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프루로 시작하는 제4왕조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연달아 지어진 시대이지만, 피라미드의 규모로 왕권의 강함과 약함을 따지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제4왕조 전반기는 거대 피라미드가 필요했던 시대였다. 스네프루, 쿠푸, 카프레 시대의 피라미드는 이 세상의 신인 파라오가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함으로써 태양신의 위대함과 함께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기념 건축물이었다. 거기에 참가한 백성 역시 자신들의 태양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자진해서 노동으로 봉사함으로써 커다란 돌을 쌓아올리는 일에 땀을 쏟았다. 완성된 거대 피라미드는 눈부시게 빛나며 태양신과 파라오의 모습을 지상에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쿠푸」중에서
고대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사각뿔 모양의 거대한 건축물은 고대 이집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기본적으로 ‘왕의 무덤’으로 지어졌다. 가장 오래된 계단 피라미드는 죽은 왕의 영생과 부활을 북반구 주극성에 기원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었다. 왕의 영생과 함께 강대한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었다. 제4왕조가 되자 피라미드는 태양신앙의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축제의 장치이기도 했다. 태양신앙의 중심지 헬리오폴리스(고대 이집트어로는 이우누, 카이로 시내의 알 마타리야 지구에 있었다)의 대사제를 스네프루가 맡게 되면서 왕가와 태양신앙은 지극히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피라미드는 계단 모양에서 단면이 이등변삼각형인 일반형 피라미드가 되었고,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형태가 되어 동쪽 지평선에서 영원함을 의미하는 태양의 일출로 영생과 부활을 상징했던 것이다.
---「피라미드란 무엇인가?」중에서
3대 피라미드인 대스핑크스가 있는 장소는 주변보다 한 단이 내려간 곳에 있는데, 이는 채석 때문에 생긴 것으로 얼마나 많은 대규모의 채석이 이루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표층부 등 중요한 부분에는 질 좋은 석회암이 사용되었다. 그 경우에는 먼 곳까지 나가서 채석을 했다. 유명한 곳은 기자에서 나일강 건너에 있는 투라 지역이다. 그곳에는 돌을 깎은 흔적이 남아 있다. 다듬은 돌들은 배에 실어 나일강을 건너 옮겼다.석재가 도착하면 이제 쌓아 올리기 과정에 들어간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왼쪽 그림처럼 피라미드에 경사로를 만들어서 쌓아 올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높아질수록 경사로의 높이나 폭을 조정해야 하고 어마어마한 노력과 건축 자재가 필요한 탓에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또한 경사로가 높아지면서 폭도 좁아지기 때문에 강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의문시된다. 이렇게 유명한 건축물인데도 건설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명확한 기술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피라미드 만드는 법」중에서
피라미드의 건설 현장 하면 흔히 채찍질을 당하며 일하는 노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는 최근 조사에 따라 말끔히 사라질 전망이다. 대스핑크스에서 남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에 노동자들의 주거 흔적으로 보이는 도시의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의 생활환경이 충분하게 갖춰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주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의 공동 주택에서 숙박했다고 한다. 또한 극심한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도록 식생활도 보장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시 안에는 매일 대량의 빵이나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주방이 있었다. 그 재료가 되는 곡물이나 채소, 고기 등도 나라에서 제공했다. 게다가 식사뿐만 아니라 의류나 샌들 등까지도 지급했다고 한다. 그동안 가려졌던 피라미드 노동자들의 생활이 베일을 벗으려 하고 있다.
---「피라미드 건설 도시」중에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남긴 유명한 말인데, 실제로는 나일강의 퇴적작용으로 나일강 삼각주가 땅을 넓혔다는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이집트를 상공에서 바라보면 나일강의 동서쪽에는 검은 땅이 있고, 그 바깥쪽에는 붉은 땅의 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 검은 땅은 식물의 은혜를 가져다주는 비옥한 땅인데, 사람들은 ‘검은 땅은 생명의 세계, 붉은 땅은 죽음의 세계’로 인식했다. 나일강은 1년에 한 번 수위가 올라가 범람을 일으킨다. 이 범람은 상류에서 유기물을 포함한 토양을 하류로 운반해 그 유역의 땅에 퇴적했다. 물이 빠지면 그곳에는 비료를 주지 않아도 비옥한 경작지가 생겨 있었다. 이 환경 덕분에 이집트는 농업이 발달하여 풍요로운 나라가 된 것이다.
---「세 계절로 이루어진 이집트」중에서
피라미드 다음으로 이집트 여행객이 많이 찾는 인기 명소는 아마도 신전일 것이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신전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신들에게 의례를 올리는 장소가 바로 신전이며 의례를 실행하는 사람이 사제였다. 사제들의 사회적 지위는 높았고, 때로는 나라의 정치나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왕은 신들에게 봉사하고 신들의 뜻을 살피는, 이른바 인간과 신의 중개인이었다. 그러나 신들의 수가 많아 제사를 지내는 신전의 수도 많아지면서 매일 봉사하는 사제들의 수도 어마어마해졌다.
---「신전의 역할과 주요 의식」중에서
고대 이집트인은 가까이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에 신성을 느끼며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다신교 세계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일반적이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 문서인 『암두아트의 서』에는 700명이 넘는 신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태양이나 달, 별 등의 우주, 하늘이나 땅, 대기, 산, 강, 사막 등의 자연환경,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힘을 가진 동물, 예를 들어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는 들새를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이 사실은 고대 이집트에 새의 신들이 여럿이었다는 것만 봐도 수긍이 간다. 새 말고도 인간의 힘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흉폭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동물인 사자, 하마나 악어, 들소 등도 숭배했다. 게다가 동물의 변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보금자리로 옮기는 쇠똥구리도 태양신으로 숭배했다.
---「고대 이집트인의 신앙」중에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매무새에 항상 신경을 썼던 듯하다. 여기에는 그들의 생활환경이 크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땀을 많이 흘리고 전염병의 병원균이 숨어 있는 강이나 늪지에서 작업하는 일도 많았던 그들은 피부를 청결히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을 것이다. (……) 왕은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서민들도 하루에 한 번은 몸을 씻고 종교의식이 있을 때는 여러 번 씻었다고 한다. 피부에는 정기적으로 오일(동물성 지방이나 식물 기름)을 발라 건조되지 않게 예방했다. 오일에 향료를 섞은 향유도 즐겨 썼다. 옷은 통풍이 잘 되는 아마 소재를 입었다. 귀족이나 왕족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나 종교의식을 할 때 가발을 사용했다. 또한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아이섀도는 안료에 살균 효과가 있고 파리를 막는 특성도 있어서 눈을 지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의 몸단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