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초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했다. 김정일은 그 반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아 살아 있는 동안에 권력 승계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여정은 “자신도 정치의 세계에 몸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 p.36
김정은의 가계는 대대로 심장질환에 시달려 왔다. 김정은은 고혈압, 당뇨병, 통풍 등의 질병을 앓고 있다. 김여정이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동행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의료나 행정, 군사 등에서 긴급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59
김정남의 살해에 관여한 것은 독극물 암살 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군 정찰총국 산하의 19과일 가능성이 크다. 사건에 사용된 VX 등 독극물의 효과 조절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한국 정부는 19과가 사건의 중심이라고 보는 근거의 하나를 들었다. 19과는 2010년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암살도 노렸다.
--- pp.74~75
권력투쟁에서 패한 김정남에게 ‘고용희의 마지막 철퇴’가 내려질 날이 왔다. 2001년 5월 1일 ‘일본항공 싱가포르발 나리타 도착 편에 김정남이 탑승하고 있다’는 정보가 일본 공안조사청에 접수됐다. 당시 관계자는 “싱가포르에 정보를 흘린 것은 고용희의 뜻을 받든 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고용희 등의 의도대로 김정남을 밀어내는 결정타가 됐다.
--- pp.85~87
김정은으로 권력 승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몇 가지 준비 작업을 명령했었다. 선군정치를 펴면서 비대해진 군이나, 마찬가지로 김정일 독재정치의 앞잡이가 된 비밀경찰인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의 권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권세를 휘두르던 조직지도부도 삭감 대상이었다. 장성택은 이 지시를 충실히 수행했다. 조직지도부의 권력 축소는 이제강, 이용철 두 사람의 제거로 성공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유경(류경) 제1부부장이 표적이었다. 장성택은 군에 대해서는 그 풍부한 자금줄을 차단함으로써 군 권력의 약화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김정은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들이 역으로 권력을 뺏긴 자들의 원한을 사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과 국가안전보위부, 당 조직지도부 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에게 ‘장성택이 권좌를 노리고 있다’라고 모함했다.
--- pp.95~98
2001년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김정남에게 관련국 정보기관들이 접근했다. 미국 CIA, 한국 국가정보원, 일본 경찰청 관계자들이 마카오에 있는 김정남의 집을 감시하고 김정남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이었던 곳이 한국이었다.
--- p.99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계획 중 하나가 ‘김정은 암살 작전’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4차 핵실험을 계기로 ‘김정은 제거’를 결정했다. 국정원은 스파이 등 휴민트(인적정보)도 사용해 김정은의 위치를 상시 파악할 수 있는 체제 구축을 추진했다.
--- pp.101~102
예산의 집행도 최고지도자와 ‘붉은 귀족’들의 이권이 얽혀 있다. 국가적 대사업인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도 삼지연 개발도, 일반 국가라면 예산을 편성해 민간기업의 입찰을 거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기업의 공정한 입찰이 아닌 ‘붉은 귀족’들의 이권 나누어 먹기 전쟁이 벌어진다.
--- p.117
체육용품부터 분필 한 개까지 비품이 부족하면 학부모에게 할당량을 정해 청구한다고 한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자녀가 어떤 끔찍한 성적을 받을지 모르니 학부모도 마지못해 응한다. 교사의 지시를 잊어버릴 것 같은 어린아이에게는 하교할 때 손바닥에 요구하는 물품을 적어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 p.126
2월 21일부터 하노이에서 시작된 실무회담에 등장한 사람이 최선희였다. 최선희는 영변 핵 관련 시설을 포기할 뜻을 밝혔지만, 비건은 납득하지 못했다. 비건은 북한이 비핵화할 시설이나 무기 등의 정의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다. 동시에 영변뿐만 아니라 평양 외곽의 강선으로 불리는 핵시설 등의 포기도 요구했다. 최선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28일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건이 실무회담에서 요구했던 사항을 다시 한번 밀어붙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당혹스러운 표정만 보일 뿐, 영변 핵시설 포기에 집착해 회담은 결렬됐다. 미 정부 관계자는 당시 “실무협의에서 우리가 요구했던 내용이 김정은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 p.170
미국 정부는 최선희가 제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경질되지 않을까 보고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최선희보다 직급상 상관의 지위에 있던 이용호 외무상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이 차례로 대미협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최선희만은 달랐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북한 고위 관료 장교들이 총집합해 2019년 4월 12일에 촬영된 기념사진이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되자 한·미·일 관계자들은 놀랐다. 최선희가 이용호나 김영철보다도 상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 p.171
북한이 핵 보유 야망을 품은 것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계속된 한국전쟁의 경험 때문이다.김일성 수상(당시)은 1968년 함경남도에서 중요한 연설을 했다. 장소는 국방과학원 분원이었다. 대량파괴무기 제조를 담당하는 극비기관이었다. 김일성은 “세계 각지에서 미국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본토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우리가 하자.”라고 지시했다.
