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의 길, 나의 천로역정』에 담아내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었다. 코로나19와 고난으로 움츠러든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게 하고 싶었다. 특별히 이 책에는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을 만드는 동안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도우시고 인도하셨는지, 그 은혜의 현장을 집중해서 기록했다. 거친 파도처럼 고난이 나를 덮치려 할 때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셨다.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서 우리는 부서지고 깨어지지만, 그 고난 가운데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은혜를 누리며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다듬어져 간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그 어둠이 짙게 내리던 기찻길에서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았듯이, 어두운 고난을 겪고 나서야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그곳은 어머니가 계신 곳, 나의 본향 하나님 나라였다.
『천로역정』 의 주인공 ‘크리스천’의 본명은 ‘무자비’, ‘은혜 없음’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자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나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비로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어머니가 약을 발라 주실 때 나는 알았다. 어머니가 나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가 계신 본향은 분명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일 것이다. 본향을 향해 발을 내딛는 크리스천들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p.20
내 나이 스물여덟, 한창 두려울 게 없던 청년의 시기에 죽음의 그늘이 거침없이 나를 찾아왔다. 내 몸은 그 시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내 몸의 더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나는, 짙은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참 빛을 발견한 날로, 그날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그 시간을 글로 꺼내 본다. 1998년 12월, 악몽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 p.23
어머니의 병상 머리맡에는 항상 두 권의 책이 있었다. 한 권은 성경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천로역정』 이었다. 어느 날, 목사가 된 작은형의 서재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천로역정』 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기뻐하자 작은형은 그 책을 나에게 주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천로역정』 을 집에 가져와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가 왜 병상에서도 이 책을 놓지 않으셨는지 알 것 같았다. 하늘에 대한 소망을 끝까지 붙들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책이기 때문이리라. 책을 다 읽고 나 또한 어머니처럼 좁은 길을 가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았다.
‘이 땅에서 나의 사명은 『천로역정』 을 누구나 읽기 쉬운 만화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 p.85
시작부터 나를 넘어뜨리려 했던 아볼루온과의 싸움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승리를 거두었다. 출간의 문을 두드리는 동안 나는 내 실력을 자랑하며 교만에 빠질 뻔했고, 좌절과 탐욕과 두려움에 휩싸일 뻔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셨다. 그날 편집부 담당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나의 이 고백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나의 『천로역정』 은 하나님이 시작하셨다.”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 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어디에서든지 이 고백이 나올 것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마침도 그분의 방법대로 이루시리라.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술에서 찬양이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 힘겨운 시간을 마주할 때면 이번처럼 꼭 붙들어 주세요.
--- p.109
그런데 만화 콘티를 짤 때부터 이런 고민이 들었다.
‘『천로역정』 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을 어떻게 그려야 독자들이 잘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을까?’
『천로역정』 에는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은데, 주요 인물과 그 외 인물들까지 합치면 거의 100여 명이 넘는다. 그 인물들에게 다 다른 성격을 부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여기 나오는 인물들을 잘 기억하면서 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콘티를 짜는 동안 졸음이 오면 움푹 들어간 책상 의자에서 쪽잠을 자곤 했다. 그런데 존 번연의 꿈속에서 『천로역정』 이야기가 전개돼서 그런지, 나도 꿈속에서 『천로역정』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을 경험했다. 물론 만화로 말이다.
--- p.114
만약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갈구해야 할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했던 행위를 들이댄다면, 결국 불법을 행한 자들로 명명되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버림받게 될 것이다. 하늘 가는 여정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을 다쳐 『천로역정』 을 100독을 하고 나서야, 내가 쓴 시나리오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급하셨으면 그림 그리는 손을 다치게 하셨을까 싶었다. 때로는 불평을 쏟아 내기도 했지만, 그 고난의 시간은 책다운 책을 집필하도록 하나님이 이끄신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었다.
“여보게. 나는 『천로역정』 을 단순한 관문 통과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다네.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서 내가 왜 천성 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펜을 들었을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나.”
--- p.141
아내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어두운 벽에 숨어 있던 절망의 거인이 비웃기 시작했다.
“쯧쯧. 거 봐라. 뭘 한다고? 『천로역정』 을 그린다고? 네가 아끼는 딸아이에게 짜장면 한 그릇 제대로 못 사 주는 인간이 천성 가는 순례의 여정을 그리겠다고?”
정말 비참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쳐도 온전하지 않은 손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또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축 처진 마음에 절망이 파고들지라도 말씀이 나를 붙잡고 있다면, 기도가 내 안에서 노래가 된다. 뼈만 남은 앙상한 마음도 분명히 새살이 돋아난다. 절망은 내가 의지하는 신이 없다며 나를 어두운 무저갱으로 내동댕이치려 하지만, 절대로 나를 해치지 못한다.
