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이 일은 한국미술사를 쓰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세 해가 지났다. 이 책은 한국미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신석기 미술 빗살무늬토기의 디자인과 패턴에 깃든 세계관을 풀어냈다.
--- 첫 문장
신석기 어느 A지역 그릇 무늬와 어느 B지역 무늬가 같다고 했을 때, 한국 신석기학계는 A와 B지역은 서로 ‘영향 관계’가 있다고 정리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비슷한 무늬가 ‘무엇’을 ‘구상’으로 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그 구상이 무엇인지 풀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 영향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말하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무늬가 무엇이냐, 그 구상을 밝히는 것이고, 그 패턴에 담긴 ‘세계관’을 그려내는 것이다.
--- p.31
신석기인은 하늘에 물이 있고, 그 물이 구름으로 나와 비가 되어 내린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는 이 물을 구상(雨)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하늘 속 물은 비와 달리 짧게 빗금을 그어 차이를 두었다. 그가 하늘 속 물(짧은 빗금)을 지그재그로 새긴 것은 물(빗방울)이 방방하게 차 있는, 곧 이 세상에 쏟아지려는, 동적(動的)인 모양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눈으로 보면 하늘 속 물 같은 것은 ‘추상’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실제이고 ‘구상’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 p.74
육서통 수(水)에서 하늘 속 물(水)과 경계(파란 하늘) 부분은 갑 골문 위상(二)이다. 이 글자는 한마디로 물(水)의 기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아래서부터 올라가 보자. 강물(水)의 기원은 비(雨)고, 이 비의 기원은 구름(云), 구름의 기원은 하늘 속 물(水)이다. 그러니까 육서통 수(水) 글자는 물의 기원을 한 글자 안에서 차곡차곡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도 읽을 수 있다. 하늘 속 물(水)이 구름으로 내려와, (중국 신석기인들은 파란 하늘 너머에 은하수가 있다고 보았다. 이 은하수는 하늘 속 물이다.) 그러니까 하늘 속에 가득 차 있는 은하수 물이 천문(天門, 八門)을 통해 구름으로 나오고, 이 구름에서 비가 내려 강을 이룬다는 것. 그래서 이 글자에서 핵심은 물의 기원의 기원을 밝혀주는 위상(二)이 될 수밖에 없다.
--- p.87-88
암사동 신석기인은 아가리 쪽에 하늘 속 물(水)을 층층이 새겼다. 이 그릇은 물 층을 7층으로 새겼지만 암 사동 그릇에서는 4층과 5층이 압도적으로 많다(3장 도1 ? 9 참조). 이는 동서남북 또는 사방오주의 방위 개념이 그들에게 벌써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5장에서 논할 것이다.) 암사동 신석기인은 하늘 속 물 층을 층층이 세밀하게 새긴 다음 ‘삼각형 구름’과 물 층 사이에 경계를 둔다. 이 경계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이다. 이 그릇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삼각형 구름 속 빗금이다. 이 빗금은 삼각형 구름 속 물(水)인데, 다시 말해 이제 곧 비(雨)가 되어 내릴 물(水) 또는 수분으로 보면 되겠다. 이 그릇을 빚은 암사동 신석기인은 이 빗금을 하늘과 수평이 되도록 애써 새기려 한 흔적이 보인다. 나중에는 완벽한 수평이 되는데(6장 도48 참조), 이런 사례는 신석기에는 몇 점 보이지 않고(5장 도16) 청동기에 오면 청동거울 다뉴세문경 무늬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다뉴세문경은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패턴을 모르면 해석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그다음 삼각형 구름에서 비가 내리고 그 비는 이 세상(땅·地)을 촉촉이 적시고 알 수 없는 심원[歸墟]의 세계로 스며들고 흘러간다.
--- p.89
구름이 나오는 구멍 천문은 괴베클리 테페 신석기인과 아주 다른 지점이다. 하늘 속 물이 어느 시기에 스스로 구멍을 통해 구름으로 나오고, 이 구름에서 비가 내린다는 것, 그리고 그 비를 맞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태어난다는 우운화생(雨云化生)의 세계관인 셈이다. 물론 괴베클리 테페 신석기인들의 세계관도 우운화생의 세계관인 것은 같다. 다만 물(雨)의 기원인 구름, 이 구름의 기원을 풀어내는 방법이 달랐다. 암사동 신석기인들은 구름의 기원을 ‘하늘 속 물(水)’로 봤고, 괴베클리 테페 신석기인들은 클라우드백cloud bag으로 해결했다. 여기까지는 같다. 그런데 하늘 속에 있는 물이 어떻게 파란 하늘로 구름이 되어 나오느냐가 다르다. 암사동 신석기인들은 하늘 속 물이 스스로 구름이 되어 나온다고 보았고, 괴베클리 테페 신석기인들은 신이 클라우드백을 파란 하늘과 인간 세상으로 내려 준다고 본 것이다.
--- p.121-122
반타원·반원형 구름(云)은 세계 신석기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또 반타원형 구름 속에 점을 찍어 구름 속의 수분을 표현한 것도 세계 신석기 미술에서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런데 암사동 빗살무늬 디자인은 다른 세계 신석기 미술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구름(云)의 ‘기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구름의 기원 하늘 속, 그 하늘 속 물(水)을 파란 하늘 위에 새겨 구름이 거기에서 온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신석기 미술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반도 암사동 신석기 빗살무늬토기 디자인과 패턴을 해석하게 되면 세계 신석기 미술이 한눈에 보인다.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