--- p.233
미국 측은 하노이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비핵화와 수교 등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합의하는 빅딜 방안, ▲영변+α의 폐기와 맞교환해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스몰딜 방안, ▲아무것도 합의하지 않는 노딜 방안 등 세 가지 방안을 재확인했다. 어떤 방안을 사용할지는 전날 저녁 만찬에서 북한 측의 태도를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의 포기에만 매달리는 발언을 계속 반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28일의 정상회담에서 스몰딜에 미련을 갖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워싱턴에서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미 하원 임시위원회에서 트럼프의 전직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증언이 진행됐다. 트럼프의 머리에는 이 증언을 중단할 정도로 강력한 뉴스를 발신하고 싶다는 속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 같다. 걱정하고 있던 폼페이오가 회담 도중에 트럼프를 복도로 불러내, “(북한이 제시한 스몰딜을 담은 합의안에) 진심으로 합의할 생각입니까? 서명하면 다음 대선에서 재선의 싹은 없어질 것입니다.”라며 격렬하게 항의할 정도였다.
--- pp.252~253
조선중앙TV가 공개한 2022년 8월 10일 김여정의 13분 육성 연설은 매우 흥미로웠다. 거기에는 김여정을 ‘최고지도자의 스페어’로 키우고 있는 북한 당국의 속셈이 배어 있었다. 방송에서는 이영길(리영길) 국방상 등의 토론 소개는 생략됐다. 김여정의 지위는 형식적인 직함을 넘어 ‘사실상의 2인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사정을 알았던 사람은 김정일의 주치의 등 의료진 외에는 내연녀였던 김옥, 장성택과 김경희 부부, 김정은 남매 등 육친에 한정돼 있었다. 조선중앙TV가 전한 청중의 반응도 독특했다. 다른 토론자들이 등단해 김정은의 활동을 찬양해도, 청중은 이따금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김여정이 등단해 김정은의 고생담을 말하기 시작하자, 방송은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도 김여정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하나의 연출일 것이다.
--- pp.298~299
기회(機會)를 놓치게 되면 위기(危機)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북핵을 비롯하여 북한 개혁개방 문제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무렵에서 2000년 이전까지 해결했어야 했다. 소련·동유럽이 붕괴하고 세계 질서가 급변할 때 한·미·중이 협력하여 김정일 체제를 개혁개방으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때는 중국·러시아가 북한 핵을 확실히 반대했기 때문에, 한·미·중이 손잡고 북한을 ‘강제적 개방’으로 밀어붙였으면 김정일 정권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 pp.305~306
북한 문제는 사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일 뿐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비(非)백두혈통 리더십으로의 교체야말로 북한 문제의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후계자가 그의 자식이건, 김여정이건 그 누구든 간에 그가 백두혈통인 한에서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비(非)백두혈통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희망이 보일 것이다. 진정한 북한 사회의 변화는 백두혈통이 아닌 자가 조선노동당의 1인자로 등장하면서 시작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등소평의 등장으로 정권 교체(regime change) 없이, leader change 만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 pp.32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