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마지막 숨을 모았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즉 “전투가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후대 사람들이 이순신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장이 하필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이회와 이완이 통곡하자 송희립은 울지 못하게 하고 이순신의 갑옷과 투구를 벗겨 자신이 입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전투를 독려했다. 이완도 자리에서 일어나 북을 두드리며 아직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관음포의 바다는 여전히 차갑게 불타고 있었다. 1598년 11월 19일 오전이었다.
--- 「1장 마지막 전투」 중에서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퍼뜩 들어온 생각이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임금들이었나 보다. 돌림자로 쓰는 ‘신’과도 제법 어울려보였다. 그렇게 해서 큰아들은 희신, 둘째는 요신, 셋째는 순신, 넷째는 우신이라 붙였다. ‘희(羲)’는 팔괘를 처음 만들고, 그물을 발명하여 어업과 사냥술을 알려주었다는 고대 중국의 삼황 중 한 명인 복희에서, ‘요(堯)’와 ‘순(舜)’은 많은 사람들에게 ‘요순시대’로 친숙한 요임금과 순임금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그리고 ‘우(禹)’는 순임금의 뒤를 이어 치수 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하 왕조를 연 우임금에서 딴 것이다.
--- 「2장 순신의 이름으로」 중에서
이순신은 먼저 6척의 판옥선을 견내량 쪽으로 보내 밑밥을 던졌다.몸이 한껏 달아있던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그 밑밥을 덥석 물었다.도망가는 척 한산도 앞바다로 나아가는 조선의 전함을 따라 일본 배들이 줄줄이 쫓아왔다. 익히 알 듯이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한 장면이 되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판옥선들이 두 팔을 벌리듯 일시에 양쪽으로 나아가며 진을 전개했다. 도망치는 척했던 6척 또한 우리 전함이 벌린 곳으로 들어와 빈 곳에 제자리를 잡았다. 학이 두 날개를 맘껏 벌린 것처럼 조선 수군이 반원을 그리듯 포진했다. 이게 그 유명한 학익진이다.
--- 「6장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이다」 중에서
이순신은 그해 4월 1일 의금부의 옥에서 나왔다.백의종군의 시작이었다. 도원수 권율 밑에서 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몸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그러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어서 죽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가 컨트럴할 수 있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막막함, 고통은 거기서 생겨난다. 이순신은 막막했다. 이제 누구를 믿고, 무엇을 위해 왜적과 싸운단 말인가. 나라는 그의 충심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조정에서 입만 가진 이들이 그 입으로 그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난도질했다. 평생 간직해온 일심(一心)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순신은 지친 마음을 이끌고 류성룡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난중일기』에는 옥에서 나온 다음 날 둘이 만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종일 비가 내렸다. (중략) 어두워질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과 이야기하다가 닭이 울고 나서야 헤어져 나왔다.”
--- 「10장 백의종군하라!」 중에서
임진왜란으로 인해 생긴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만도 여러 곳이었다. 이 책에서 계속 살펴봤지만, 전쟁 발발을 알리는 동래성 전투부터, 제2차 진주성 전투, 남원성 전투 등 곳곳의 땅마다 큰 슬픔이 배어 있었다. 사실 승전의 땅이든 패전의 땅이든 전쟁을 겪은 땅 어느 곳인들 ‘다크’하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중에서도 칠천량해전의 패배는 유독 더 아프게 다가왔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투,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군사들이었다. 권력자의 변덕과 잘못된 판단 하나가 우리 수군의 거의 모든 전선과 군사를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키고 말았다. 지금도 칠천량 바닷속에는‘이게 나라냐?’. ‘이게 임금이냐?’는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 「Guide’s Pick 다크 투어리즘」 중에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후 한동안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이순신의 발길을 따라 다녔다. 이미 여러 번 다녀간 길이지만, 책을 쓰겠다는 목적이 더해지자 그 걸음이 조금은 더 무거워졌다. 때론 영광의 길이기도, 때론 고난의 길이기도, 때론 울분의 길이기도 했던 그곳에서 나는 인간 이순신을 다시 만나려고 부러 애를 쓰기도 했다. 시인이 접신이라도 해보려 발버둥 치듯 그곳의 바다와 하늘, 그 사이에 부는 바람 한 줄기의 속삭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이순신과 막걸리 한잔을 함께 하기도 하고, 밤 깊은 바다를 응시하는 그의 빛나는 눈을 훔쳐보기도 했다.
--- 「나오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