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만은 내가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음반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밀스타인의 연주다. 몇 번을 들어도 마음 깊이 스며든다. ‘무욕’ ‘무아’라고 해야 할까, 연주하는 인간이 투명해지다 못해 맞은편이 비쳐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에고가 말끔하게 승화되고 순수한 음악만 남는다…… --- p.21
와타나베 아케오가 지휘하는 일본 필의 연주는 한마디로 매우 품위 있다. 우직하다고 할까, 계산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 부분이 카라얀이나 데이비스나 마젤의 연주와 사뭇 다르다. 가쓰오 육수로 요리한 시벨리우스…… 이건 어디까지나 칭찬이다. 들려줘야 할 곳을 확실하게 챙긴, 뛰어난 연주라고 생각한다. --- p.49
야나체크SQ는 1947년 브르노(체코)에서 결성된 단체로, 당시 이웃나라의 헝가리SQ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부드럽고 풍성한 소리로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연주한다. 같은 곡인데 이렇게 인상이 다르다니,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대를 잊게 하는 따뜻함이 흐른다. 아니, 지금 시대에는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 p.99
시게티의 연주는 첫 음부터 신기할 만큼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솔직하면서도 간결한, 더없이 성실한 소리다. 미음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시게티는 모차르트 음악의 심장부 같은 것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가능한 각도에서 날카롭고 상냥하게 꿰뚫는다. --- p.153
크나퍼츠부슈는 1950년대를 꼬박 바쳐 빈 필과 함께 바그너와 브루크너 음악을 영국 데카에서 녹음했다. 그의 바그너를 듣고 있으면 ‘이 사람은 바그너를 지휘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고 만다. 그 정도로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말 그대로 ‘오래되고 멋진’ 레코드다. --- p.204
나라면 (렉터 박사와 달리) 새 녹음의 깊은 원숙함보다는 역시 1955년반의 선명한 충격 쪽을 택하고 싶다. 굴드는 이 데뷔반으로 음악계의 판도를 순식간에 뒤엎어버렸다. 이것은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듣는 이의 피부에 스며들어 흔적을 남기는 음악이다. --- p.274
장드롱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첼리스트로, 억지스러운 구석 없이 단아하고 유연한(그래도 결코 약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노래한다. 그런 장드롱과 중용을 지키는 하이팅크가 팀을 이뤘으니 거친(울퉁불퉁한) 음악이 나올 리 없다. 양지바른 툇마루에서 고양이나 쓰다듬으면서 이런 음악을 들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음악이다(고양이도 없고 툇마루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