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동안의 고민 끝에 가정법원에서 최장 7년 동안 근무할 수 있는 가사소년사건 전문법관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소년,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 사랑의 기억도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부부, 몇 시간 후 아빠와 살게 될지 엄마와 살게 될지 알지 못하고 기다리는 아이들, 늙고 병든 부모를 부양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자녀들, 부모의 재산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위태로운 가족들을 보는 것은 재판일지라도 쉽지 않았다.
--- p.7,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시간을 그리고 어쩌면 이 땅에서의 죽음 후까지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병들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때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또한 항상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던 배우자가 이별을 고할 수도 있다. 가족들이 나의 재산을 두고 서로 치열하게 다툴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고 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후의 삶과 사후를 준비할 수 있다.
--- p.8, 「프롤로그」 중에서
죽은 사람의 재산은 많고 적음을 떠나 심지어 빚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남겨진다. 이처럼 사람이 죽음으로 인하여 그 재산상의 법률관계가 다른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것을 ’상속’이라고 한다. 상속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죽음, 사람, 재산이다. 타인에게 재산을 무상으로 넘겨준다는 점에서 상속은 ‘증여’와 그 효과가 유사하다. 하지만 상속은 재산의 소유자가 죽은 뒤에 진행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재산을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도 세간에서는 상속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증여이다.
--- p.16, 「1부 위대한 유산 「죽음, 사람, 재산」」 중에서
피상속인으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은 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상속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어쩌다가 학교에 오빠 도시락을 잘못 가져갔는데, 내 도시락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계란 프라이가 얹혀 있었어요. 그때의 먹먹한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건 시작일 뿐이었어요.” 상속재산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장 시절 오빠와 남동생을 상대로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한 중년 여성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계란 반찬이 귀했던 그 시절에는 그 반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남아선호, 빈부격차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을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차별 대우의 시작으로 남았을 수 있는 것이다.
--- p.35, 「1부 위대한 유산 「오빠 도시락의 계란 프라이 - 「특별수익과 기여분」」 중에서
유산을 물려받아야 할 상속인 입장에서도 부모나 배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이다. 우리나라 정서상 부모님 생전에 재산 분배에 관해 물어보거나 유언을 요구하면 부모 재산이나 탐내는 패륜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자식이 부모에게 “유언을 해두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하면 “내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냐”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자녀들은 괜히 말을 꺼냈다가 의심과 미움을 받고 유산 분배에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막상 유언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격식도 까다롭다.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유언을 소홀히 하거나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p.76-77, 「2부 상속의 기술 「유언 이야기」」 중에서
피상속인의 유언이나 생전 증여가 있더라도 상속재산 중 일정한 비율은 피상속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인을 위해 반드시 남겨두게 된다. 이같이 유보되는 몫을 ‘유류분’이라고 한다. 유류분보다 적게 상속받게 된 상속인은 자신의 몫보다 많이 받은 상속인이나 제3자에게 부족한 부분만큼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다. 피상속인은 유류분을 고려하지 않아 유산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온전히 실현하는 데 실패할 수 있으며, 상속인은 유류분 때문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나 유증으로 받은 자신의 몫을 반환해야 할수 있다. 이처럼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과 상속인 모두에게 중요한 상속의 요소이다.
--- p.103, 「2부 상속의 기술 「유류분 이해하기」」 중에서
재산분할은 이혼 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이 된다. 관심이 워낙 높다 보니 인터넷에는 ‘부부생활 10년이면, 재산분할 50 대 50’과 같은 부정확한 정보가 난무한다. 재산분할에는 상당히 복잡한 법리가 있고 각각의 사례마다 개별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지나치게 사안을 일반화하거나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결과를 단정하는 정보는 주의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 p.155, 「3부 헤어질 결심 「이혼과 재산분할」」 중에서
성년후견 재판에서의 첫 번째 쟁점은 A 씨에게 성년후견이 개시될 것인지 여부였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는 A 씨가 C 씨를 차기 대표이사로 지명할 당시 A 씨가 올바른 정신상태였는지가 관건이었다. 결국 성년후견 재판이 가업승계를 둘러싼 회사 경영권의 향배를 가르는 중요한 분쟁이 되었다.
--- p.221, 「4부 상실의 계절 「성년후견, 가업승계 분쟁의 새로운 트렌드」」 중에서
A 양의 경우에도 친권자인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어머니인 B 씨의 친권이 당연히 부활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B 씨는 자신을 A 양의 친권자로 지정해 달라는 청구를 했고, 고모인 C 씨와 조부모는 A 양의 고모를 미성년후견인으로 선정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미성년자의 단독 친권자가 사망한 경우 생존 부모를 친권자로 지정할지 미성년후견인을 선정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 p.238-239, 「4부 상실의 계절 「엄마 말고 고모랑 살고 싶어요」」 중에서
쉽게 말하면 부양의무자에게 당장 남아 있는 것이 밥 한 공기밖에 없더라도 그것을 부양받아야 할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 1차적 부양의무이고, 내가 평소 먹는 수준으로 충분히 먹고도 남은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2차적 부양의무이다. 보통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1차적 부양의무에, 성년이 된 자녀와 부모 사이의 부양의무와 그 외 친족 사이의 부양의무는 2차적 부양의무에 해당한다고 본다.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은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부양료를 달라는 소송을 할 수 있다.
--- p.256-257, 「5부 가족의 무게 「가족과 부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