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라는 말은 유행가 가사로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현실은 아니다. 종종 6080 노년들 대상으로 나이 듦 관련 강의를 한다. 그들이 참여자이고 내가 강사지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늙고 있는 우리는 각자 경험하는 나이 듦에 대해 같고도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은 청춘인데…… 넘어지면 이전에는 타박상이었는데 이제는 골절상이라고 하네요. 마음을 계속 청춘으로 유지하는 방법이 없을까요?”라며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나이 들면서 품게 되는 질문들의 이모저모를 다룬다. 답이나 위로보다는 그야말로 질문들이 어디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질문의 허상과 실상은 무엇인지, 누가 질문하고 그러면서 정작 누구를 소외시키는지 등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
페미니즘은 삶의 모든 국면, 그동안 역사가 구축해 온 지식 체계 전반을 젠더 관점에서 낯설게 보고 새롭게 정초하는 데 힘을 써 왔다. 그러나 그 페미니즘의 대안 세계 안에서도, 늙고 병들고 아프고 돌보며 돌봄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변방에 머문다. 예순 넘은 여성이라는 정체성도 다른 정체성들이 그렇듯 여러 층위가 교차하는 맥락의 한가운데서 세워지고 부서지고 또 다시 세워진다. 페미니즘이라는 대안 세계 안에서도 가장 변방에 있는 이 정체성의 당사자들이 어떤 이중 삼중의 대안을 꿈꾸고 살아낼지 궁금하다.
---「머리말」중에서
페미니스트, 갱년기와 ‘더불어’ 살다
“월경(menstruation)과 중지(pause)가 합쳐진 말인 메노포즈(meno-pause)는 문자 그대로 더는 월경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 그러나 메노포즈의 한국어 용법이 ‘완경’과 ‘갱년기’ 둘 다를 포함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메노포즈는 단순히 ‘월경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 호르몬의 작용에 따른 결과지만, 메노포즈는 신체적 ? 생리적 상태를 넘어서 사회문화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복합 ‘현상’이다.”
---p.19
“호르몬 약을 먹으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아지니 먹을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말을 들은 게 불과 십여 년 전인데, 의사들은 이제 ‘호르몬 치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계몽의 목소리를 높인다. …… 힘들게 갱년기를 보낸 여성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소외와 외로움’의 감정은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의사들에게만 향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혹은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맥락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갱년기 담론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 같은 것이다.”
---pp.24,25
모두에게 쾌락을 허하라 ― 노년의 성(性)과 사랑
“데이드레 피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2004년)는 통쾌하게, ‘노골적’으로, 늙은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여자들은 모두 65세 이상의 ‘늙은 여자 내지는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50여 분 동안 이들이 솔직하고 쾌활하게 들려주는 성적 욕망과 사랑하기의 즐거움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을 특정 대명사로 부르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등장인물들 중에는 와니타처럼 할머니이면서 동시에 증조할머니인 여성도 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할머니’라는 단어는 단순히 친족 안에서의 관계를 나타내는 기표일 뿐이다.”
---pp.64,65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에 둘러싸여 ‘소녀처럼’ 순진하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더는 섹시한 란제리를 입을 필요가 없는, 아니 아예 그런 욕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불경스럽게 여겨지는 ‘할머니.’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할머니’에 달라붙은 ‘비(非)성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의미는 평생을 재기발랄하게 자기 멋대로 살아 온 싱글 여성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라면 일정 연령대에 누구나 ‘아줌마’가 되듯이 그렇게 일정 연령대가 되면 또 누구나 할머니가 된다.”
---p.65
마음껏 춤출 자유, 마음껏 늙어 갈 자유
“현대 무용가 안은미의 공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보고 온 날, 나는 집에서 막춤을 추며 내 몸이 말하게 했다. 며칠 동안 내내 혼자 막춤을 추며 흥겨워했다. 안은미는 2010년부터 세 대의 카메라를 들고, 네 명의 젊은 무용수들과 함께 자전거로 전국을 돌며 밭에서, 경로당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구멍가게 안에서 마주친 할매들에게 즉흥적으로 ‘춤 좀 춰보시라’ 권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춤춘 결과로 탄생한 것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다. 이 공연은 춤과 몸의 관계를 더할 나위 없이 통쾌하게 해방적으로 가르친다.”
---p.88
“늙어 가는/늙은 사람에게 ‘여전히’ 젊고 아름다울 것, ‘아직도’ 늙지 않은 몸과 삶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연령주의-미 산업의 음험한 책략은 여성들의 삶을 왜곡하고, 자기 흥에 몸을 싣고 마음껏 늙어 갈 기회를 박탈한다. 이러한 사회문화 환경에서 늙어 가는 몸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 위에서 춤을 추는 여성/무용수들은 몸이 품고 있는 시간성과 역사성의 주름들을 한껏 펼쳐서 새로운 의미를 낳는 전위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다. …… 제발 노년으로, 뚱뚱하고 처진 몸으로 ‘분장하는 게’ 아니라 뚱뚱하고 처진 몸‘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맘껏 춤추시라.”
