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통해 세계사와 미술사를 공부했고 그림과 꽃을 배웠다. 무엇보다 그릇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참 많이 만났다. 그 인연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앤티크 그릇과 동고동락한 30년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이다.
--- p.14 「프롤로그」 중에서
1780년경부터 마이센은 관능적이고 사치스러운 로코코 양식에서 벗어나 프랑스에서 시작된 네오클래식Neoclassic(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동경과 우아하며 단정한 형태의 고전미를 추구하는 예술 사조로 신고전주의라고도 부른다.)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마이센의 화가들은 하얀 바탕에 꽃과 나비, 과일 등을 그리며 단조로운 스타일의 도자기를 생산하게 됐다.
--- p.34 「인간의 욕망이 낳은 유럽 최초의 도자기, 마이센」 중에서
내가 보유 중인 두 개의 티첸로히터 모카 세트는 디자인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같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손잡이가 위로 솟은 티첸로히터 하이 핸들 네발 모카잔과 커피포트는 핸들만으로도 포인트가 되는데 블링블링한 금 신발을 신고 있어 더욱 눈에 띈다. 특히 모카잔은 새끼손가락을 살짝 들고 잡아야 할 것 같은 새침한 손잡이가 특징으로 디자인이 특이한 만큼 사용할 때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 p.54 「각양각색 다채로운 스타일을 뽐낸다, 바바리아」 중에서
유럽 도자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드레스덴이라고 이야기한다.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에 위치한 작센주의 주도로 특히 엘베강Elbe江을 끼고 있는 구시가는 경치가 아름다워 독일의 피렌체로 불린다. 10여 년 전, 유럽 도자 여행을 떠났을 때 처음 마주했던 드레스덴의 풍광을 잊을 수가 없다.
--- p.68 「마이센 도자기에 화려함을 입히다, 드레스덴」 중에서
앤티크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도, 모던한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빌레로이앤보흐는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독일 그릇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포슬린 브랜드는 지역명 또는 설립자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많은데, 빌레로이앤보흐역시 두 명의 설립자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 p.98 「합리적인 독일 그릇의 대명사, 빌레로이앤보흐」 중에서
린드너는 패턴도 린드너답지만 그림 없이 봐도 린드너임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도자기의 형태가 클래식하다. 포트와 잔의 손잡이는 딱 떨어지는 라인이 아니라 한 번 이상 변형을 주었고 접시 라인도 매끈하지 않고 독특하다.
--- p.108 「서독을 대표하는 명품 도자기, 린드너」 중에서
이 찻잔은 독일 그릇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톤 다운된 컬러를 사용했다. 바로 눈에 띌 만큼 굉장히 쨍한 컬러이지만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골드 플라워 패턴은 입체감을 살려 더욱 화려하면서 웅장하게 느껴진다. 두툼한 음각 역시 독일 포슬린에서는 매우 드문 표현법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당연히 독일 그릇인데 하나하나 요소를 따져보면 독일 그릇 같지 않은, 굉장히 오묘하고 신비한 아이템이다.
--- p.126 「독일스러우면서도 독일스럽지 않은 그릇, 운터바이스바흐 샤우바흐쿤스트」 중에서
그릇에 무심했던 친정어머니의 그릇장에도, 그릇을 좋아했던 시어머니의 그릇장에도 존재감을 뽐냈던 그릇이 하나 있다. 강렬한 원색에 먹음직스러운 과일 문양이 돋보였던 앤슬리의 오처드 골드Orchard Gold가 그것. 1970~1980년대에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의 영향으로 외국산 그릇이 국내에 조금씩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화려한 앤슬리가 단연 눈에 띄었을 것이다.
--- p.164 「어머니들의 로망이었던 영국 그릇, 앤슬리」 중에서
로열 워런트는 도자기 회사를 포함한 다양한 업체가 영국 왕실이나 왕족에게 5년 이상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부여되며 자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덴마크, 스웨덴, 일본의 왕실에까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또 이 보증서는 5년에 한 번씩 재심사를 받기 때문에 파라곤의 경우 같은 패턴의 제품이더라도 출시 연도에 따라 로열 워런트 문구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 p.196 「영국 왕실이 품질 보증한 도자기, 파라곤」 중에서
조개껍데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컬러로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아일랜드 명품 도자기 벨릭. 2014년 〈그릇 읽어주는 여자〉 블로그를 통해 처음 벨릭을 소개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매우 낯선 브랜드였는데,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그릇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오래전에 영국의 포슬린 박물관에서 벨릭 도자기를 처음 보고 이전에 알던 그릇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 p.226 「아일랜드의 보석, 벨릭」 중에서
로얄코펜하겐은 현재 국내에서 품질과 디자인을 모두 인정받은 가장 친숙한 유럽 그릇 브랜드 중 하나이지만 처음부터 이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덴마크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명~청나라 시대에 중국에서 수출된 청화 백자에 매료되어 이를 모방하면서 로얄코펜하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p.236 「명불허전 덴마크 대표 포슬린, 로얄코펜하겐」 중에서
지리적 위치 탓에 굴곡진 역사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헝가리처럼 헤렌드도 200여 년의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존폐의 위기를 겪었으나 그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며 지금의 명성을 쌓게 됐다. 사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나 스토리와 상관없이 내가 처음 헤렌드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구하기 쉽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 p.272 「헝가리의 소도시, 명품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다, 헤렌드」 중에서
리차드 지노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폰티Gio Ponti로 1923년부터 1933년까지 리차드 지노리 제조 부문의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동양적인 감성과 아름다움을 유럽 식탁에 전파시켰다. 이러한 지오 폰티의 노력 덕에 리차드 지노리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명품 그릇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p.308 「이탈리아의 자존심, 리차드 지노리」 중에서
대한민국 0.1% 상류층의 하이틴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 〈상속자들〉의 남자 주인공 엄마의 찻잔으로 등장했던 브랜드가 바로 러시아 대표 포슬린인 로모노소프이다. 22캐럿 골드와 코발트블루로만 그물과 매듭을 표현한 코발트 넷cobalt net 패턴은 이후 명문가 입시를 주제로 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도 등장해 국내에서 로모노소프는 ‘상류층의 전유물’ 또는 ‘명품’ 이미지가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모노소프는 러시아 황실 소유의 도자기 브랜드로 출발했다.
--- p.316 「러시아 황실 도자기, 로모노소프」 중에서
유럽 제품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미국의 도자기 시장에서 레녹스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며 조금씩 점유율을 넓혀갔고 20세기 중반에는 자국 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털 회사인 브라이스 브라더스Bryce Brothers를 인수하는 등 회사의 규모를 확장하고 이후 계속 승승장구했으나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20년 레녹스의 유일한 미국 공장이 폐쇄되면서 사실상 모든 제품 생산이 중단됐다.
--- p.330 「백악관의 그릇, 레녹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