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의 건축 역시 없음 또는 비움과 관계가 깊다. 모든 상념과 욕망을 끊어 버리는 곳에 선(禪)이 있다고 했으니, 표현적 욕망으로 가득한 장식과 기교를 버린 건축이 선의 건축과 통하리라. 선가의 관점에서 보면 건축이란 세우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이다.
개심사 대웅전의 마당이 바로 그렇다. 개심사의 마당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들어가기는 어렵다. 마치 마음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을 열기는 무척 어려운 것과 같이.---「서산 개심사 “말을 접고 마음을 여는 곳」
건축에서 내려놓아야 할 최후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중력이다. 건축 발전의 역사는 중력을 거슬러 더 넓고, 더 높은 건물을 구축하려는 역사였다. 구도의 건축은 중력을 내려놓고, 허공에 건물을 매달고, 대지를 박차고 날아가야만 오를 수 있는 수직 절벽 위에 건물을 앉힌다.
건축에는 구조에 의한 아름다움이 있다. 견고하고 안정된 건축물에서 구조의 아름다움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구조는 너무나 평안한 안정을 누리고, 너무나 일상적인 상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구조미構造美란 쓰러질 것 같고,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경계에서 생겨난다. 거대한 지붕이 공중에 떠 있을 때, 가늘고 높은 전망탑이 산 위에 솟았을 때, 이를 아름답다 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랜드마크라 한다. 자칫하면 지붕이 무너질 것 같고, 전망탑이 쓰러질 것 같은 그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구조의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금강산 보덕암 “백척간두에서 진리를 구하다」
문제가 좋아야 해답도 좋듯이 장애가 있어야 독창적인 해법도 나타날 수 있다. 까다로운 조건이 많을수록 오히려 건축적 풀이는 즐거워진다. 흔히 평지에 네모반듯한 대지, 주변에 아무런 건물이나 장애요소가 없는 대지를 좋은 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러한 땅은 어떤 건축을 해도 해답을 알 수 없는 어려운 땅이다. 마치 백지 수표에 얼마를 써야 할지 모르는 것과 같이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려운 땅이다. 건축에 장애란 없다. 단지 풀어야 할 즐거운 과제가 있을 뿐이다.---「고창 선운사와 참당암 “장애는 무애다」
19세기까지 건축은 일종의 장식예술이었다. 20세기에 들어 모더니즘 건축이 장식을 죄악시하고 최소화하는 도그마를 주장했지만 장식이란 건축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다. 건축물의 표면을 보호하며, 인간과 구조물 사이에 새로운 층위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단순한 실내 공간을 또 다른 세계로 탈바꿈시키는 게 장식의 역할이다. 또한 무위사 극락전과 같이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뛰어난 솜씨로 작품성까지 겸비한 장식은 오히려 건축의 세계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무위사 극락보전의 골격은 간결하고 건실하다. 그 골격 사이에 끼워졌던 벽화들은 생명력이 넘치고 다양하며 풍부하다. 튼튼한 골격과 아름다운 장식들. 극락이란 이렇게 이루어진 곳이 아닐까? 극락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 건축물에 있다.---「강진 무위사 “회벽에 그린 극락의 세계」
유적과 폐허는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태도이다. 유적은 남겨진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보존할 자산으로 여긴다면, 폐허는 오히려 사라진 것들을 상상하고 남겨진 것보다 더 큰 전체를 그리워한다. 유적은 남겨진 현재를 최대한 전승하여 미래의 유산으로 남기려 한다면, 폐허는 사라진 전성기 때를 유추하고 최초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과거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충주 미륵대원은 유적지라기보다 폐사지라 불러야 마땅한 폐허이다.---「충주 미륵대원 “폐허에서 최초의 힘을 만나다”」
미황사에서 열반한 스님들은 달마산의 지형과 하나가 되었고, 해안 백성들의 염원과 하나가 되었으며, 땅과 바다의 모든 생명체와 하나가 되었다. 한국의 절들이 산악과 하나가 되어 지형적 토착화를 이루었다면, 미황사는 더 나아가 수륙의 모든 생태계와 하나가 되어 신앙적 지역적 토착화를 이루었다. 절은 산이 되었고, 스님은 생태계로 돌아갔다. 이 근원적인 회귀야말로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지 않을까?
---「-해남 미황사 “달마는 산이 되었고 게와 거북으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