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교육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학생, 우리 사회에서 두 아이들을 교육시킨 학부모, 대학교수, 그리고 어쩌다 대학에서 학생처장과 입학처장을 맡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다양한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교육과 입시 제도를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많은 문제점들을 통해 갖게 된 문제의식, 어쭙잖은 사명감, 무모함, 그리고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필자로 하여금 이렇게 책을 내게 하는 것 같다.
---「서문」중에서
입학처장이 되어 처음 입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KAIST 합격생의 상당수가 서울대와 의대에 동시에 합격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합격생들을 경쟁 대학들에게 빼앗기지 않을 입시 전략을 고민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필자 스스로 그동안 손가락질해왔던 그런 입시 담당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KAIST 입학처장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1장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중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미래 경쟁력의 핵심은 많은 데이터와 노하우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곳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인 ‘problem solver’보다 새로운 문제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 ‘problem maker 혹은 problem creator’를 향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장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중에서
만일 100여 년 전 과거에 역사가 ‘뒤바뀌어’ 대한 제국이 일본을 식민지로 삼고 고종 황제가 필자에게 “식민지 일본의 교육을 설계하라”고 명을 내렸다면, 필자는 아래와 같이 ‘제국주의의 왜곡된 시각’으로 설계하지 않았을까 하는 황당한 상상을 해본다. 첫째, 학교에서는 많이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는 것보다 많은 지식을 주입하고 반복적으로 외우게 하는 방식을 통해 ‘낮은 단계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한다. (중략) 셋째, 개인만을 생각하는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경쟁과 선발 중심의 ‘솎아버리는 교육 제도’를 확립한다.
---「2장 교육이 없는 나라」중에서
우리나라 대학생의 80.8퍼센트가 자신이 경험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장’이라 인식한 반면 일본 대학생의 75.7퍼센트는 ‘함께하는 광장’이라 답을 했다. 일본 대학생의 경우 ‘사활을 건 전장’이란 답변은 13.8퍼센트에 불과하다. (중략) 어쩌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고 고등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PTSD를 치유하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대학교수인 필자의 마음이 불편하고 한편으로 안쓰럽기만 하다.
---「2장 교육이 없는 나라」중에서
하지만 13세에 체스에 빠져 있는 아이, 15세에 게임 개발자가 되는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허락하는 부모, 다시 돌아와 컴퓨터공학과 뇌과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대학교. 어느 것 하나 가능할 것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우리 사회는 성공한 데미스 허사비스만을 이야기하고 알파고의 산업적 가치를 논한다. 우리 사회의 데미스 허사비스들은 초등학교부터 학원에 가서 밤늦게까지 어려운 수학, 과학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데 체스를 배우거나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3장 미래를 위한 교육, 공부와 연구」중에서
같은 학과 동료 교수들을 상대로 간단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설문 내용은 ‘출신 고등학교에 따른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 대한 만족도’였다. 교수들의 만족도는 대학생의 경우 영재고, 과학고, 일반고 순이었지만, 대학원생의 경우는 일반고, 과학고, 영재고로 그 순서가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설문에 참여한 교수들의 숫자도 적고 비공식적인 조사여서 그 신빙성과 정확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중고등학교에서의 공부와 대학에서의 연구 그리고 사회에서의 성공과 관련해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3장 미래를 위한 교육, 공부와 연구」중에서
(첨단 기술을) 무턱대고 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자칫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30∼40년 뒤 우리 아이들은 이미 5차를 넘어 6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고 그때에는 어쩌면 5년마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교육이라는 주제에 다소 부정적이다. 교육, 특히 초중등 교육은 눈앞에 벌어지는 변화와 현상에 빠르게 대응하기보다는 보다 더 멀리 보면서 앞으로 일어날 어떠한 변화에도 잘 적응하고, 오히려 새로운 산업혁명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3장 미래를 위한 교육, 공부와 연구」중에서
KAIST 교수인 필자가 섣불리 서울대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제3자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인 서울대의 발전과 그를 통한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와 함께 대학 입시와 대학 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4장 대학의 혁신: 서열화에서 차별화로」중에서
우리 사회는 ‘교육’이라는 허울을 쓴 괴물에 쫓겨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보내야 할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가장 행복하지 않게 보낸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부모들은 없다. 더구나 그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부담까지 안게 되는 현 상황은 인구절벽 시대에 놓여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4장 대학의 혁신: 서열화에서 차별화로」중에서
대학의 차별화가 이루어지면 대학 입시는 우리 사회에서 인생을 결정짓는 ‘그 무엇」중에서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정하는 단순한 통과 의례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고, 그제서야 우리 사회는 중고등학교에서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며 사교육은 본연의 학업 보충의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4장 대학의 혁신: 서열화에서 차별화로」중에서
혹자는 필자의 의도를 일본의 ‘유도리 교육’이나 하향 평준화 혹은 학습 분량을 낮추자는 방향으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주장은 정반대로 학습량을 늘리고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 시절 대학 입시만을 목적으로 잘못 설계된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 등을 혁신하고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앞으로 대학과 사회에 나가 필요한 내용들을 많이 그리고 올바르고 깊이 있게 가르치자는 것이다.
---「5장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중에서
정부의 인력 양성 계획 중에는 반도체 학과 신설과 정원 확대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에 대해서 필자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상황과 다급한 시장의 요구는 결코 무시될 수 없으나 학과 신설 혹은 정원 확대는 자칫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중략) 자칫 과거 급등하는 대학 진학 열망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추진했던 대학설립준칙주의의 오류를 답습할 가능성도 있다.
---「5장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중에서
민관 공동 위원회는 대학과 중고등학교 분과로 크게 구분되고, 대학 분과는 다시 연구 중심 대학, 혼합형 대학, 교육 중심 대학 소분과들로 나누고, 중고등학교 분과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소분과로 나누면 어떨까 한다. 대학의 소분과들에서는 각 대학 그룹의 발전 전략이 수립되고 대학 분과에서 최종 조율 되며, 중고등학교 소분과에서는 각 과정에서의 교육 내용들을 새롭게 설계하는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을 마치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