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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94g | 104*182*22mm
ISBN13 9791167902412
ISBN10 11679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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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때때로 현재형으로 쓰이는 문장들이 과거로 굴러떨어지는 날을 상상한다. 에베레스트산의 끄트머리가 움푹 파이거나 안혜리와 내가 갈라서는 날, 그래서 오랜 기억을 돌이킬 필요가 없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면 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p.10

그때는 세 마디 이상의 문장을 만드는 법을 몰랐고 머리를 얼마나 자주 감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 티셔츠와 원피스의 차이마저 몰랐다. 내가 아는 건 옷이 더러워지면 대야에 넣고 물을 받아야 한다거나,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 있는 걸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된다는 것뿐이었다. 선생의 말을 듣지 않은 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짜증을 내거나 싸움을 벌이고 다닌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 p.31

남자는 추하고 해롭고 역겨운 걸 철저히 싫어하는 사람들, 그런 걸 눈앞에서 완전히 치워버리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빚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각자의 사정이 불공평한 까닭에 외면하고 묵인하고 모르기로 마음먹는 데에서도 이득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들의 이득은 깨끗함을 유지하는 상태 그 자체라고 했다.
--- p.109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나는 이 나이에 돈 한 푼 못 버는데 정신까지 나간 남자고, 넌 그런 남자 집에 드나드는 불우한 여자애야. 한밤중에 개처럼 짖고 다니는 걸 보면 제정신도 아니야. 지금까지는 내가 고양이 죽이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애들 때리는 이야기를 해보자. 그게 바로 페어플레이 아니겠니.”
--- p.115

아이들의 세계만을 논하자면, 내가 윤서래의 갈비뼈를 부러뜨린 건 계산할 필요가 없는 세목이었다. 박경수 같은 애들에게 얻어맞는 건 합당한 정산이겠지만 윤서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갚을 필요 없는 빚을 갚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진실로 정리할 빚도 있는 것 같았다.
--- p.185

나는 안혜리를 떠났고 안혜리도 나를 보내주었다.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 여전히 얼굴을 분간할 수 없는 아이들 너머에 김은아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나는 그 애를 껴안고 안혜리에게 했던 것처럼 입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여기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그러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테고, 그 애들과 나의 관계는 안혜리와의 기억에 비하면 미미했다.
--- p.191

언젠가 남자를 다시 만날 때 피하지 않으려면 이 정도가 딱 알맞아서, 그리고 남자에게서 본 것을 남과 나누기 위해서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서, 나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옥상에서 내려와 집으로 가는 길을 밟기 시작했다.
--- p.19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중학교 3학년인 나, 현수영은 소위 업소에서 일하는 엄마와 줄곧 변두리 원룸촌에서 살아온 선머슴 같은 여자아이다. 엄마는 남자친구의 설득으로 나를 낳았지만 엄마의 남자친구는 내가 태어난 후 1년 반이 지나자 잠적해버렸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인해 나는 어릴 적부터 이렇다 할 보살핌이나 훈육을 받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디에 있든, 어디에 가든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가 됐다. 나는 또한 학교 친구 안혜리의 개이자 일종의 남편, 그리고 행동대장이다. 안혜리는 자신을 따르는 무수한 학생들을 거느린 ‘노는’ 세력의 우두머리다. 어느 날, 살아 있는 생물체를 손으로 만지면 그 생물체가 케이크로 변하는 남자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부정하고 낯설게 바라보는 전환점이 된다. 나는 케이크 손에게 비로소 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고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한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날갯짓을 시작한다. 힘들고 아프고 비참한 과정 속에서 그것을 딛고 일어선 세계는 더럽고 추한 것들에서 아름답고 평안한 것들로 나아간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좋은 소설은 읽다 보면 수많은 미지함수와 변수를 만나게 되고 꿈꾸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 단요는 우리 시대의 특별한 방정식 설계자다. 그가 만든 방정식의 답을 구하기 위해선 항상 그 반대편에 우리 자신을 대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지금 이 소설이 무섭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이기호 (소설가)
그는 매끄러운 세상의 피부를 손수 벗겨내고 그 아래의 흉측한 레일들을 누구보다 세심히, 오래 들여다보는 작가다. 이제 나는 단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그의 이야기는 깊은 우물 같다. 계속 파고 들어가면 야금야금 맑고 달콤한 샘물이 고인다.
- 조예은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관계들의 부조리함에 가담한 수영을 탓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고, 그러한 현실의 문제들에서 소외된 이들이 결국에는 자기 인식과 인정을 찾아가 닿는 모습은 오히려 틀에 박힌 정답과 이상향을 내세우는 어떠한 형태보다 더 와닿는 지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거기에 환상적인 케이크 손이 등장한 것은, 막막하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틀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다.
- 이지용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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