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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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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0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520쪽 | 832g | 143*225*32mm
ISBN13 9791169811323
ISBN10 116981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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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14억 중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 한자. 한자는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암각화에 나타난 원시 한자의 모습을 시작으로 갑골문, 최초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자 발전사를 연대순으로 설명했다. - 손민규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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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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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두 뿔과 아름다움
아름다울 려(麗) 자의 갑골문은 멋진 2개의 뿔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서 있는 사슴의 모습이다. 뿔을 강조하는 사슴 록(鹿) 자에 장식을 더한 확장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자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대칭되는 2개가 짝을 이룬다는 의미였다. 이 뜻은 지금도 ‘한 쌍’을 의미하는 짝 려(儷) 자에 남아 있다. (…) 『설문해자』에서는 麗 자를 ‘짝을 이루어 다니다[여행(旅行)]’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사슴은 먹을 것을 발견하면 기뻐하는 소리를 내며 무리를 불러 함께 그곳으로 이동한다고 하니 이 풀이에서는 동료와 함께하는 사슴의 성품을 강조한 것이다. “사슴의 울음소리[녹명(鹿鳴)]”라는 제목의 『시경(詩經)』 구절 가운데 “사슴이 기쁜 소리를 내며, 들판의 풀을 먹으러 가네”라는 문장이 있다.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기쁜 마음으로 동료를 부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주석가들은 이를 두고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대칭으로 자란 사슴뿔의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동료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려는 사슴의 아름다운 성품에 주목했다.
--- pp.46~48

세상에 문자가 생기자 귀신이 밤새 운 까닭
중국의 문자 창제 전설에도 인간이 문자를 습득하면서 자연 세계를 읽어내는 중요한 능력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은 곡식을 뿌리고 귀신은 밤새 울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나온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해석은 문자가 만들어짐에 따라 장차 절대자로서 권위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하늘이 곡식을 마구 뿌려서 인간들의 배를 부르게 하여 창조적 사고를 마비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귀신들 역시 문자를 가진 인간이 이제는 현명해져서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을 알고 슬피 울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회남자』의 주석에 나오는 고유(高誘)의 다음 풀이이다. “창힐이 처음으로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 서계를 만들었다. 그러자 사기와 허위가 생겨났다. 사기와 허위가 생겨나자 세상 사람들은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뒤쫓으며, 농사를 버리고 송곳과 칼을 날카롭게 연마하는 데 힘을 쏟게 되었다. 하늘은 세상 사람들이 굶주리게 될 것을 걱정하여 곡식을 뿌려주었다. 귀신은 문서로 탄핵받을까 두려워서 밤새 울었다.”
--- pp.89~90

동요는 어린 남자 노예의 숨 가쁜 노동요였다
신(辛) 자는 원래 죄인의 살에 먹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새겨 넣는 데 사용하는 커다란 바늘을 나타낸 글자였다. 지금은 매운맛을 나타내는 글자로 쓴다. 맵다는 것은 사실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혀를 찌르는 통각의 일종이다. 콕콕 찌르는 바늘을 나타낸 辛 자야말로 맵다는 감각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동(童) 자는 머리에 묵형을 받은 어린 노예를 나타낸 글자였다. 고대에 동요(童謠)란 남자 노예가 부르는 노동요를 뜻했다. 어린이의 순수한 동심을 표현하는 현대의 동요와 머리에 낙인이 찍힌 어린 노예의 숨 가쁜 노동요가 같은 단어라는 사실은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한다. 고대에는 형벌을 받은 사람은 관모를 쓸 수도 없고 머리도 묶지 못했다. 나중에 이 글자는 머리를 묶지 않은 어린아이를 가리키게 되었고, 별도로 노예를 나타내는 하인 동 자가 만들어졌다. 첩(妾) 자는 머리에 辛으로 묵형을 받은 여자 노예를 표현한 글자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정식 부인이 아닌 소실을 의미하게 되었다.
--- pp.152~153

여성의 지위에 관한 새로운 해석: 술과 빗자루
갑골문 부(婦) 자는 여성이 빗자루 추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잘못 힌트를 얻어 부인이란 예부터 집에서 빗자루로 청소나 하는 존재였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고대에 추는 단순한 청소 도구가 아니었다. 빗자루로 술을 흩뿌려 그 향기로 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도구였다. 또는 군대 지휘관들이 손에 들고 휘두르는 빗자루 모양의 무기였다는 주장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두강(杜康)이라는 사람이 술과 빗자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술과 빗자루는 무언가 어색한 조합이다. 그러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술과 성스러운 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도구의 조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추가 제사용 도구였든 전쟁용 무기였든, 이를 소지한 婦는 단순히 집에서 청소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갑골문에는 왕자의 부인을 추호라고 기록한 것도 있다.
--- pp.144~145

