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읽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한 그는 디테일을 다룰 줄 아는 독자야말로 대작의 비밀을 풀어내는 열쇠라는 점을 강조했다. (…) 작가로서 나보코프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섬세한 디테일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접근은 궁극적으로 나보코프 강의법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강의를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디테일, 그리고 감각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그 디테일 간의 조화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없는 책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편적 관념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간통에 대한 톨스토이의 시각은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톨스토이의 예술을 즐기기 원하는 좋은 독자라면 반드시 마음속에 그려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백 년 전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오가는 기차의 객차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듯이 말이다.”
---pp.20~21
러시아의 진보적 비평가들은 그(『외투』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서 사회적 약자의 이미지를 느꼈고, 이야기 전체는 일종의 사회적 저항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외투』는 뭔가 훨씬 그 이상이다. 고골 문체의 짜임을 구성하는 틈과 어두운 구멍들은 삶이라는 짜임이 가지고 있는 허점이기도 하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원대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부조리하게 논리적인 힘은 이들이 헛고생을 계속하게 강요한다. 『외투』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이것이다. 이 철저하게 헛된 세상에서, 헛된 겸손과 헛된 지배의 세상에서 열정과 욕망, 창조에 대한 갈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모든 재단사와 손님들이 무릎 꿇고 경외하는 새 외투인 것이다. 도덕적 측면, 도덕적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도 선생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는 도덕적 교훈 역시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해 버려서 어떤 발전도, 어떤 투쟁도, 어떤 도덕적 목적과 노력도, 별의 궤도를 바꾸는 것처럼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것은 고골의 세상이고 톨스토이와 푸시킨, 체호프 혹은 나의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고골을 읽고 나면 눈이 고골화되어 가장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그의 세상을 쉽게 발견한다. 나는 여러 나라를 가 보았는데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있어 외투와 같은 어떤 것이 고골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했을 이런저런 사람들의 열렬한 꿈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pp.125~126
결국 우리는 항상 문학이 관념의 패턴이 아니라 형상의 패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관념은 한 권의 책이 갖는 형상과 마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료빈이 무엇을 생각했는가도, 톨스토이가 무엇을 생각했는가도 아니다. 흥미로운 존재는 바로 사고의 전환, 변화, 몸짓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하는 작은 벌레다.
---p.315
정치적 성향을 가진 비평가들은 인물에게 어떤 정치 성향도, 어떤 강령도 부여하지 않는 체호프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게 바로 핵심이다. 체호프 속 무능한 이상주의자들은 테러리스트도, 사회 민주 당원도, 신예 볼셰비키도, 러시아 수많은 혁명 정당의 당원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체호프적 주인공은 짊어지고 가지도, 내던져 버리지도 못하는 짐을 인 채로 모호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의 진실을 담아내는 불행한 전달자다. 체호프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넘어지는 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도 불행하게 만드는 그들은 형제나 가까운 지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즉 머나먼 타국 흑인들, 중국의 막노동자, 먼 우랄에 사는 근로자의 아픔을 이웃이나 아내가 겪는 불행보다 더 쓰라린 도덕적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다. 체호프는 전쟁 전, 혁명 전 러시아의 이러한 지식인 군상을 섬세하게 그려 내면서 작가적 기쁨을 만끽했다. 이들은 꿈꿀 수 있었지만 지배는 못했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이의 삶을 망가뜨렸고, 바보 같고 나약하고 쓸모없고 신경질적이었지만, 체호프는 그런 유형의 인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가 축복받은 것임을 보여 준다. 기회를 놓쳤고, 행동을 피했고, 만들지도 못할 나라를 설계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열정과 불같은 자기희생, 순수한 영혼, 도덕적 고귀함으로 가득 찬 사람이 언젠가 살았었고, 지금도 무자비하고 추악한 러시아의 어딘가에 어떻게든 살고 있을 거라는 사실 자체가 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약속이다. 훌륭한 자연의 법칙 중 가장 훌륭한 것이 약자 생존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pp.462~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