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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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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442쪽 | 720g | 140*215*30mm
ISBN13 9788967350727
ISBN10 89673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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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장병들은 부산항을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돌아올 수 있을까?’ 그들은 함께 부산항을 떠나지만 돌아오는 자들과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로 갈릴 것은 뻔했다. 전장으로 가는 월남 파병 장병들에게 앞으로의 부산항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곳이었다. 산 자들은 무사히 부산항에 돌아와 성대한 환영을 받을 것이요, 죽은 자들은 항구에 돌아오지 못한 채 그 혼이 구천을 떠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산항을 떠나는 군함에서 장병들은 마땅히 군가를 불러야 했건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목청 터지도록 백야성의 ‘잘 있거라 부산항’을 불렀다.”--- 「군가 대신 ‘돌아와요 부산항에’」

“시련을 극복하는 조용필의 끈기는 항구의 정신과 통한다. 흔히 부산항의 인문정신으로 손꼽는 것이 해양성, 개방성, 민중성이다.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길목인 부산항은 거칠지만 열려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부산항을 통해 사람과 물자뿐만 아니라 문화도 유입된다. 모든 문화를 개방적으로 수용하는 부산항은 여러 문화를 비벼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 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용필이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밴드를 만들어 부산에서 활동한 것이나 부산에서 처음으로 유행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전국으로 전파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산항의 개방성은 그저 빗장을 여는 수동적 행태가 아니다. 과거의 문화에 새로운 문화를 가미해 다른 문화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창의에 가깝다. (…) 부산다움도 ‘부산항의 인문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는 토건의 이념은 더 이상 부산다움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여러 시대가 공존하고 과거 속에서 미래를 재생시키는 순환과 재생의 인문정신이야말로 진정 부산다운 부산을 창조하는 길이다. 가왕 조용필의 귀환이 수많은 대중의 심장을 바운스bounce하게 만들었듯이 ‘돌아온 부산항’이 인문정신을 통해 이 시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날을 기대해본다.”--- 「부산엔 여러 시대가 공존한다」

“부산에서는 500여 명, 영도에서는 150여 명의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제주도를 떠나 왜 멀리 영도까지 왔을까? 제주도 해녀들의 디아스포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제주 해녀들이 이주를 결행하게 된 때는 개항 이후다. 해녀들은 조선 전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이주했다. 이를 ‘바깥물질’이라 하고 제주를 떠난 해녀들을 ‘출가 해녀’라 한다. (…) 해녀들이 처음으로 바깥물질을 시작한 시발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부산 영도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왜냐하면 해녀들을 움직인 자들은 객주였으며, 이 객주에게 돈을 대준 이는 부산을 근거지로 한 일본인 해조 무역상이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바깥물질이 시작된 이유는 해초인 우뭇가사리를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우뭇가사리는 일본에서 비단 산업과 공업용 원료로 쓰이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해녀 노래 가운데 “이여싸나 이여싸나”라는 후렴구가 달린 노래가 있다. “등바당을 넘어간다 다대끗을 넘어가민 부산 영도이로구나 이여싸나 이여싸나”로 끝난다. 이처럼 ‘이여싸나’ 해녀 노래에서도 바깥물질의 종착지는 부산 영도였다.”--- 「작은 제주 ‘영도’」

“임시수도 부산의 다방에서 자주 도마에 오르는 또 하나의 가십은 ‘커피의 공급처’였다. 당시 커피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상품이었을 뿐 아니라 전쟁 기간 동안 급증했던 다방의 수요에 맞춰 커피를 조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방들이 어떻게 커피를 공급했는지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십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한국전쟁 기간에 커피가 흘러나온 곳은 미군 부대였다. 미군의 PX를 통해 유출된 인스턴트커피가 다방으로 공급되었고, 이것이 당시에 커피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미군부대와 커피의 대중화」

“문인들 가운데는 비참한 피란의 현실을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자살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임시수도 부산에서 시인들의 자살 사건은 문학예술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소설 『밀다원 시대』에서도 끝 무렵에 박운삼 시인의 자살사건이 나온다. 소설 속 박운삼은 실제로는 낭만파 시인 정운삼이다. 내성적인 정운삼은 실연의 슬픔까지 겹쳐 자신의 원고를 친구에게 맡기고 밀다원 다방에서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자살 사건이 벌어지자 밀다원은 문을 닫았고, 아래층의 문총 사무실마저 집수리라는 핑계로 쫓겨났다.”--- 「문인들의 시대, 밀다원 시대」

“1960년대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도다리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1962년에 영도다리는 ‘죽음의 다리’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이틀 사이에 청소년 3명의 자살미수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기 때문이다. 계모의 학대와 실직을 비관해 영도다리에서 투신한 주호경(18), 부모에게 서울 갈 여비를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영도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한 김승일(18), 동생의 입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비관해 영도다리에서 몸을 던진 최명순(20) 등의 사건은 모두 1962년 3월 9일에서 10일 사이에 일어났다. ‘봄의 영도다리는 죽음의 다리’라는 오명을 안겨준 최악의 청소년 자살미수 사건은 당시 언론을 공분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다리라는 오명」