마음: 심장이 가리키는 것
갑골문에는 아직 이런 마음과 관련된 원초적인 글자라든가 미세한 감정을 구별하는 글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상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것일까? 금문에서도 心 자로 구성된 글자는 약 20여 자에 불과하다.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초기 한자에서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관한 글자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갑골문 시대에서 1000년이 지난 한나라 때 편찬된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는 心 자를 부수로 하는 글자가 263자로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이성이 예리해지고 감정이 풍부해짐에 따라 글자들이 계속 추가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이는 그전까지 신에 의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자의 역사에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변화해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p.162

공화주의: republic의 번역어 공화국의 ‘공화’는 실존 인물이었나
금문 공(共) 자는 두 손으로 술잔을 쥔 모습이다. 조화로울 화(和) 자는 앞서 살펴보았듯 여러 관이 줄로 묶인 관악기를 나타내는 약에 발음을 나타내는 화가 결합된 화 자가 나중에 간략해진 것이다. 여러 관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서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을 들으며 조화로움에 대한 직관적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다. 공화는 실존 인물의 이름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함께(共) 의견을 조율하면서 조화롭게(和) 통치를 한다는 뜻의 신조어였을 수도 있다. 이 단어는 2000년 넘는 시간 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서양에서 들어온 republic의 번역어로 채택되면서 다시 세상에 등장한다. 왕이 직접 통치하지 않고 합의제 기관을 최고 권력기관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나타내는 데 공화라는 단어가 역사적 사실로 보나, 축자적 의미로 보나 가장 적합한 번역어가 아닐 수 없었다. (…)
최근에 공화 시기에 제작된 청동기 금문이 발굴되었는데 여기에 공백 화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공백 화는 사화보(師和父)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금문에서 주나라 왕의 말은 “왕이 이와 같이 말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공백 화의 말 역시 “사화보가 이와 같이 말한다”라는 똑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공백 화가 왕과 동등한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공화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청동기 금문의 발견으로 일단락되었다.
--- pp.310~311

문서 행정의 제국 진나라에서 칼과 붓을 함께 지닌 관리
문관용은 소맷자락 안에 두 손을 맞잡은 자세로 섰는데, 허리에는 작은 칼과 칼을 가는 도구로 추정되는 부싯돌을 차고 있다. 왼쪽 어깨에는 죽통과 죽간을 끼워 넣는 작은 구멍도 나 있다. 문자를 기록하는 관리는 붓을 머리에 꽂고 있었다. 상관이 지시하면 바로 기록할 자세를 갖춘 것이다. 글씨를 잘못 쓰면 차고 있는 칼로 죽간을 벗겨내고 다시 썼다. 행정 현장에서 신속하게 문서를 기록하고 또 효율적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들이 칼과 붓을 함께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도필리(刀筆吏)라고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결정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신속하게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주로 아랫사람이 담당했다.
--- p.410

양피지와 코덱스: 기록 매체의 변화가 이끈 사유 방식의 전환
종이가 발명되면서 간독을 대체했지만 책의 구성 방식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말아 넣는 두루마리 형태를 유지했다. 여전히 간독의 제본 방식을 따른 것이다. 최초의 종이책은 동서양 모두 두루마리 형태였다. 영어에서 두루마리형 책을 가리키는 volume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의미하는 voluminum에서 유래했다. 동양에서 책을 세는 단위인 권(卷) 또한 ‘두루마리를 말다’는 뜻에서 왔다. (…) 코덱스를 통한 문자 기록은 인간의 사유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문자에 의해 선형(線形)으로 구성된 합리적 세계관이 형성되며, 일련의 논리적 일관성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근대 개인주의 사유 방식의 탄생은 읽기의 내면화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한문 서책은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옆에서 읽어주지 않으면 글자의 독음이나 문단의 끊어 읽기를 알 수 없는 구조이다. 글말의 문법이 개발되지 않고 여전히 구술적인 발화 맥락에 의존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 한문 서당의 대표적 학습법은 선생이 먼저 읽고 학생이 따라 읽는 것이었다. 이는 묵독으로 개인 사유를 발전시킨 서구의 지성과는 다른 사유 방식이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 pp.467~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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