---p.90
어둠 속의 항해 ― 치매라는 공포
“더 많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치매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공포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치매의 날’이 만들어지고, 2017년부터 시행된 ‘치매국가책임제’에 따라 2019년 현재 전국 256개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되어 예방, 검진, 관리 서비스와 치매가족휴가제를 제공하고 있지만, 대중의 마음은 불안이나 두려움, 심지어 공포에서 해방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나서서 치매 예방 · 관리를 ‘선포’하고 나선 것인데, 바로 그 ‘선포’에서부터 계속 불안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간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 없애야 한다는 태도로는 결코 완전히 없애지지 않는 질병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
---p.102
“나는 거의 20년이 넘게 치매 상태에서 사는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 매번 엄마를 만날 때마다 ‘그날의 문장’이 있었다. 몇 시간이고 그 문장이 반복된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이쁘네. 코도 눈도 눈썹도 이도 다 너무 이뻐.’라거나 ‘오늘 나랑 같이 자고 내일 우리 집 가자. 내가 바닥에서 잘 테니 여기 침대에서 자.’라거나 ‘내가 죽기 전에 너희 집 가서 살다가 죽으면 소원이 없겠는데.’라거나. …… 대부분 나는 한 시간 정도 엄마의 문장을 토대로 삼아 엄마와 나름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적어도 두 번 정도는 나의 대답과 질문에 엄마가 응답하고 다시 본래의 문장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대화는 이어졌다. …… 언어 능력, 혹은 언어적 존재에 대한 ‘비-치매인들 중심’의 정의나 생각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pp.106,108
격리된 노인요양시설에서 ‘돌봄’ 문제를 마주하다
“정기적으로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하던 시기가 있었다. 엄마가 ‘중증 치매’를 앓았기 때문이다. …… 아주 가끔 엄마와 한방을 쓰시는 다른 할머니들의 손도 잡곤 했는데,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 손을 너무나 꽉 잡고 놓지 않으려 해서 결국에는 강제로 그분들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다시피 해서 손을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바스라질 것처럼 마른 몸, 말 그대로 뼈만 남은 앙상한 손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 있는 걸까. …… ‘예방’과 ‘보호’를 위한 가장 손쉬운 방식이 격리다. 그런데 이 격리가 무엇을 얼마나 더 악화시키는지, 어떤 고통을 더 만들어내는지, 그렇지 않아도 ‘붙잡을 무엇이 없어’ 불안한 몸들의 삶은 얼마나 더 불안해졌는지 깊이 생각한다면, 가장 손쉬운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찾아냈어야 하는 것 아닐까.”
---pp.114,115
영화 〈아무르〉가 묻는 것들 ― 나이 듦과 질병, 그리고 자유죽음
“단순히 ‘경동맥 수술이 잘못되어 반신불수가 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뇌졸중이 왔다, 점점 나빠지다가 마지막 날을 맞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의료 보고 동사만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다른 진행형 동사가 있음을 느껴보자고 영화는 제안한다. ‘안느’에게 이런 일이 생겼고,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조르주’는 평생을 반려로 살면서 지키려 애쓴 믿음과 신뢰 속에서 (안느의 숨을 멈추려고) 베개를 집어 든다. …… 〈아무르〉는 질병이나 나이 듦의 신체적 징표가 개인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낭패나 재앙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라면 그 누구도 ‘자기만의 죽음’을 죽을 수 없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pp.156,157
정치하는 할매들, 부정의한 ‘아버지의 법’과 맞장 뜨다
“한국에서 정의롭지 못한 정치경제 행태에 맞서 저항이 있을 때마다 주류 반동 세력이 예외 없이 꺼내는 이름은 ‘배후 세력’이다. ‘종북 빨갱이’ 같은 호명은 분단국인 만큼 여전히 일정 부분 효력이 있어 그들이 걸핏 하면 주저 없이 빼 쓰는 만년 적금 같은 것이다. 성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의 경우에도 역시 ‘배후 세력’ 혐의가 대두되었고, 혈서 쓰고 단식하는 군수와 함께 투쟁을 시작했던 군민들은 이 어이없고 어리석은 게임에 유희의 정신과 진지한 의지로 맞섰다. 〈파란나비효과〉를 여러 번 되돌려 본 나는 이 투쟁에 아닌 게 아니라 배후 세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할매들이다. 쑤시는 무릎을 참아 가며 집회 현장에 앉아 ‘사드는 안 된다’ 외치고, 인간 띠 잇기를 벌일 때 아픈 허리를 참아 가며 긴 시간 꼿꼿이 서서 버틴 할매들.”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