“하지만 영도다리에 온 이들은 불안한 심정을 떨치지 못했다. 언제 전쟁이 끝날지, 과연 헤어진 북의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을지, 전선으로 나간 아들은 살아서 돌아올지, 매시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살아냈다. 이런 불안한 심리와 우울한 시대 배경이 겹쳐지면서 영도다리 아래에는 점집들이 번창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점 보는 집이 몇 곳 있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80여 곳까지 늘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점쟁이들이 노점을 차리면서 영도다리 아래에는 점바치 골목이 조성되었다. 전쟁 동안 먹고살기 위해 점집을 차리는 생계형 점바치도 많았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영도다리 아래(남포동 쪽)를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제방을 따라 점 보는 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말이 점 보는 집이지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행상과 다름없다. 사주, 팔자, 궁합, 운수 등을 써놓은 종이를 좌판 위에 깔고는 수많은 점쟁이가 점을 봐주거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도다리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이를 이용해 점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을 쳐주거나 독경을 하는 점복업에 주로 종사했다. 1942년부터 영도다리 인근에서 점복업을 했던 김용진 할아버지에 따르면 전쟁 기간 중 영도다리 아래의 점쟁이 대다수는 맹인이었다고 한다.--- 「영도다리와 점집의 번성」

“감천동 산동네에 가면 모두들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다. 푸른 천마산과 옥녀봉이 감천동 산동네를 따뜻이 보듬고 있으며, 남쪽에는 파란 바다와 감천항이 펼쳐져 있다. 바다를 낀 부산 산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두 번째는 60도에 이르는 급경사 지역에 켜켜이 쌓여 있는 주택 군락이다. 이 주택 군락은 건설 중장비도 없던 시절에 오직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정말 기적이라 할 만큼 작은 집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호사가들은 이 풍경을 보고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천동 산동네는 차라리 ‘남해의 다랭이논’에 비유할 만하지 않겠는가. 바닷가 근처의 경사진 산비탈을 층층이 개간하여 만든 계단식 논은 바닷가 농촌의 ‘경작의 미학’으로, 층층 계단처럼 집들로 쌓인 감천동 산동네는 바닷가 산동네의 ‘건축의 미학’으로 대구對句를 세울 만하다. 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다랭이논이나 산동네나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 좁은 땅을 억척스럽게 이용하려는 ‘가난과 극복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부산의 산토리니 VS 부산의 다랭이논」

“1980년대 부산은 ‘왜색 문화의 전파 기지’로서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다. 한일 수교 이후 우리나라의 관문이자 일본과 가까운 부산은 다시 일본인들의 방문이 가장 높은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부관 페리호를 통해서 일본 서민들의 여행과 보따리 행상들의 방문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카메라 몇 개를 들고 와서 판 뒤 그 돈으로 부산에서 여행을 즐기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한편 일본의 공중파가 부산에서 유행해 일본의 NTV방송이 KBS, MBC와 더불어 3대 방송으로 꼽히기까지 했다. 파라볼라 안테나(일명 접시형 안테나)의 보급이 일반화되자 일본 TV를 시청하는 부산 시민이 크게 늘어났다.”--- 「왜색문화의 전진기지」

“지금도 일본인들은 동래 온천을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동래 온천을 향해 품었던 온천욕의 욕망은 꽤 오래된 것이다. 세종 때 조선 정부가 교린정책에 따라 삼포를 개방해주자 일본인들의 동래 온천을 향한 발걸음이 크게 늘었다. 타국에서 온천욕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동래 온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인들의 투어리즘tourism 때문에 적잖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내이포(경남 창원 진해구)를 통해서 서울로 들어온 일본인들은 귀국할 때 꼭 동래 온천을 방문하고자 했다. 이렇게 가는 길은 한참 돌아가는 경로이므로 그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조선인과 말들이 몹시 지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종은 부산포의 일본인들은 동래 온천으로, 내이포의 일본인들은 영산 온천으로 분산시켜 목욕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동래 온천을 좋아했던 일본인들이 이런 명을 제대로 지켰을지는 의문이다.”--- 「동래 온천을 향한 일본인들의 욕망」

조선인들에게 송도 해수욕장이 주는 문화 충격은 매우 컸다. 유교적 사고가 지배하던 때라 반나체로 활보하는 송도 해수욕장은 이국 문화를 접하는 신세계였던 것이다. 송도 해수욕장에 가면 반자연주의자들의 왕국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슴에서 엉덩이까지만 가린 인어 떼가 놀고 있고, 휴식장 그늘 밑에는 가슴을 열고 맥주를 마시는 풍미가 있었다. 이뿐이랴! 사랑을 실은 보트를 밀고 가는 애인들의 속삭임도 송도의 여름 표정이다. 앞서 말했던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이렇게 만화경 같은 송도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다 벗고 놀터’인 근대 해수욕장의 고민은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 떼어놓을 것인가에 있었다. 그리하여 해수욕장은 남성과 여성들이 따로 헤엄을 치도록 경계를 지었다. 쉽게 말하면 남성용과 여성용 해수욕장을 따로 두었던 것이다. 부산부도 송도 해수욕장이 협소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남녀 혼탕임을 유감으로 생각해서 1927년에 부인해수욕장을 신설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약 4000원의 공비를 들여야 했다.
--- 「1927년 ‘부인 해수욕장’ 신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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