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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모던의 건축

채석장 시리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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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95쪽 | 212g | 128*187*10mm
ISBN13 9788932041537
ISBN10 893204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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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실현된 적이 없는 현대 건축의 추론적 역사를 꿈꾸게 될 때 관건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비스듬한 움직임은 예술과 기술, 노스탤지어와 진보, 그리고 건축적 상상의 미래를 둘러싼 우리의 이해에 어떤 도전을 안기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중 하나인 타틀린의 전설적인 기념탑의 건축적이고 철학적인 변모 과정을 탐구해보려 한다. 이 탑은 근대성에 관한 “제3의 길”의 지성사, 즉 나의 대안적 계보학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 대신에 나는 그것을 오프모던이라고 부를 것이다.
--- p.7~8

내 관심사는 건축의 상징적 형식이 아니라 흔히 지적인 장르나 사유 체계, 학제들 사이의 틈에서 발견되곤 하는, 건축과 이론, 모더니즘 소설과 철학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특이하고 실험적인 이론적 스토리텔링 형식들을 포함하는 제3의 사유의 서사적?공간적인 구성이다. 이런 사유 형식은 체계를 세우는 일보다는 오히려 기획과 모험으로서의 삶과 예술에 관한 것이다. 문학과 철학은 많은 잠재적인 공간들을 제공해주는데,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모델을 제안하는 상상적 위상학의 공간들이다. 모험이 제공하는 것은 뒤집힌 미메시스의 가능성인바, 강렬한 상상은 자연을 모방하는 대신에 미래의 건축을 제안한다. 문학과 철학은 “종이 건축”의 형식이 될 수 있다.
--- pp.10~11

내가 생각하기에 오프모던의 건축은 모험의 건축이다. 모험adventure은 문자 그대로 이제 막 발생하려고 하는 어떤 것, 바야흐로 도래하는 것a venir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것은 모종의 파국적인 혹은 메시아적인 미래를 열어젖히기보다는 현재의 보이지 않는 시간적 차원들로 이끈다. 20세기 초반의 가장 흥미로운 제3의 길의 사상가 중 한 명인 게오르크 짐멜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흐름을 끊어내는 동시에 그것의 내적 핵심을 결정화하는, 모험의 현상학을 제안한 바 있다.
--- p.11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보게 되는 것은 시클롭스키의 낯설게하기의 건축과, 예기치 못한 자유의 제3의 길을 찾으려는 한나 아렌트의 시도 사이에 존재하는 “대응”이다. 아렌트는 사람들을 “근대적인 삶의 자동화 및 일상화” 너머로 몰고 가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이상한 것”으로 자유를 묘사한 바 있다. 시클롭스키에게 오스트라네니예가 세계로부터의 낯설게하기가 아니라 세계의 갱신을 위한 낯설게하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렌트는 점근 곡선과 사선을 꿈꾸면서 문학과 철학 그리고 극장의 도움을 받아 자유의 예측 불가능한 건축을 상상한다. 그녀의 에세이 「자유란 무엇인가?」는 희망 없음에 대한 성찰로 시작된다.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일은 가망 없는 기획enterprise인 듯하다. 철학자들에게 자유 혹은 그 반대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각형으로 된 원이라는 개념을 깨닫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p.62

하지만 타틀린의 기념비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평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에게서 나오게 될 것이었다. 리가의 저명한 건축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자신의 영화와 이론적 에세이들에서 건축 공간을 재정의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모더니즘적 절충주의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1930년대 초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천명되었던 그 시절, 에이젠슈테인은 많은 동료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의 글쓰기와 몽타주 이론으로 되돌아갔다. 에세이 「파토스」에서 그는 “현수 건축”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타틀린과 말레비치가 이 탑에서 건축과 조각의 종합을 보았다면, 에이젠슈테인은 1831년에 고골이 쓴 건축에 관한 잊혀진 에세이로 되돌아가면서 거기에 문학과 영화라는 또 다른 차원을 보탰다.
--- pp.70~71

카바코프의 작품은 또한 기억의 선택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파편화된 “총체적 설치들”은 모든 종류의 유토피아적 체계의 바탕에 놓인 이런저런 틈새와 절충, 당혹과 검은 구멍에 대한 신중한 환기가 된다. 과거를 향한 모호한 열망은 역사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공감에 낯설게하기를 결합시킴으로써, 그의 아이러니적인 노스탤지어는 기억하는 행위의 윤리학에 관한 성찰로 관객을 초대한다. 더 나아가 카바코프는 근대 유토피아의 기원으로 소급해 들어가 두 가지 모순적인 인간적 충동을 드러낸다. 모종의 집단적인 동화 속에서 일상을 초월하려는 열망과, 기억을 보존한 채로 살아남음으로써 가장 살아가기 힘든 폐허 속에 거주하려는 열망이 그것이다. 그의 설치 예술은 진보의 목적론의 실패를 전시한다. 단독적이고 통합적이며 휘황찬란한 모종의 미래의 궁전 대신에 눈앞에 보여지는 것은 과거와 미래의 사방으로 흩어진 모델들이다.
--- pp.104~105

유토피아는 여전히 가능할까? 아니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그것의 기원으로, 즉 삶이 아닌 예술 속으로 돌려보내야 할까? 나는 인터넷에서 타틀린 스튜디오와 나보코프의 나비 이미지를 발견했고, 우연히 하나 위에 다른 하나를 겹쳐 인쇄했다. 그 결과는 내게 소비에트 시절의 과학 수업을 연상시켰는데, 우리는 사회주의 생물학의 프로젝트들, 특히 배와 사과를 끝도 없이 이종교배했던 이반 미추린의 작업을 공부하곤 했다. 수년이 흐른 후 나는 흔히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20세기의 두 가지 상이한 꿈과 미학적 유토피아를 우연히 교차수정시키게 된 것이다. 타틀린에 의한 아방가르드 상상력의 희한한 비행과, 그에 못지않게 희한한 나보코프의 예술적 귀향이 그것이다.
--- p.200

‘유토피아’와 ‘폐허’라는 저 짝패는 다음 책 『노스탤지어의 미래』(2001)에서 제시될 보임의 저명한 유형론을 곧바로 연상시킨다. 여기서도 보임은 단어 노스탤지어nostalgia를 이루는 두 개의 어근에 주목한다. 첫 어근인 nostos(집)를 강조하는 “복원적restorative 노스탤지어”가 잃어버린 집의 초역사적인 재건을 시도하면서 집단적·민족적 성격을 띠는 정치적 통일체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면, 집을 향한 갈망 자체, 즉 두번째 어근인 algia(고통) 위에서 번성하는 “성찰적reflective 노스탤지어”는 상실의 근본적인 회복 불가능성과 아이러니적인 거리를 인정하면서 역사적 경험의 개인적 차원을 지향한다. 두 개의 어근이 합쳐진 이런 이중적 측면을 다채롭게 변주하면서 그녀는 노스탤지어를 모더니티라 불리는 우리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재사유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등극시켰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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