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렇게 냉랭한 상태로 살아가니, 점차 눈에 드러나는 지식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감성을 잘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을 살아있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차가운 논리가 아니라 따뜻한 감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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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가 그려 놓은 한 여인이 있다. 그림을 보니 해질녘에 여인은 항아리를 이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한쪽 손으로 항아리를 지탱하고, 또 한쪽 손으로 몸에 균형을 잡아가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걷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만종〉을 그린 밀레의 그림이다’ 하고 넘겼을 텐데, 이제는 이 그림에서 내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면서 나에게 “오늘도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런 작업이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이 그림 한 점으로 현재의 내 마음을 이해하면서, 내 삶의 속도를 늦춘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재 나는 어떤 느낌으로 서 있는지, 그림으로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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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림도 아니고, 모네의 그림처럼 색채감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이 빈방에 들어온 따스한 빛이 봄햇살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어 찾는 이도 없는 공간인 것 같은데 나는 이 공간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이 그림에 마음이 머무니 이런 빈 공간을 그린 다른 그림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진 화가가 빌헬름 함메르쇠이라는 다소 어려운 이름의 덴마크 화가다. 그림 제목도 조금 화려하다. 〈햇빛 속에서 춤추는 먼지〉다. 먼지가 춤추는 모습이 그림 속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빈방의 고요와 평화로움이 역시나 내 시선을 끈다.
--- p.78
선배 화가들을 뛰어넘기 위해 그들보다 더 화려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그림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베로네세의 야심이 너무 컸나보다. 배경은 그리스 양식의 건물이고 그곳에서 술에 취한 베드로, 포크로 이를 쑤시는 성인의 모습에 사람들은 이 그림을 이단 혐의로 고발을 해 버렸다. 그는 종교재판을 받게 되고, 혐의를 벗기 위해서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로 바꿔버렸다. 제목은 바꿨지만 베로네세가 대선배 다 빈치를 넘으려는 진심은 그림 속에 잘 드러난다.
--- p.165
카라바조의 초창기 작품이지만 선배 화가들을 뛰어넘으려는 카라바조의 패기가 그림 속에 있다. ‘도마뱀에 물리는 소년’이라는 소재도 특이하고 탁자 위 정물의 모습에 세심함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가 르네상스의 화가들을 넘어서기 위해 더 신경을 쓴 표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맞다. 빛이다. 르네상스 시절에도 을 표현하기는 했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빛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에는 어둠과 밝음이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그림의 극적인 효과가 더 잘 드러나고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카라바조는 계속해서 이 명암의 효과를 계속 발전시켜서 일명 ‘테네브리즘’이라는 새로운 그림 기법을 탄생시킨다. ‘테네브라’는 이탈리어로 ‘어둠’이라는 뜻으로, 이 어둠을 적절히 사용하여 인간 내면에 자리한 슬픔, 분노, 우울 등을 함께 잘 표현했다.
--- p.167
마네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즘에 반발하면서 자기만의 그림을 '소심하게' 그리던 사람들에게는 큰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마네는 계속해서 기존 그림이 가지고 있던 형식을 깨 버리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p.235
그는 의도적으로 눈으로 관찰되는 모습을 해체하고 원기둥, 원과 같은 형태로 재조합하면서 외형의 근원을 표현하려고 했다. 즉 세잔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지니는 본질의 형태를 생각하면서 그려냈다. 테이블의 배치도 마찬가지다. 세잔의 〈사과바구니〉대로 사과를 저렇게 놓을 수는 없다. 냄비 위 사과들은 테이블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그림 속 사과의 배치는 자연 질서가 아닌 세잔의 머릿속에서 배치된 모습이다.
--- p.253
문장에서 느껴지는 자존감, 멋지다! 15세기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미술이 움트고, 화가들의 지위가 막 자리잡던 때인데, 뒤러는 스스로 자신이 작가임을 선언했다. 뛰어난 회화 솜씨와 대단한 자존감을 가진 뒤러가 화가로서 성공의 길을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p.292
수잔은 앞의 두 화가와 다르게 자신을 표현한다. 한쪽은 자신을 기쁨의 여인으로, 또 다른 한쪽은 고통의 여인으로 묘사했는데, ‘나는 나다’라고 그림에서 외치고 있는 듯하다. ‘남성 화가들이여 나를 이상하게 꾸미지 말라. 내 모습은 이렇다’ 하고 소리치듯, 자신의 눈빛을 강렬하게 채색하고, 현실에 강한 불만이 있는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 p.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