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영화들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내가 쓰기는 했지만, 시나리오는 청사진이나 느낌, 아이디어가 되는 편입니다. 맞습니다. 나는 최종적으로 탄생하는 영화를 마음속에서 집필합니다. 그건 바로 느낌에서 나오고, 감독은 그 느낌에 계속 충실해야 합니다. 그 느낌에서 먼 으로 방향을 틀수록 아이디어는 허술해지고 그 결과 영화도 허술해집니다. 영화에 존재하는 것이 시퀀스와 속도를 좌지우지할 테지만, 어쨌든 감독은 자리에 앉아서 아이디어와 함께 찾아온 느낌을 명심해야 합니다.
--- p.72~73
내 내면의 생각은,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가본 장소들과 만난 사람들이 끼친 영향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아이디어를 얻으면서도 그게 어디서 왔는지를 모를 때가 있어요. 그 아이디어들이 딱히 무엇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물고기를 잡으러 가서 물고기를 잡는 거랑 굉장히 비슷합니다. 특정 어종을 좋아하느냐 하는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잡은 물고기가 중요한 거죠. 내 아이디어들도 그렇습니다.
--- p.79
정말이지 세상만사가 미스터리 아닌가요? 나한테 어둠(darkness)은 미스터리입니다. 거기에 뭐가 있고 거기 있는 무엇이 나를 잡아당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반드시 악(evil)일 필요는 없습니다. 악이 거기에 존재하더라도 말입니다.
--- p.79
모름지기 영화는 선(善)의 힘과 어둠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난 믿어요. 그래야 관객들이 어느 정도 스릴을 느끼면서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만약에 감독이 그런 것들로부터 뒷걸음질 친다면, 그는 다름 아닌 쓰레기를 찍고 있는 겁니다.
--- p.86
어떤 것들을 진솔하게 만들려면 그것들을 철석같이 믿어야 합니다. 나는 그런 아이디어들에 충실하려고, 관객을 조종하지 않으려고 정말로 노력합니다. 거기에 다다라서 소재가 나에게 얘기를 하게 만들려고, 꿈 안에서 작업하려고 애씁니다. 그걸 그냥 경험하기만 하면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오면서 그 세계에 있게 될 겁니다. 그러면 잘된 겁니다. 그런 세계를 믿는다면 감독은 거의 모든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 p.97
모든 논란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이게 순전히 내가 지어낸 이야기인가, 아니면 실생활에 이 이야기와 비슷한 사례가 존재하는가?’입니다. 실생활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영화에 집어넣으면 왜들 그렇게 화를 내는 걸까요?
--- p.101
무언가의 표면은 늘 존재하고, 그리고 그 표면 아래에서 진행되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 늘 있습니다. 분주 하게 움직이는 전자(electron)들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보지 못하죠. 영화가 하는 일 중 하나가 그겁니다. 그런 갈등을 보여주는 거죠.
--- p.108
지적인 요소들만 갖고는 작업하지 못해요.
작업하는 사람은 그냥 액션을 취하고 리액션을 받을 뿐이죠. 그건 모두 직감에서 나와요. 법칙들을 준수해야 하지만, 그 법칙들은 어느 책에도 들어 있지 않아요. 기본 구도의 법칙들은 농담거리에 불과해요.
--- p.152
내게 영화는 정치적이지 않아요. 의견을 개진하는 수단도 아니고 특정한 강의 도구도 아니에요. 하나의 사물(thing)일 뿐이에요.
--- p.159
우리는 그냥 자기 자신을 신뢰해야 해요. 우리가 도덕적인 일이나 한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려 한다면, 그게 우리 스토리의 형체를 규정할 거예요.
--- p.172
내게 과정은 즐거운 거여야만 해요. 그저 최종 결과물만 생각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결국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과정이 너무 싫다면 아침에 어떻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얼마 못 가 그 업계를 떠나게 되겠죠. 그러니 그 여정을 사랑해야만 해요.
--- p.208
세상사람 누구도 화나게 만들지 않고 싶다면 우리는 바느질에 관한 영화들을 만들어야 할 거예요. 그런데 그런 영화조차도 위험할 수 있겠군요. (폭소)
--- p.275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통과해가는 느낌이나 기이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존재를 알리죠.
--- p.295
나는 미스터리를 사랑해요. 미스터리의 결말은 우리에게 꿈을 꿀 여지를, 꿈을 계속 꿀 수 있는 여지를 주니까요.
--- p.305
아름다운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어김없이 붉은 개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 p.360
의자에 앉아서 마음이 저 혼자 방황하게끔 놔두는 건 중요해요.
시간이 갈수록 그러기가 어렵지만,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게 헤매다 어디로 들어갈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죠. 뭔가 유용할 듯싶은 곳에 발을 들이기 전에 일상적이거나 부조리한 것, 또는 쓸데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뭔가 유용한 효과가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으면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p.403
두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두려움이 있었다면 아이디어가 부족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런 두려움은 늘 있어요.
나는 마냥 기다립니다. 늘 말하다시피 물고기를 잡는 것과 비슷해요. 어떤 날에는 한 마리도 못 잡는데, 이튿날은 얘기가 또 달라서 고기들이 나한테 헤엄쳐 들어오는 식이죠. 그토록 엄청난 과정이에요. 길을 일단 나서면 그 최초의 아이디어(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로제타석Rosetta Stone 아이디어)가 찾아오고, 거기에 집중하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때맞춰, 때에 맞게 찾아올 거예요.
--- p.492~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