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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의 소설 포스터(책 속 랩핑), 양장 ] 위픽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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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0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8쪽 | 158g | 100*180*15mm
ISBN13 9791168127050
ISBN10 11681270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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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크족은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며 ‘크림반도’를 거침없이 말달렸다. 드넓은 초원에서 사냥한 들짐승을 안주 삼아 거한 술판을 벌였다. 그러다 생의 감각이 환한 달빛처럼 끓어오르면…… 춤을 췄다. 팔짱을 끼고 무릎 굽혀 앉은 자세로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발을 앞으로 옆으로 힘껏 뻗는, 이른바 ‘코사크 댄스’. 오락실용 테트리스 게임 화면에서 중앙 상단의 성문을 열고 불쑥 등장한 사람이 추던 바로 그 춤.
--- pp.5~6

다음 날 아침, 예주는 아파트 관리실에 연락했다. 위층 소음이 심하다고, 한두 번이 아니라고, 유독 밤에 더 그런다고. 코사크 댄스를 추는 것 같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과장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예주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음 주기와 형태, 크기 등을 설명했다.
관리실에서 그날 저녁 전한 1601호의 답변은 애매했다. 요약하면, 층간소음의 원인을 제공한 적은 없지만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생활하겠다는 것이었다.
--- pp.7~8

천장을 울려대던 쿵작거리는 소음은 곧 사라졌다. 대신 다음과 같은 소리가 반쯤 열려 있는 1601호 베란다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각또각.”
말이 달리고 있었다. 1601호 거실이 마치 드넓은 초원이기라도 하다는 듯, 말이 달리고 있었다. 저 소리는, 말발굽 소리가 아닌 다른 것일 수 없었다. 적어도 두 마리 이상의 말들이 바람을 가르며 허공을 향해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 p.14

이사 온 아파트는 예주의 마음에 쏙 들었다. 촘촘히 구역을 나눈 것이나 공동 구역이 펼쳐지고 오므려지는 모양새가 마치 누군가에게 피해 주거나, 받고 싶지 않은 윤리적 마지노선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개인주의자들을 위한 공동의 건축물이라고나 할까?
아파트가 위치한 곳이 여자 둘이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처럼 같이 살아도 주변에서 수군거릴 가능성이 적은, 쏭의 말처럼 교육 잘 받고 직장 좋은 젊은 부부들이 선호하는 서울 근교 신도시라는 것도 흡족한 부분이었다.
--- p.28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층간소음이 들려올 때면 예주는 짜증과 분노를 관장하는 신경망 외에 모든 것이 다 끊어진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었다. 층간소음만 수집하는 안테나가 된 느낌이랄까? 번역 작업은커녕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아래층마저 적으로 돌려세울 수는 없었기에 분노를 꾹 참아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걸음에 힘이 실렸다. 숨 쉴 틈도 없이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층간소음 항의 전화가 왔다고.
--- p. 31

밖으로 나온 예주는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경보하듯 빠르게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세차게 두드리며 지나갔다. 예주는 산책로를 정신없이 한 바퀴 돈 다음 후문 근처에 있는 701동 앞에 다시 도착했다. 시린 밤공기가 가슴 가득 밀려왔다. 예주는 최후의 결심을 했다. 민사재판으로 가자고. 돈으로 1601호 입주자들에게 정착민의 유전자를 주사 놓아주자고.
그때, 자동차 바퀴 찢어지는 소리와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훅 하고 다가와 예주의 귀를 때렸다.
--- pp.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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