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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정리

[ 초판 한정 작가 사인 인쇄본, 양장 ] 위픽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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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8쪽 | 100*180*15mm
ISBN13 9791168127364
ISBN10 11681273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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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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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이에게, 몇 년 만에 편지지를 샀어. 역시 이메일보단 손 편지가 너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서. 네가 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이야. 그동안 편지 못 해서 미안해. 어떤 얘길 들려줘야 좋을지 모르겠더라. 무슨 말을 해도 이미 했던 말들의 반복일 것 같았어.
--- p.7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소연아, 너는 정말 총명한 아이였단다. 말을 어찌나 똑 부러지게 하는지 매일매일이 감탄의 연속이었어. 낙엽 떨어지는 모양이 쓸쓸하다고 말하는 22개월 아기는 아마 세상에 소연이 너 하나뿐일 거야. 잠들기 전에 “오늘 행복했어”라는 말을 들을 땐 정말 뿌듯했지.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야.
--- p.8

이제는 알아. 그 사려 깊은 말들은 미래에서 빌려 온 언어라는 걸. 너는 정말로 우주에서 엄마와 만난 거겠지. 거기서 함께 체조를 했겠지. 혹은 발레를. 혹은 영어 동요 수업을. 혹은 감각 미술 체험과 로봇 코딩 교실을 다녔던 거겠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런 일들이 셀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 거겠지. 여전히 잘 이해되진 않지만.
--- p.16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너와 다투었어. 너에 대해.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어. 그날 너는 미래를 보았어. 그 길에서 사고가 날 걸 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될 것도 알고 있었어. 당연한 의문이 뒤따랐어. 너는 왜 사람들을 내버려두었지?
--- p.24

“아빠는 이해 못 해.” 그 말이 맞아. 아마 나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는 네가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모르니까. 네가 살아가는 우주의 형태를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어. 악몽 속에 들어가 대신 싸워줄 수 없는 것처럼. 부모면서.
--- p.26

네 관점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아. 과거, 현재, 미래, 그 외 모든 시간 방향들을 너는 동시에 경험해. 모든 현실이 이미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걸 빛처럼 빠르게 건너뛰고 있을 뿐이야. 여기까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어. 아인슈타인 얘기잖아. 상대성 이론. 유튜브만 찾아봐도 비슷한 얘길 지겹게 들을 수 있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에게 우주는 하나가 아니야. 매 순간 무수히 갈라져 가지를 뻗어나가는 가능성들의 집합이지. 한없이 분화하는 무한 개의 평행우주들. 네 인생의 모든 가능성들이 네 눈앞에 펼쳐져 있어.
--- p.27~28

그런데 너마저 그런 삶을 살겠다니. 네가 엄마처럼 되지 않았으면 했어. 너까지 그런 삶을 살아선 안 됐어. 만약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면, 너는 그 운명과 싸우는 사람이길 바랐어. 네가 묶어버렸다는 시간의 매듭을 파헤쳐 풀어버리고 싶었어. 이렇게 말하면 너는 또 오이디푸스 얘길 하며 운명에 저항하는 행위조차 그 운명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반박하겠지만 말이야.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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