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de facto ruler’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즉위한 이듬해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국가개혁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2016년 6월 경제개혁 5개년 계획인 ‘국가개조계획 NTP, National Transformation Program 2020’을 발표해 2020년까지 이룰 청사진을 제시했고, 뒤이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비전 Vision 2030’을 발표해 사우디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산업다각화 정책을 마무리 지었다.
--- p.5, 「프롤로그 「나는 놀라지 않았다」」중에서
이제는 모든 언론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망설임 없이 ‘실질적인 통치자’라고 지칭한다. 지금도 국왕의 동정이 보도되고는 있지만 그 모두 국왕의 결정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단지 이름만 필요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인 통치자에 오른 왕세자는 열정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고, 실제로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사우디에 2009년 초에 부임해 2021년 말에 돌아왔는데, 그 13년 동안 바뀐 것이 이전 수십 년 동안 바뀐 것보다 크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사우디에서 돌아온 지난 2년 사이에 바뀐 것이 이전 13년 동안 바뀐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심에 바로 왕세자가 있었다. 사우디의 모습이 왕세자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다.
--- p.12, 「프롤로그 「나는 놀라지 않았다」」중에서
사막이 때로는 연한 녹색의 바다가 되고 때로는 황홀한 황혼으로 물들어 고단한 일상에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사막은 사막이어서 사람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신의 뜻대로’라는 뜻을 가진 ‘인샬라Inshallah’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 p.71, 「1부 어제의 사우디 「사람이 한없이 작아지는 곳」」중에서
사우디의 실질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추진하는 거대사업도 그렇다. 석유화학 일변도의 산업구조를 다각화해서 위험을 분산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왜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사업이나 관광사업 일변도인지 의아하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합의는커녕 내부에서라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흔적은 어느 보도에도 보이지 않는다. 왕세자가 결정하고 외국 컨설턴트들이 이를 구체화해 나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 p.116, 「2부 빈 살만의 등장과 오늘의 사우디 「세계 유일의 전제왕정국가」」중에서
라마단은 이슬람에서 사용하는 헤지라력의 아홉 번째 달이다. 라마단이 되면 모든 무슬림은 한 달 내내 해가 떠 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입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물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운다. 이야기로 들은 것이지만 극단적인 사람은 침도 삼키지 않고 뱉는다고 한다.
--- p.174, 「2부 빈 살만의 등장과 오늘의 사우디 「라마단의 역설」」중에서
언젠가부터 우리 노래가 K팝이라는 이름으로 사우디에서 붐을 일으키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고, 한국말을 배우는 사우디 젊은 여성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슈퍼주니어가 공연 온다고 들썩인 것이나 BTS가 온다고 했을 때 슈퍼주니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온 도시가 발칵 뒤집힌 것도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귀국할 무렵에도 지나가면 어떻게 알아보는지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는 젊은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나는 10년이 넘게 사우디 말이라고는 간단한 인사 한두 마디 하는 게 전부였는데 K팝, K드라마로 우리말을 배웠다는 이들은 똑떨어지게 한국말을 했다.
--- p.222~223, 「2부 빈 살만의 등장과 오늘의 사우디 「꼬리 제노비아」」중에서
결국 파운딩 데이라는 새로운 건국기념일을 제정한 것은 사우디가 ‘와하비즘의 나라’가 아니라 ‘사우드 왕가의 나라’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이슬람 율법을 해석하는 권한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왕에게 있다는 것은 이슬람을 국왕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선언이다. 그러고 보면 기념일 하나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건국기념일 소동이 사실은 사우디의 사회적·종교적·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인 셈이다.
--- p.234, 「3부 빈 살만 개혁의 실체와 내일의 사우디 「건국기념일 소동」」중에서
‘산업다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험의 분산도 중요한 목표이다. 그런데 석유산업 중심에서 벗어나겠다는 정책이 ‘분산’은 고려하지 않고 관광산업으로 ‘방향’만 바꾼다면 위험은 어떻게 낮출 것이며, 관광산업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통제 불가능한 코로나19나 자연재해가 닥칠 때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 p.271, 「3부 빈 살만 개혁의 실체와 내일의 사우디 「거대사업의 빛과 그림자」」중에서
그동안 왕세자가 맹렬하게 추진했던 개혁의 성과로서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개혁 정책은 ‘국민을 위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 ‘국민에 의한것’이어야 하는데 왕세자가 추구하는 개혁 정책이 과연 그러한지 잘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국민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취업률 지표뿐만 아니라 근로의욕 면에서도 그렇다. 국민을 개혁의 주체로 만드는 일, 아니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저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일이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 외면한다면 저의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왕세자는 어느 쪽일까.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외면하는 것일까. 외면한다면 그 저의는 무엇일까.
--- p.314, 「3부 빈 살만 개혁의 실체와 내일의 사우디 「왕세자 지지도의 정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