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내 정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지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다. 닉네임은 ‘엄마는 맨정신’이라는 뜻의 ‘소버마미’로 정했는데, 키보드로 닉네임을 칠 때마다 ‘엄마는 이제 맨정신이야’라는 사실을 강화하고 싶어서다. 게다가 그러면 SM이라는 이니셜로 게시글을 끝낼 수 있다. 여기에 ‘&’만 붙이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다. 어머, 야해라. 나는 블로그 이름을 ‘엄마는 남몰래 술을 마셨다’로 정했다. 내 삶에 아무도(존조차도) 모르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에서 같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은 나를 항상 체계적이고, 아침 커피 모임을 주도하고, 후원금을 모금하고, 학부모 대표에 자원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지, 실상은 전혀 모른다. 다른 엄마들은 내가 술에 취해 있거나 통제 불능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나는 참 짜증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내 비밀을 모른다면, 나 같은 엄마가 세상에 얼마나 많다는 뜻일까? 누가 또 학교 정문 앞에 서서 술냄새를 감추려고 아이들의 하리보 젤리를 몰래 훔쳐 먹고 있을까?
--- p.41
2. 오늘 저녁은 성공이다. 나는 무너지거나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좋은 손님이었다?그랬기를 바란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숙취도 없을 거다. 그래도 정말 슬프긴 하다. 내가 이제 ‘같이 한잔 마시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버려질까봐 아직도 두렵다. 술을 끊으면 초대도 전부 끊길까봐 걱정된다. 너무 얕은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항상 나의 존재 이유였다. 게다가 나는 거의 종일 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하고만 어울리기 때문에 어른과 대화를 나눌 기회는 저녁밖에 없다. 나는 왜 금주를 하는 걸까? 금주가 정말 필요할까? 내가 그렇게 상태가 안 좋았나?
--- p.84
3. 신문을 보면서 간 손상과 중독에 대한 기사는 건성으로 넘기고 소량의 레드와인을 매일 마실 때 생기는 아주 사소한 장점을 자세히 설명하는 기사는 열심히 읽는다. 나는 와인 한 병을 기분좋게 따면서 와인은 (포도로 만들었으니까) 하루 다섯 번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채소와 과일 중 하나라고 혼자서 납득했고, 지중해 생활방식을 따르는 나를 칭찬했다. 나는 지긋하게 나이들었을 때 그리스의 쭈글쭈글하고 생기 없는 노파들처럼 햇볕을 쬐며 와인을 홀짝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이름 없는 그리스 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입고 수많은 손자와 증손자의 존경을 받으며 백열 살 넘게까지 살다가 어느 날 오후 낮잠을 즐기는 도중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그런 할머니 말이다.
--- p.93
4. 나는 이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칼리시다. 강하고 현명하고 아름다운 칼리시?용들의 어머니 대너리스 타가리옌. 칼리시가 곤경에 처했다고 샤블리에 손을 뻗는 모습은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 칼리시라면 무결병 군단을 풀겠지. 사소한 중독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할 거다. 불꽃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상처 하나 없이 나오는 여자잖아! 그러므로 이제 와인 마녀가 어깨를 두드리면 나는 칼리시를 상상하면서 세 마리의 용을 풀어놓는다. 그러면 나의 용들은 지체 없이 머뭇거림도 없이 사악한 마녀를 재로 만들어버린다.
--- p.73
5. 고기능 알코올중독자 술고래의 한 가지 특징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정말로 그렇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우리는 백조와 같다?물 밖에서는 수월하게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고기 똥 사이로 미친듯이 발을 철벅거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같은 사람의 집은 대부분 겉으로는 잘 정돈되어 보이지만 찬장이나 침대 밑, 지하실을 들여다보면 잡동사니와 동그랗게 뭉친 먼지 덩어리가 가득하다. 술을 많이 마실 때는 수많은 일을 전부 할 시간이, 뭘 어디에 두고 어떻게 할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서랍에 처박은 다음 술을 한 잔 더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똑같다는 것이다. 세상에, 성가신 감정이 하나 있는데 정말 마음에 안 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에라 모르겠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버리고 술이나 한 잔 더 따르자.
그러다가 술을 끊으면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는, 그동안 거부하고 무시했던 감정, 곰팡이가 피서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고 기능장애를 일으켰던 감정을 치우기 시작한다. 그러니 실제 환경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원은 이미 치웠고, 이제 집을 치울 시간이다.
--- p.140
7. 페이스북의 밈을 인용하자면, 삶은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역경이 생겼을 때 구멍을 파고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틀어박히는 것으로 대응하면 다음에는 더욱 무서워진다. 우리의 세상이 점점 더 작아진다. 그러나 태풍 속으로 걸어나가서 그것을 경험으로 바꾸면, 정말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다음번에는 더욱 용감해질 것이다.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세상은 더 커지고 밝은 전망으로 가득해진다.
--- p.226
8. 금요일 밤이다. 파티가 열리는 밤. 정말 떨린다. 샴페인을 한 잔 마시면서 긴장을 풀 수도 없는데 도대체 왜 파티를 열기로 했지? 너무 빨라! 내가 미쳤나봐. 게다가 옷도 엉망인데, 새 옷을 살 돈이 없어. 사실 난 이 파티를 열 돈도 없잖아. 아무도 즐겁지 않을 거야. 전부 다 취소해야 해!
뱃속에서 불안의 매듭이 꿈틀거린다?술을 마시던 시절이었다면 술에 빠뜨려 죽였을 그것 말이다. 이래서 나는 파티를 거의 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점심때 (꿈틀거리는 뱀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서) 와인을 한두 잔 마셨을 것이고, 그런 다음 준비를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두 잔 더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적어도 두 잔. 7시 30분이면 ‘만취 상태’였을 거고, 따라서 9시에는 완전 엉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가만있지 못하는 이 뱀과 함께해야 한다. 나는 전적으로 할 가치가 있는 모든 일에는,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모든 일에는 이런 느낌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불안을 피한다면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니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취업 면접을 보기 전마다, 첫 데이트를 하기 전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도, 아이를 낳기 전에도, 백패킹을 가기 전에도 똑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하지 않고 피했다면(또는 그 전에 만취했다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불안은 당신이 경계를 넓히고, 앞으로 나아가고, 황소의 뿔을 잡고 있다는 표시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 p.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