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I권 :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까지 이해한 차원이 겹치고 합쳐지면서 읽는 능력이 제대로 갖춰진다. 더군다나 젊었을 때 맛본 생생한 감동은, 한 차원 읽는 법을 끌어올린 기억으로 인해 새로운 읽기가 파묻히는 일 없이 언제까지나 그리움으로 남아 빛을 발한다.
--- p.43
나그네여
모든 일 뒤로 하면
차디찬 돌덩이도 쉼터가 되네.
--- p.83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노래를 부른다.
--- p.145
포크너와 같은 현대 작가에서 도스토옙스키, 발자크와 같은 19세기 작가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작품을 읽는 일은 효과적일 터이다. 이는 곧 신화적 원형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장치·수법을 배우는 길이다.
--- p.220
상상력이란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지, 고정된 이미지를 근본부터 다시 만드는 능력이다.
--- p.269
제II권 : 읽는 행위
말의 정통적인 의미에서 독서 경험은 경험이라 할 수 있을까?
독서로 훈련된 상상력은 현실에서도 상상력이 될 수 있을까?
--- p.13
내게 독서란 여러 지점으로부터 집중된 다양한 충격과 자극의 총체이다.
--- p.35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의 ‘성적인 것’은 로렌스처럼 확실한 빛이 뚜렷하지 않거나, 밀러의 경우에는 격한 생명력으로, 메일러의 경우에는 거대한 암흑에 맞서자마자 그대로 암흑에 흡수되는 에너지를 부정할 수 없는 ‘성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존 업다이크는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활용하여 ‘성적인 것’을 폄하시킨다.
--- p.83
나는 일찍이 문장을 활자로 쓰기 시작할 때부터, 타인이 쓴 활자 너머의 어둠에 어떤 위험하고 긴장된 존재를 발견했다.
--- p.104
돈키호테는 오직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도 그를 위해 태어났다. 그는 행동할 수 있었고, 나도 그것을 쓸 수 있었다. _세르반테스
--- p.200
도쿄의 대학 생활을 바탕으로 그 한가운데서 나는 소설을 쓰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소설의 주제는 숲에서 송두리째 뽑힌 것처럼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년의 불안과 그가 뜨거운 마음으로 불러일으킨, 전쟁기에 체험한 숲속 마을의 기억이었다.
--- p.239
제III권 : 쓰는 행위
이제부터 쓰려는 소설을 요약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 p.18
소설을 쓰는 작업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의 뿌리에 도달하려는 시도이다.
--- p.67
나에게 있어 습작 소설은 방금 죽인 피해자와 같았고, 나는 뒤돌아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거의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 p.84
번개 같은 상상력의 섬광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시와 달리, 소설의 상상력은 모래 위를 걷는 조개의 발처럼 바로 옆을 천천히 쓰다듬어 가며 조금씩 전체를 파악해 나간다.
--- p.111
말이 사람을 만든다. 말이 세상을 만든다. 말이 사회를 만든다.
--- p.158
모호한 한 줄은 반드시 정확한 한 줄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쳐 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 p.197
한 자도 쓰지 않는 날은 없다.
--- p.240
제IV권 : 소설의 전략
소설은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동시에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항상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 p.16
소설의 전략은 어떤 시사적인 사건을 취하여 그것이 우주론적인 감각을 향해 밖으로 넓혀 가게 하고, 한편 인간 내부의 어둠으로 깊게 가라앉게 하는, 두 가지 모두를 목표로 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 p.41
나는 30대 후반부터 2, 3년 주기로 한 작가나 사상가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을 일상생활의 축으로 해 왔다.
--- p.88
아기는 요람 속에 있을 때 죽이는 편이 좋아.
아직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은 욕망이 자라나 버리기 전에. (윌리엄 블레이크)
--- p.130
현실이 없다면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상상력이 없다면 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p.209
제V권 :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나와 자네의 영혼도 언젠가는 육체를 벗어나서 숲에 있는 각자의 나무뿌리로 돌아가 다시 한번 ‘영원한 꿈의 시절’의 풍경을 발견하게 되겠지.
--- p.91
어른들이 보금자리라 부르는 골짜기를 떠나지 않으리라던 어린 시절의 덧없는 맹세를 생각하네···.
--- p.195
화장을 짙게 했는데도 미세스 오타의 피부색이 검게 가라앉은 듯이 보였다는 것, 그리고 보기 흉할 정도로 큼직큼직하게 생긴 아메리카 여성의 얼굴은 금색 솜털이 있고 하얀 가루가 일어나는 듯하면서도 피부가 말갛게 보였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의 인종적인 자아 발견은 주둔군의 지프가 처음 골짜기의 마을에 들어오던 날 시작되어 이 CIE 도서관의 사무실에서 완성된 셈이다···.
--- p.301
내가 기이 형의 편지 중 이따금씩 떠올리는 한 구절은 “처녀작은 작가의 마지막을 보여 준다”는 말이다.
--- p.393
저는 학원이나 대학 강사처럼 상향 단계라는 것이 있는 커리어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을 작정입니다.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이드를 하려고 합니다.
--- p.539
이리하여 우리는 쓸쓸한 바닷가,
그 물을 건넌 이가 일찍이
돌아온 적이 없는 곳에 이르렀더라.
--- p.615
기이 형, 이 그리운 시절 속, 언제까지나 순환하는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을 향하여 나는 몇 통이고 몇 통이고 편지를 쓸 것이다. 이 편지를 비롯한 그 편지들이 당신이 사라진 현세에서 내가 죽을 때까지 써 나갈, 이제부터 할 일이 되리라.
--- p.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