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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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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49쪽 | 324g | 128*188*17mm
ISBN13 9788937472213
ISBN10 89374722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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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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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화력이 센 말은 결혼을 부정하고 사랑을 저주하고 서로의 존재를 찢어 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총탄을 갈겨 대고 나면 승자도 패자도 없이 기진해진 채로 주저앉아 피를 줄줄 흘렸다. 전쟁의 끝이 매번 그러했다는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남편이 문을 쾅 닫고 나가면 여자는 아이의 옆에 엎드려 울었다. 딸도 커서 엄마가 되는 순간 이 총체적인 고통에 직면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거리」 중에서

민은 과거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정말 과거의 어느 날에 도착할 수 있다면 민과 재와 국은 어디에 닻을 내리고 싶을까.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스물네 살 때를 떠올리면 나는 그들처럼 마음이 흐물거리면서도 여전히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그때 재미있었고 돌아가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내 마음은 거기에 완벽하게 포개어지지 않았다. 단 하루가 마음의 모양을 변형시켰다.
--- 「그 새벽을 지나는 일에 대해」 중에서

애인은 8시가 넘어 모텔에 도착했다. 치킨과 맥주가 든 비닐 봉투와 가방을 내려놓은 뒤 침대에 털썩 앉았다. 너무 힘들다. 애인은 앉았던 자세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 말을 끝으로 둘 다 말없이 누워 있었다. 서로를 위해 기름을 예열하는 시간 같기도 하고 하루 종일 치킨을 튀겨 낸 기름을 식히는 시간 같기도 했다. 안은 애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텔레비전과 화장대, 의자와 탁자, 그 옆의 욕실, 최소한의 가구로 이루어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 「그곳으로 가고 있어」 중에서

그 여자는 너를 닮았고 너 같다가 네가 확실해졌다. 대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너를 다시 보는 건 30년 만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마주침에 놀라고 의아해했을 테지만 어느새 삶에서 불쑥 튀어나오거나 자취를 감추는 우연의 모습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피켓을 든 너를 잠시 바라보았다. 보행자 신호로 바뀌었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갔지만 그는 병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너는 거기 서 있고」 중에서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 그만이라고 말하고 나자 눈물이 부풀어 올랐지만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은주는 몸 안에 생긴 물기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동여맬 줄 알았고 참는 일에 단련돼 있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민 팀장이 다시 은주 씨 하고 불렀고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무언가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 「노래하는 사람」 중에서

송은 목소리에 감정을 싣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숨에 섞인 분노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이게 폭행 상해라 구속감인데 권이 합의를 안 해 주면 일이 복잡해질 거라고 했다. 송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권의 상태와 그녀가 받은 충격과 송의 분노와 자신의 처지와 임에 대해 생각했다. 각기 다른 자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입장과 감정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 「모르는 순간」 중에서

“오빠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요?” 그 말에 인영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얼굴에 거미줄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인영이야말로 어느 것부터 어떤 것까지 얘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지난주보다 좀 더 진해진 나뭇잎들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때문에 많이 힘든 거 알아요.” 송영로의 폭력성에 대해 입을 연다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중에서

내일은 원래 모르는 거야. 그렇지. 그건 알지. 지호가 내 손을 잡았다. 그 애의 얼굴 위에서 웃는 이모티콘이 빛났다. 나는 미래가 두려워. 나도 그래. 지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둘 다 웃지 않았다. 웃지 않아도 나란히 서 있으니 완전히 깜깜하지 않았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이 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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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이토록 비루할 수밖에 없는 걸까? 삶을 산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장마 속을 우산도 없이 터덜터덜 홀로 걷는 일에 불과한 걸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타인을 위해 용기를 내어 오래도록 감추어 왔던 진실을 마침내 말하기로 결심하는 인물, 고통을 받는 누군가가 “완전한 타인이고 자신과 상관없으면서 동시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인물들을 이 책 속에서 만났고, 너무 쉽게 낙담하는 나의 마음속에도 희망이 깃드는 걸 느꼈다.
- 백수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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