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미적분학(calculus)이 없다면, 휴대 전화와 컴퓨터, 전자레인지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라디오, 텔레비전, 산모를 위한 초음파 사진, 길 잃은 여행자를 위한 GPS도 없을 것이다. 원자를 쪼개거나 인간 유전체를 밝혀내거나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 독립 선언서마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 p.11
“이 책에서는 미적분학을 평소보다 훨씬 넓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수학과 인접 분야들에 퍼져 있는 미적분학의 많은 사촌들과 파생 분야들까지 다룬다. 이러한 빅텐트 관점은 비정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 접근법이 어떤 혼란도 야기하지 않길 바란다. 예를 들면, 앞에서 내가 미적분학이 없었더라면 컴퓨터와 휴대 전화 등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미적분학 혼자서 이 모든 경이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냈다는 뜻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과 기술은 불가분의 파트너 관계에 있고, 이 놀라운 쇼의 스타들이다. 내 말의 요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 미적분학도 중요한 역할(비록 보조 역할을 할 때가 많긴 했지만)을 했다는 것이다.”
--- p.16
“미적분학은 기하학의 부산물로 시작되었다. 기원전 250년 무렵의 고대 그리스에는 곡선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쓴 열정적인 수학자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무한을 사용해 곡선과 직선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일단 그 다리가 완성되면, 직선 기하학의 방법과 기술을 다리 위로 운반해 곡선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무한의 도움으로 기존의 모든 미해결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계획상으로는 그랬다.
그 당시에 이 계획은 분명히 무모해 보였을 것이다. 무한은 의심스러운 명성을 갖고 있었다. 무한은 아무 쓸모도 없으면서 무시무시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모호하고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속성까지 있었다. 무한의 정확한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수인가? 장소인가? 개념인가?”
--- p.42
“아르키메데스는 경이로운 전쟁 무기 설계자였을 가능성이 있고, 뛰어난 과학자이자 공학자였음이 틀림없지만, 그가 불멸의 명성을 누리는 진짜 이유는 수학에 남긴 업적 때문이다. 그는 적분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 심오한 개념은 그의 연구에 분명히 드러나 있지만, 거의 2000년이 지날 때까지 세상 사람들은 이 개념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순히 아르키메데스가 시대를 앞섰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역사상 아르키메데스보다 더 시대를 앞선 사람이 있었을까?
아르키메데스의 연구에서는 두 가지 전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전략은 무한의 원리를 열렬하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아르키메데스는 원과 구, 그리고 나머지 곡선 형태의 수수께끼를 탐구하기 위해 항상 곡선 형태를 많은 직선과 평면과 보석처럼 깎인 면이 있는 입체 형태로 근사했다. 점점 더 많은 조각을 상상하고 그것들을 점점 더 작게 만듦으로써, 근사를 실체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면서 무한히 많은 조각의 극한값을 통해 정확한 값에 접근했다. 이 전략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셈과 퍼즐의 대가가 되어야 했는데, 결론을 얻으려면 많은 수나 조각을 합치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전략은 수학과 물리학을, 즉 이상과 현실을 결합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형태를 연구하는 분야인 기하학을 운동과 힘을 연구하는 분야인 역학과 결합했다. 때로는 역학을 쉽게 하기 위해 기하학을 사용했고, 때로는 순수한 형태에 대한 통찰력을 역학에서 얻음으로써 그 반대의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전략을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아르키메데스는 곡선의 수수께끼를 아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 p.80
“갈릴레이는 과학적 방법을 최초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히 권위자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의자에 앉아 이론을 생각하는 대신에 세심한 관찰과 창의적인 실험과 우아한 수학 모형을 사용해 자연을 심문함으로써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 접근법으로 놀라운 발견을 많이 했다. 그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놀라운 발견은 홀수 1, 3, 5, 7…에 숨겨진 낙체(落體)의 법칙에 관한 비밀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이유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자신의 자연적 위치를 찾아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갈릴레이는 이를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체가 ‘왜’ 떨어지는지 생각하는 대신에 ‘어떻게’ 떨어지는지 계량화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떨어지는 물체를 측정하면서 매 순간 그 위치를 추적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리 위에서 돌을 떨어뜨려본 사람이라면 돌이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떨어지는 돌을 측정하려면 아주 정확한 시계가 필요한데, 갈릴레이에게는 그런 시계가 없었다. 또, 빠르게 떨어지는 돌을 매 순간 추적하려면 아주 훌륭한 비디오카메라도 여러 대 필요한데, 이 역시 17세기 초반에는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