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이상의 고참 무주택자에게 청약 로또를 우선적으로 몰아 줘야 한다는 것에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었다. 왜 9년 차는 안 되고 12년 차는 되는지 합리적인 설명을 들은 적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내가 당첨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특히 부양가족 수가 적은 1~2인 가구와 무주택 기간이 짧은 30대 실수요층을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여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어 신혼부부 특별 공급부터 대상을 확대했다. 가령 기존에 5년 이내이던 신혼 요건을 7년으로 늘리고, 월 소득 기준도 맞벌이일 경우 최대 160%까지 올렸다. 이제는 아예 1인 가구나 생애 최초 청약자를 위한 물량을 늘려서 배정하자는 목소리까지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다시 가점제 물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누군가는 다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황금률이 있을까? 결국 청약은 당첨에 대한 기대로 유지된다. 인위적 배정을 통해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누구도 만족시키기 어렵다. 오히려 물량 차이를 두고 다툼만 생길 뿐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이해득실과 연관되는데 기형적인 분양가 통제로 청약 당첨 시 수억 원 단위로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는 현 구조에서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이익을 독점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탈락하고 배제된 수많은 사람들, 다시 말해 가점 50점 이하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청약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접고 지금 잡을 수 있는 집을 사러 부동산 시장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청무피사(청약은 무슨 프리미엄 주고 사)’ 시대의 개막이었다.
---「미계약 물량 현장에 모인 현금 600억 원」중에서
불과 1년 만에 서울 시내 집값이 평균 2억 원 오를 때, ‘이러다 정말 집을 못 사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박감이 이른바 갭 투자로 나타났다. 2018년 여름, 서울에서 전세 보증금을 끼고 주택을 매입한 비중은 무려 59.6%에 달했다. 그런데 사실 어찌 보면 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서울 시내 아파트 전세가율은 여전히 70%를 넘는 수준이었는데, 이는 집값의 30%만 있으면 전세를 끼고 매입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8.2 대책 이후 대출 규제가 강화돼 무주택자라 해도 대출은 집값의 40%로 제한됐고, 본인이 가진 자본이 집값의 70% 수준은 돼야 집을 살 수 있었으니 이른바 갭 투자는 자금 조달이 제약되는 상황에서 집을 사기에 더 유리한 수단이었다. (…) 그런데 이렇게 집을 산 무주택자를 갭 투기꾼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 무주택자가 가용한 대출을 모두 동원하고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서라도 최대한 좋은 지역의 집을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을 투기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 볼 때 비싼 집에 더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빨리 뛴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천천히 밟아 올라가라는 식의 조언은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행위는 모조리 투기적 성격으로 낙인찍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을 올리고 보겠다는 일념으로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대출이 안 나오니 갭 투자를 합니다」중에서
13억 원 하던 잠실 집값이 20억 원을 넘었는데 과연 그 집은 누가 샀을까? 그 정도의 현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걸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몇 년 전 마포래미안푸르지오마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던 시절, 대출 3억 원을 받아 8억 원 언저리에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에 입주한 부부가 있었다. 한 달에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대출 원리금을 갚는 것은 분명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새집에 살면서 여의도, 광화문에 있는 직장에 다니며 맞벌이 생활을 하기에 좋은 위치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그런데 5~6년 살다 보니 처음에는 까마득했던 3억 원의 대출 원금을 어느덧 거의 대부분 상환했고, 가만히 둘러보니 집값으로 18억 원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 4억 원 남짓이던 순자산이 세 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이제 이 부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이들도 점점 커서 중학생이 되고, 좀 더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가고 싶은데 다시 담보 대출을 얼마간 받는다면 20억 원 하는 동네로 점프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게 되었다.
그러면 이 마포래미안푸르지오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다시 또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 수준의 새집을 샀던 사람이다. (…) 집은 집을 팔아서 사는 것이고, 100만 달러짜리 집의 비밀은 집들 간의 가격 차이에 숨어 있다. 사람의 마음은 한가지라 누구나 새집을 갖고 싶어 하고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거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런 집을 얻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니 가격이 뛸 수밖에 없고, 가장 비싼 집값이 오르고 그다음 비싼 집값도 따라가니 덜 비싸던 집값도 덩달아 불이 붙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집값이 집값을 형성하고, 각자의 가격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반복된다.
---「뉴타운이 쏘아 올린 작은 공」중에서
지금 결혼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사실 막막하고 갑갑하다. 1~2억 원을 모은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돈으로 비빌 곳이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길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나도 서울에서 시작할 수 없었다. 최근 1~2년간은 3~4억 원대의, 경기도지만 교통 여건이 서울 뺨치는 신축 집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때 그 집들도 전세가 3억 원씩은 했다. 지금은? 최근 찍힌 실거래가가 6억 원을 넘었다. 대출을 2억 원 받아 3억 5,000만 원 주고 산 집이 6억 원이 됐고, 그사이 대출금 5,000만 원을 갚았으면 자산은 3억 원 늘어난 것이다.
본질은 단순하다. 시드머니를 갖춰야 한다. 어떻게든 1억 원을 만들고 2억 원까지 만들면 더 좋다. 부모님 집에서 동거하며 20대 후반에 직장 생활 시작해 버는 돈 몽땅 모으면 1억 원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적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10억 원, 20억 원 하는 강남 집값 아무리 쳐다봐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회사까지 1시간 이내, 가능한 한 지하철역 가까운 곳, 이왕이면 신축, 다른 집들이랑 모여 있는 곳. 그런 곳에 입주했으면 열심히 벌어서 빚을 줄인다. 그리고 다음 스텝은 또 현실적 범위 내에서 모색하면 된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집값을 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들 똑같이 그 길을 지나왔다.
---「내 집 마련을 위한 현실적 목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