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학문의 한 범주로 성립된 것과는 별개로 원래 종교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제도적이고 조직화된 종교를 의미할 뿐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한 종교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즉 인간 속에 있는 종교적 욕구, 영적인 차원, 개인적인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미에 대한 욕망, 초월적인 것에 대한 추구, 초월성이 가능하다는 생각들,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넘어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 너머 펼쳐진 것에 대한 한 개인의 믿음 등을 포함한다(Knight and Woodman 2).
--- p.16
“포스트세속 시대”에서 “포스트”가 의미하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 끝나 버렸다거나 근대 이전의 종교성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인문학이나 사회학이 세속주의를 깊은 통찰 없이 받아들였던 단계에서 벗어나, 세속주의가 근대에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범주를 특정하게 생산해 낸 이데올로기에 의존하고 있었음을 비판적으로 깨닫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p.25
모든 학문 중에서 특히 문학은 종교의 회귀가 일어날 수 있는 “특권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고 브래들리 등은 주장한다. 왜냐하면 문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환상과 사실 사이, 초월과 내재 사이,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의 엄격한 경계에 도전해 왔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세속적 글쓰기들, 즉 교회의 직접적 영향력 밖에서 출판된 글들은 항상 영적인 것을 향한 표현을 하고 있었고, 종교적 유산과 인간 경험의 많은 부분이 초자연적이고 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면이 있음을 표출해 왔다.
--- p.27
포스트세속적 문학연구란 자아와 사회가 서로를 상호적으로 구성하는 기능이 종교적인 것임을 인지하고,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방법론들이 귀를 닫은 주제들에 대하여 그리고 옛 방법론들이 좁은 범위 안에서만 다루었던 주제들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는 문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신앙은 보류되어야 한다는 끈질긴 생각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포스트세속적 비평 방법은 비평계에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 pp.32~32
오스틴이 작품 속에서 종교적 언급을 최소화한 것은, 콜린스가 지적했듯이 설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을 통해서 신앙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엠슬리가 지적했듯이 영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자제하는 영국 국교의 관습에 기인하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엄숙한”(serious) 주제, 즉 종교적 주제는 완전히 엄숙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소설이라는 통속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아직 오락을 위한 가벼운 읽을거리 정도로 생각되던 때였고, 이러한 소설에 대한 당대의 태도에 대해 오스틴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의 다음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 p.60
『오만과 편견』 속에는 여러 부부들의 모습이 나오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여러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결혼을 통하여 얻게 되는 행복과 불행은 그들의 도덕적?영적?종교적 성장과 직결되어 있다. 자아 인식을 통해 자아가 성숙하고 타인과 사회에 대하여 영적 원칙에 근거한 도덕적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을 때에 올바른 판단과 선택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이 행복한 결혼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성장을 이루어 냄으로써 결혼에서 가장 큰 행복을 보상으로 받는 과정에는 기독교에 기초한 오스틴의 도덕적인 세계관이 깊이 스며 있다.
--- p.82
에드먼드가 패니를 선택하는 것은 세속성으로 인해 허물어져 가는 세상 속에서 패니만이 내적인 종교를 가진 영혼을 소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에드먼드가 마법이 풀리고 눈이 뜨였을 때, 메리에 대한 열정은 끝나고 패니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다. 패니는 진지하고, 의무감이 강하고, 자아 인식과 자아 억제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에드먼드는 그녀와 함께라면 성직자로서의 소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성직 임명을 앞두고 에드먼드가 꿈꾸었던 “그 임무를 함께하며 활기를 불어넣고, 그 임무들에 보상을 줄 아내”인 것이다. 부모의 집을 떠나, 맨스필드 파크에 와서는 다락방에서 살다 겨우 “학교방”이라고 불리는 방에 내려와 살게 된 후에도 불기 하나 없어 추위에 떨어야 했던 패니에게 공간은 그녀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기제다. 이제 에드먼드와 결혼하여 패니가 가서 살게 된 손턴 레이시 목사관은 그녀에게 가장 알맞은 집이며, 가장 알맞은 남자와 소명을 함께 수행해 갈 공간이다.
--- p.160
실제로 디킨스는 교리나 분파적 편협한 논쟁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오직 예수를 본받아(imitate) 그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사는 것, 타자에게 너그럽고, 동정심을 가지고, 용서하고, 자신의 삶을 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당시 많은 신학적 논쟁이나 교리들과 거리를 두고, 구약성경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발생하는 위선과 비참을 비판하고,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본을 받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사랑과 자선으로 보살피며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삼았던 그의 신앙은 흔히 “단순한”(simple) 신앙이라고 불린다.
--- p.174
19세기 초에 영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종교적 태도는 가난을 신성한 세계 질서인 불변의 경제법의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자선이 가난을 덜어 줄 수는 있지만, 자선의 대상은 도움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에게만 한정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게으름이나 무절제 혹은 낭비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은 개인적인 잘못으로 가난하게 된 것이고 자기 죄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일 뿐이라고 보았던 것이다(Butterworth 26). 디킨스는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예수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으며,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 p.192
디킨스가 예술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것 중에 하나가 선한 인물들 안에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반영을 보여 주고, 모든 선함의 근원으로서 그러한 가르침에 이르도록 눈에 띄지 않게 독자를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신이 그린 모든 사회적 폐습들은 신약성경을 떠난 것으로 그려졌으며, 반면 선한 사람들은 “겸손하고, 자비롭고, 신실하고, 용서한다”고,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예수의 제자들이라고 반복해서 분명하게 주장하였음을 설명하였다. 그의 분명한 주장대로 디킨스는 예술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선한 사람들 안에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반영을 보여 주었지만, 독자들에게 그러한 가르침에 이르도록 함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게 이끌어 가려고 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그린 선한 인물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디킨스가 그의 작품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명시한 인물이 조 가저리다.
--- pp.24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