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동물입니다. 우리는 ‘인간(人間)동물’이고, 동물은 ‘비인간(非人間)동물’이죠.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는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두드러진다고 일관되게 강조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동물 대신 ‘비인간동물’을 쓴 것도 다윈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동류(同類)의 존재’인 거죠. 이 책의 목표는 제가 북극곰을 만났을 때 느꼈던 그 동류감을, 구석기시대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들어가며: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만남」중에서
신석기 혁명이 일어난 지 1만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과 동물이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라고 말이죠. 한때 야생동물이었던 존재가 인간의 땅에 들어와 가축이 되면서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편안하게 먹을거리를 얻는 등의 이득을 보았지요. 그런데 지금의 가축들도 그런 이득을 얻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A4 용지 크기의 닭장에서 평생을, 그것도 새끼 때 도축되는 삶을 살아가는 닭에게 이런 질문은 무용하겠죠.
---「1부: 동물은 왜 불행해졌을까?」중에서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비인간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욕망을 지닌 한편, 그들을 사랑하거나 그들에게 위로받으려는 감정에 휩싸이지요. 그렇기에 인간은 도덕적 딜레마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존재예요. 민경 씨네 사례에서 봤듯 우리는 비인간동물에 대해 완전히 모순된, 양립할 수 없는 도덕관을 동시에 갖고 삽니다. 두 가치관에 동등한 무게를 부여하려 한다면, 인간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파탄 지경에 이르고 말 거예요.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모순을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감내하려 하기에 위대합니다. 과거 인류가 불편한 마음을 씻고자 제의를 올린 이유나, 가축을 키우면서도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여러 불문율을 지킨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에요. 우리 때문에 겪는 동물의 고통을 제대로 응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의 장막을 조금이나마 걷어 낼 수 있습니다.
---「1부: 동물은 왜 불행해졌을까?」중에서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역사학자 에이미 넬슨(Amy Nelson)은 ‘라이카의 유산’(The legacy of Laika)이라는 글에서 라이카를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인간도 우주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둘째, 미소 냉전 시대 피 말리는 우주 경쟁에서 소련의 대표 선수였다.
셋째, 동물실험에 이용된 ‘파블로프의 개’였지만,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었다.
인간은 첫째와 둘째만 기억하고, 셋째는 무시합니다. 그런데 라이카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세 번째 사실이지요. 인간은 제멋대로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라이카를 우주 영웅으로 추앙하면서, 한 해 2억 마리 가까이 되는 실험동물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요..
---「2부: 비인간동물님, 정말 안녕하신가요?」중에서
‘왜 돌고래만 특별한가? 또 다른 종차별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죠. 여기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겁니다. 돌고래는 인간이 가진 ‘인식론적 한계’ 안에서 특별하다고요. 유인원, 코끼리 등과 함께 돌고래는 거울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몇 안 되는 동물입니다. 고도의 사회적 생활을 하며, 문화를 전승하고 교류하죠.
지금까지 과학이 우리에게 알려 준 사실입니다. 이런 동물일수록 평생을 감금된 채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동물보다 크고, 동물원은 지옥과도 같을 거예요. 우리는 과학이 알려 주는 한에서 동물을 존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식의 폭이 넓어진다면, 어쩌면 사자와 호랑이, 사슴도 돌고래만큼 특별해질지 모릅니다. 이렇게 인간과 비인간동물은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고 있습니다.
---「2부: 비인간동물님, 정말 안녕하신가요?」중에서
비유하자면 다윈은 진화의 패턴이 단계를 거쳐 올라가는 ‘사다리’ 방식이라기보다, 불규칙적으로 가지를 뻗어 가는 ‘나무’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의 시원, 최초의 종(種)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어 가는 거죠. 나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해졌고, 그 끝의 가지가 인간을 포함한 현재 생물 종입니다.
이 진화의 생명수(生命樹, Tree of Life)에서는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지 않습니다. 단지 무수히 가지를 뻗어 온 진화의 나무에서 어쩌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은 가지 하나에 불과하거든요. 이 가지가 언제 다른 가지로 갈라져 나갈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요.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예정된 자연사의 법칙이라기보다는, 각 종이 환경에 적응하고 번식함으로써 나타나는 우연적이고도 결과적인 역사에 가깝습니다.
---「3부: 우리 안의 종차별주의」중에서
한동안 과학자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게 생긴 동물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봐 왔습니다. 물고기 뇌에는 인간 두뇌와 달리 새겉질(신피질)이 없으므로, 이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어요. 새겉질은 대뇌의 바깥 부분에 위치한 세포층으로, 의식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2000년대 초 들어 반론이 거세졌습니다. 해부학적 구조가 인간과 비슷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행동학적 근거는 많다는 주장이 제기된 거예요.
---「3부: 우리 안의 종차별주의」중에서
피터 싱어는 도덕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인류사는 도덕공동체가 확장하는 역사’였다고 말합니다. 고대 로마제국은 물론 상당수 사회에 노예제도가 있었죠. (…)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노예를 두는 일이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비도덕적인 행동입니다. 피터 싱어는 ‘인류의 역사를 보면, 애초에 모든 인간을 도덕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요. 지난한 투쟁이 시도되고 가까스로 성공하며 흑인,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이 도덕공동체에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죠. 나아가 그는 주장합니다. ‘동물도 도덕공동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요
---「4부: 동물 해방을 위한 철학 수업」중에서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동물권리론’의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의 철학자 톰 리건(Tom Regan)입니다. ‘동물은 왜 존중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리건은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본래적 가치(inherent value)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죠. 본래적 가치는 계약이나 합의를 통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평가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에요. 태어날 때부터 자동으로 부여됩니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종의 동물이 저마다 욕구와 목표, 선호를 갖고 생활해요. 삶을 살아가는 동안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불안을 피하고 안정을 희구하는 등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죠.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인간동물도 ‘삶의 주체’(subject of life)로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4부: 동물 해방을 위한 철학 수업」중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사회적 거리’를 강조했어요. (…) 하지만 밀집 사육되는 공장식축산 농장에 사는 동물은 애당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게 불가능하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밍크들이 모여 사는 농장이 바이러스의 저수지가 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편 소, 돼지, 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수성이 낮은 종이어서 굳이 방역 조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므로 비말이나 분뇨 등을 통해 퍼지지도 않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돼지와 닭이 대량 살처분됐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바로 공장식축산 체제 특유의 ‘밀어내기’ 생산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5부: 동물권에도 뉴노멀이 필요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