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골드 빛 하드 케이스.
첼로다.
그 커다란 윤곽이 눈에 들어오자 심장이 쿵 뛰었다. 숨을 한껏 들이마셔도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 모양새를 보기만 했는데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럴 바에야 거짓말이라도 할 걸 그랬다. 예전에 손가락을 다쳐서 다시는 첼로를 못 켠다고 시오쓰보에게 우겼어야 했다. 그 정도 재치도 발휘하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다시는 첼로를 만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겁이 나서 위팔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는 데도 다치바나는 첼로 케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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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을 타고 나오는 맑은 음색이 사소한 일상사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 의식을 높은 곳에서 하나로 모아줬다. 실은 이런 음색을 낼 수 있는 악기다. 첼로는.
누군가와 툭 부딪치는 바람에 다치바나는 눈을 떴다. 싱그럽고 풍성한 음악의 세계와 달리 혼잡한 전철의 풍경은 초라하게 빛바랜 것처럼 보였다.
“여기 이 절의 앞쪽을 조금 길게 늘여볼까요. 음정도 약간 낮은 것 같은데. 온몸이 굳었으니까 좀 더 긴장을 풀고요. 긴장하면 어깨가 점점 올라가니까.”
그리고 후렴부를 좀 더 깊이 있게 켜면 멋있겠죠, 하고 아사바가 후렴부를 연주했다. 다치바나도 익히 들었던 옛날 드라마의 주제가였다. 뭐가 이렇게 다를까 생각하며 다치바나는 아사바의 가벼운 활 놀림을 바라봤다. 공들이지 않고 켜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과는 완전히 소리가 달랐다. 햇빛을 받은 꿀처럼 고음이 허공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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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여운이 사라진 공간을 더듬듯 다치바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희미한 불빛이 미카사 음악 교실의 레슨실을 비추고 있었다.
수많은 기항지를 거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신비한 감각에 머릿속이 멍했다. 마치 의식을 덮은 얇은 껍질을 한 장 벗겨낸 것처럼 눈에 비치는 세계가 새로워 보였다.
“방금 연주는 지상 몇 미터 정도였지?”
긴자 아니면 런던, 하고 장난치듯 감상을 묻자 런던요, 하고 다치바나는 대답했다. 그 진지한 말투에 아사바는 어깨를 들먹이며 웃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좋았습니다.”
“뭐가 어떻게 좋았어?”
“뭐랄까, 모르는 집의 정원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한순간이나마 잠들었다는 사실을 다치바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뒤엉킨 실이 술술 풀린 것 같은, 둘도 없이 독특한 감각. 온몸에서 뻣뻣함이 가셨고, 불쾌한 긴장감도 풀렸다. 지금이라면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치바나 씨는 매번 정말로 좋은 감상을 들려주는군. 그럼 오늘은 밥 잘 챙겨 먹고 푹 자도록 해. 부디 일은 적당히 하고. 안 나으면 꼭 의사한테 가. 컨디션 조절 잘해서 다음 주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
“저기, 곧 직장에서 바쁜 시기가 끝나는데요.”
그래서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여기의 첼로를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다치바나는 목구멍을 쥐어짜듯이 빠른 말투로 중얼거렸다.
“출퇴근할 때 가지고 다니기는 불편하니까 선생님 말씀처럼 레슨 때는 레슨실의 첼로를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집은 맨션이지만 근처에 노래방이 있거든요.”
레슨실 문이 열렸을 때 녹음기는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빌려줄 수 있지. 바쁜 시기가 끝난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레슨 내용 말씀인데요.”
역시 한 곡을 찬찬히 음미하는 식으로 바꿔도 될까요, 하고 결심을 전하자 진실미 있는 열의가 느껴졌는지 아사바의 표정이 풀어졌다.
다치바나가 꾸는 심해의 악몽에는 낡은 잠수함도, 추하게 생긴 물고기도 나오지 않는다.
꿈속에 펼쳐지는 암흑은 첼로 교실 뒷골목의 색이었다.
--- pp.88~89
“선생님, 왜 저한테 이 곡을 골라주신 거죠?”
오노세는 이것 말고도 수많은 곡을 썼잖아요, 하고 억지로 웃음을 짓자 아사바는 음, 하며 구부린 손가락의 관절 부분을 턱 끝에 댔다.
순수한 눈이다. 무의식중에라도 진실을 속속들이 파헤칠 것 같은.
“잘 어울리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멋지잖아. 영화 속의 고독한 스파이.”
다치바나 씨는 그런 분위기를 잘 살려서 연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며 아사바가 자기 첼로를 세웠다. 이윽고 줘봐, 하 고 긴 손가락으로 다치바나가 들고 있는 악보를 가리켰다.
“중반부가 제법 어렵거든. 왼손 운지법에 정신이 팔릴 만한 곳이 많으니까 주의해. 손가락에만 신경 쓰면 이 악곡의 좋은 점을 잘 끌어낼 수 없어…….”
“저기, 라부카는 뭔가요?”
여느 때와 달리 다치바나가 끼어들자 아사바는 약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 품에 안긴 황갈색 첼로는 연주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못생긴 심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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