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예술과 과학에 대한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예술뿐 아니라 과학, 기술, 진화 등을 포함한 여러 개념에 대해 살펴보고 서로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술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공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인공지능은 예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예술의 경계 바깥에 존재하며, 과학 또는 기술에 속한다. 이것이 우리(예술가)가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 「서문. 예술가가 과학기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예술이 기계에 의해 창작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산적 창의성[computational creativity]’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으며 구체화되고 있다. 예술의 지형은 공학자들에 의해 ‘기계에 의한 복제[mechanical reproduction]’에서 ‘기계에 의한 창작[computational creativity]’으로 전환되고 있다. 4만 년에 이르는 예술의 역사에서 창작의 주체는 오로지 인간뿐이었지만,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창작의 주체로 병존할 것이다.
--- 「1. 도구(과학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변화」 중에서
일반적으로 ‘지능’이라 하면 인간의 지능을 떠올리기 쉽고, 지능 검사 등의 영향으로 지능을 ‘높고 낮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별명을 붙인 인간은 인간 이외의 동물을 자신보다 지능이 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지능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지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지능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버리고 나면 꽃이나 새, 강아지도 지능적일 수 있음을 발견하며, 지능을 높고 낮음과 같은 수직적 차원이 아닌,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적응 전략으로 이해하게 된다.
--- 「2. 지능의 종류와 정의」 중에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은 인간의 학습능력으로는 따라잡기 불가능할 만큼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지금 우리에게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생산해 내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토해 내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 속에 숨어 있는 상관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요구된다.
--- 「3.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이해의 변천사」 중에서
이렇게 완성된 글을 과연 사람이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기계가 썼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어느 한 쪽으로 공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 기계는 사람의 글을 통해 글쓰기를 배웠고, 사람은 기계를 통해 글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완성했다. 기계와 인간은 이처럼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좀 더 정확하게는 기계의 계산능력이 인간의 창의성을 증강시키는 구도를 형성한다. 인공지능은 글쓰기 재주가 빵점인 우리 모두를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집필할 당시 그의 책상 위에 만년필과 인공지능이 놓여있었다면 과연 그는 무엇을 집었을까?
--- 「4. 계산적 창의성과 예술」 중에서
기계가 예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기계의 창의성 같은 것은 더더구나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논쟁은 아주 모순적인 철학적 개념들로까지 번지는데 의미[meaning], 의도[intentionality], 의식[consciousness]과 같은 것들이다. 사실 이것은 기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생명 그 자체에서도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르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기계의 창의성에 관해 본질적으로 합의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는 것은 명확하다. 앞에서 말한 것 중 하나에라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기계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기계를 예술 창작의 주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 「5. 인공지능 예술에 대한 인간의 수용태도」 중에서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계산’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근원이 정보처리, 다시 말해 계산과 맞닿아 있다면 계산 기계인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인간의 예술 감상이 심리적 현상이기보다 수리적 현상이라면, 인공지능이 계산하여 창작한 예술을 인간이 계산하여 감상하는 것 역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 「6. 인공지능이 예술에 던진 질문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