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별명에 대한 공감이 이름의 고정성을 깨 버렸다.
친구 지호를 나 혼자 ‘호호’라고 부르면 혼잣말이지만 여러 친구들이 ‘호호’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그것은 공유된 약속, 별명이라는 기호가 된다. 기호가 되기 위해서는 약속을 공유하는 집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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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감정과 생각은 주로 말과 글, ‘언어’라는 형식에 담겨 표현되는데 덕후들의 기쁨과 벅참, 감동은 언어로만 나타내기엔 어휘의 종류와 깊이가 턱없이 부족할 때가 많다. 언어로 심정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덕후들은 그림을 이용한다. 그림이나 짤(주로 인터넷상에서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이름), 영상을 이용하면 말과 글로는 부족한 감정의 격렬함을 그나마 실감 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덕후들이 만든 짤이나 영상 등 이미지로 전달되는 감정 표현을 비언어적 기호라고 한다. 그리고 비언어적 기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이 이미지 기호다. 일상에서 많이 쓰는 이미지 기호로는 비상구나 화장실 표시, 풍향 표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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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단체에는 이름이 있다. 덕후일 때는 개인의 이름보다 단체의 이름이 중요하다. 그래서 덕후는 스스로를 ‘새우젓’이라 칭하곤 한다. 새우젓은 스타들이 콘서트장에 모인 팬을 바라볼 때 개별로는 식별이 어렵고 마치 새우젓처럼 뭉쳐진 모습으로 인식된다는 의미의 비유다.
새우젓이라는 호칭의 정체성은 익명(anonymous)과 무리(group)에서 찾을 수 있다. 스스로를 새우젓이라고 칭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거나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팬으로서는 그저 모래알처럼 많은, 이름 없는 팬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겸허의 표현이다. 덕후로 활동하는 동안은 사회의 내 이름에서 벗어나, 단체로서의 이름과 정체성, 공동 관심사에 대한 즐거움과 목표를 나누는 데 집중한다. ‘우리에 기여하는 이름 없는 나’가 새우젓의 존재적 특징이다. 덕질의 이런 ‘공동체적 이타성’은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주된 관심사였던 ‘타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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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의 정체성은 덕질 대상을 상징(symbol)하는 데 있다. A라는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A의 피규어, 사진, 캐릭터 인형은 A를 상징한다. 굿즈는 A의 ‘대리 실존’인 것이다. 그래서 A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A의 굿즈는 마치 A의 홀로그램처럼 본체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소중하다. 우스갯소리로 덕후인지 아닌지 테스트 하려면, 그 사람의 굿즈에 낙서를 하거나 파손을 해 보면 된다고 한다. 진짜 덕후라면 강제적 상황이 아니고서야 절대 굿즈를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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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이 철학을 노래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 낯설지 않다. 특히 동방신기의 〈O-正.反.合.〉은 철학을 노래하는 케이팝 중에서도 주제곡과 같은 노래다. 이 곡은 무려 독일의 유명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케이팝에는 철학뿐 아니라 문학, 미술, 무용, 과학, IT 등 타 분야의 모티브를 적극 수용한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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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시와 회화는 학습된 기술이나 고정관념,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무의식의 상태에서 생각이 흐르는 대로, 손이 시키는 대로 그리거나 쓰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을 ‘말해진 생각(spoken thought)’이라고도 하는데, 의식의 검열이나 통제 없이 무의식에 따라 말하고 그리는 대로 창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SNS에 ‘아, 배고픈데 치킨 시킬까? 중국 음식도 먹고 싶은데. 내가 지금 치 킨 먹고 싶은 게 며칠 째더라? 새해가 된 지도 벌써 80일이나 지났네. 피자는 화덕피자가 맛있는데. 다음에 홍대 가면 포장해 와야지. 일단 치킨 시켜야겠다’라고 적었다면 이것도 무의식의 흐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말 그대로 이성의 통제 없이 무의식의 흐름대로 기술한 것이다. 이는 초현실주의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방식으로, 자동으로 쓰고 그린다는 뜻으로 ‘오토마티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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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크리틱(critic)의 시대에 살고 있다. TV를 볼 때도, 사람을 볼 때도 재빠르게 평가하고 판단하여 결론을 내린다. 누군가 상대방을 보며 “저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야”라고 평가했을 때, 그는 직장에선 성실하지만 집에서는 소파에 누워 꼼짝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요즘의 세상은 상대방의 전부를 알 수 없는데도 사람과 사건을 어떤 판단의 결과 폴더에 분류한다. 때문에 우리에겐 리좀적 사고가 필요하다. 리좀적 사고는 고정 폴더를 갖지 않는 것이다. 사람도, 접속한 역할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리좀적 가치관이 확산되면 덕후에 대한 인식도 점차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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