--- pp.162-164
장비를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할 무렵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들아, 고난이 네게 유익이 되었느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이미 가파른 고난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나의 힘이 되시는 아버지를 부른다.
“나의 힘이 되신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누가 고난의 언덕 너머에 길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p.170
천성을 향해 걸어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이 요구하는 가치를 양손에 움켜쥔 채 그 길을 걸어간다.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 쉽사리 뿌리치지 못한다. 한몫 챙겨 편하게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몫을 잡기 위해 세상에서 서성대는 사람의 발목을 덥석 잡아 묶어 버리는 것이 세상살이다.
하나님은 내 마음이 둘로 나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만 마음을 드리는 자로 서게 하시려 했다. 사망이 문턱에 서 있는 줄도 모른 채, 칠흑 속에 숨겨진 은광을 얻기 위해 손을 뻗는 연약한 인생일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햇살이 되어 생명으로 이끌어 갔다.
--- p.199
온몸으로 그린 그림이 막을 내렸다. 질끈 묶은 긴 머리와 양 어깨에 하얗게 얹혀 있는 비듬, 하얀 입술을 뚫고 나오는 단내도 이제 끝이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선을 그릴 때 환호성을 질러 보리라 무수히 상상했다. 하지만 환호성은 구석진 방 한편으로 부끄럽게 사라지고 서러
움의 눈물만 흘러내렸다.
‘결국 완주했구나….’
사명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 p.215
저녁을 먹고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가정예배를 드렸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는 평소 돌아가면서 하지만, 이날 기도 당번은 특별히 나로 정했다. 온 식구가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 책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믿음이 없거나 믿음을 잃은 자들에게 이 책이 꼭 쓰임 받게 해 주세요. 이 책을 읽고 본향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순례자들이 더 많이 나오게 해 주세요.”
나는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의 주 독자층을 청장년층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독자층이 다양했고, 특별히 다음 세대 어린이들이 많이 읽었다.
책이 출간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TV, 라디오, 신문… 여러 기독교 매스컴에서 방송 출연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말하는 것이 서툰 나에게 삶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 p.239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로역정』 2부를 정말 작업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사실 무거운 마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2부 또한 방대한 작업이다. 큰 영적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이 땅에서 『천로역정』을 그리는 것이 역시 내 사명인가 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키시면 해야지….”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여전히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그때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에는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한번 열어 보자.”
메일의 내용은 이러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신 한 권사님이 책을 구매해 초등학교 5학년 손주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손주가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메일을 보내신 것이었다. “제 손주가 집사님께 전하고 싶은 마음을 영상으로 전달합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그 영상 내용을 아래에 적어 본다.
“저한테 이 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이 책이 보통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런데 그 주인공이랑 제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제 모습을 뉘우치고 있어요. 작가님이 이 영상을 보실 것을 생각하며 인터뷰를 이만 마치겠습니다.”
아이의 눈물의 영상이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코끝이 찡했다. 다음 세대에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더 깊은 묵상을 담은 『천로역정』 2부로 순례자가 되기로 결심한 분들에게 보답하고자 다짐해 본다.
--- p.240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마귀는 수많은 공격으로 우리의 심령 안에 있는 은혜의 불을 끄려고 한다. 하지만 심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은혜의 기름을 부어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며, 나는 이 길을 또다시 걸어간다.
아직 나의 『천로역정』은 끝나지 않았다. 『천로역정』 2부를 마치는 날, 존 번연 목사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최 작가, 이 작품을 만화화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 p.242
어스레한 저녁때가 되면 친구들의 어머니들이 나오셔서 놀이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을 한두 명씩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중에 한 친구는 영토 확장을 더 하겠다고 버티다가 귀가 잡혀 끌려가기도 했고, 어머니의 애타는 부름에 못내 아쉬운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었다. 하
지만 나는 땅을 좀 더 넓혀 보겠다는 욕심으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때 공터 담장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규야, 밥 먹어라!”
결국 나도 하던 것을 모두 멈추고 어머니가 차려 주신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언젠가 하나님이 하늘나라 본향에 가자고 우리를 부르시는 순간이 올 것이다.
“철규야, 집에 가자!”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듯 하나님은 오매불망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 p.247
2019년 5월, 미국에서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어느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님이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을 영국 베드퍼드에 있는 ‘존 번연 박물관’에 대리 헌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두 달 후 그 선교사님을 수원 광교에서 만나 책을 건네 드렸다.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은 그렇게 선교사님의 손에 들려 존 번연의 고향 영국으로 날아갔고, 그해 8월 27일 존 번연 박물관에 헌서되었다. 존 번연 박물관에는 각 나라 말로 번역된 여러 종의 『천로역정』이 있는데, 그곳에 내 책이 거하게 된 것이다.
--- 「나가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