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에는 모두가 함께 잠을 자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일랜드의 한 지역에서는 일가족 아홉 명이 남자와 여자가 머리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두고서 한 침대에서 잤다. 한 남자의 다리는 두 여자의 머리 사이에 놓였고, 반대로 한 여자의 다리는 두 남자의 머리 사이에 놓였다. 그들은 그렇게 따뜻하고 아늑하게 잤다, 마치 펭귄처럼. 따뜻함과 친근함 사이, 아늑함과 신뢰 사이 물리적 연관성은 완벽하게 설명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이런 물리적 연관성이 대부분 끊겼다. 적어도 아이가 아닌 어른에 관해서는 확실히 그렇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앙난방체계 도입에 있다.
--- pp.45-46
어떤 동물이든 체온 조절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는 것 다음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생명 유지 활동인 동시에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활동이기도 하다. 대기 온도는 산소 농도와 다르게 항상 바뀐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으로 경계 상태를 유지하며 온도가 조금씩 오르내리는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동물은 매우 영리한 경제학자들이다. 아니,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행위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동물은 에너지 효율 면에서 어떤 행동이 가장 싸게 먹히는지 알아내서, 소중한 체지방을 조금이라도 아끼겠다는 마음으로 제각기 다른 행동을 놓고 끊임없이 비용편익분석을 한다.
--- pp.88-89
‘행동의 경제’라는 개념에 내포된 여러 역설 가운데 하나는, 너무도 많은 경제학자가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는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이라는 개인의 비용과 편익 차원에서만 끊임없이 계산하는, 이성적인 동시에 속 좁고 이기적인 가상 인간들을 대표하는 존재에게 붙이는 딱지로 사용한다. 사실 교육학적 개념으로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틀린 것이다. 이 개념은 경제학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설명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행동의 경제’ 차원에서 비용편익분석을 하도록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인간의 뇌와 몸은 홀로 고립된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 일원이라는 공동체 차원에서 비용편익분석을 하도록 진화했다.
--- pp.140-141
체구가 큰 동물은 체구가 작은 동물보다 신체 부피, 즉 체구 대비 체표면적 비율이 낮고 단위 부피당 체열 발산량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체구가 큰 동물은 추운 기후에서도 심부 체온이 따뜻한 상태로 유지되지만, 따뜻한 기후에서는 체내 신진대사로 생성되는 열을 되도록 빨리 발산해야 한다. 체구 대비 체표면적 비율이 높은 체구 작은 동물은 체구가 큰 동물보다 체내에 남아도는 열을 한층 효과적으로 발산한다. 베르크만의 법칙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심오한 체온 조절 적응 수단이 체구, 즉 신체 크기임을 증명해준다. 다른 대형 포유동물들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체온 조절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적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 다시 말해 극지방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 사는 개체군은 일반적으로 적도 가까이 사는 개체군보다 체구가 크다. 알류트족, 이누이트족, 사미족 등을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p.185
모든 언어가 온도를 표현하는 동일한 범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미 밝혀졌다. 어떤 언어들은 온도를 ‘따뜻하다(warm)’와 ‘차갑다(cold)’라는 두 단어로 표현하고, 어떤 언어들은 여기에 ‘뜨겁다(hot)’를 추가해 세 단어로 표현하며, 또 다른 언어들은 더 많은 단어로 표현한다. 이 언어들 가운데 많은 것이 온기를 애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다른 언어들에는 이런 비유가 아예 없다. 마리아가 표본으로 삼은 84개 언어 가운데 ‘애정은 온기다’는 비유가 없는 언어가 32개 언어이며, ‘따뜻하다’와 ‘뜨겁다’ 사이의 구분은 대부분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표본을 놓고 보면 ‘따뜻함’을 애정의 은유로 사용하는 용례를 유라시아 언어들, 특히 유럽 쪽 언어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표본에 있던 몇몇 언어들에서는 애정을 나타내기 위해 ‘따뜻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은유적 표현을 다른 언어들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 p.249
역사는 우리 인간이 포식자와 비바람, 특히 치명적일 수 있는 추위를 피할 쉼터를 찾아 지속적으로 공간을 구분해왔음을 가르쳐준다. 인간은 동굴에서부터 시작해 헛간을 거치고 마침내 집까지 다다랐다. 우리는 생존이라는 결정적 동기 때문에 기본적인 숙식 차원을 넘어 다양한 기능을 갖춘 집을 짓기에 이르렀다. 물질문화가 보여주는 여러 증거는 소속감에 대한 필요성을 집이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발상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필요성을 훌륭하게 충족할수록 그 집은 한층 집다운 집이 된다. 즉 집이 가정이 된다. 애착 이론을 들어 설명하자면, 집은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 우리가 특정하게 구분된 공간을 가정이라고 인식하는 인지 메커니즘은, 진화와 개인 발달의 초기 단계에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리적인 여러 메커니즘과 뿌리가 같다.
--- p.278
뇌를 모든 정신병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이론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을 포함해 기분 장애들은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뿐 아니라 중추신경계에 악영향을 주는 그 모든 것이 관련된 신체-뇌 장애로 특징지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심리적 건강관이다. 뇌에 뿌리를 둘 뿐 아니라 신체적·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는 한층 더 크고 포괄적인 체계로서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하는 발상이다. 또 신체에서 중추신경계로의 입력이 인지 상태와 정서 상태 모두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발상이다. 주변부에서 입력되는 것들 가운데는 온도 감지 신호들도 있는데, 이 신호들은 행복감과 우울감 인식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 p.329
온도, 즉 기온은 우리에게 의식적인 관심과 노력을 요구하는 환경의 한 측면이다. 때로는 환경이 다른 것들보다 극복하기가 더 쉽다. 온열중성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환경에서는 신진대사 에너지가 아주 조금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이보다 한층 더 가혹한 기온 환경은 우리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련을 감당하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중앙난방장치와 같은 기술을 발명해 그 시련을 극복한다. 기술은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가진 사회관계망과 사회적 협력을 요구한다. 어쩌면 이 때문에 우리의 체온 조절이 한층 더 복잡한 사회관계망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엉성하게 조직된 사회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원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극단적으로 높거나 낮은 온도가 엄청난 불행과 질병 그리고 죽음을 몰고 올 수 있다. 반면에 선진 사회, 특히 전략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혹독한 기후가 기술 발전을 촉진하고 상업을 증진하고 부를 축적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 p.367
진화에는 기나긴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기후변화에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유전적 진화는 우리에게 문화적 진화를 수행할 힘을 주었고, 아울러 기후변화의 주범인 과학과 기술을 개발할 힘도 주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일으키는 여러 문제를 뛰어넘어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연구들이 그 증거다. 다행스럽게도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초래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적응 능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은 기후변화가 몰고 올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는 조치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적어도 금방 바꿀 수 없는 것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
--- pp.407-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