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고팠지만 자유로웠다. 난 여전히 배고픔과 싸우며 먹이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자유롭다.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존재다. 다른 이가 주는 밥은 얻어먹지 않는다. 난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게 내 삶이다.
--- p.14
자유를 잃는 덴 대가가 따른다. 반려견들은 그걸 알면서도 봉지에 담긴 사료를 택했다.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려 주는 남은 음식을 택했다. 지붕이 있는 집에 살며 목줄에 묶이기를 택했다. 목줄! 목줄! 목줄이나리!
--- p.23
사각형 속으로 빨려 들 것만 같았다. 그 속에 담긴 소용돌이, 그 안에 담긴 비논리 때문에. 어째서 폭풍우 속에 아이가 있을까? 왜 대낮의 하늘에 별들이 있을까? 그러다가 그림 속 나무들이 금빛이라는 걸, 해님이 통째로 삼킨 것처럼 금빛에 물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 왜일까? 현실은 이렇지 않은데 왜 그림 속 나무들을 속속들이 금빛으로 칠했을까? 게다가 구석을 좀 봐! 사각형의 구석에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손이 백 개나 있었다. 그 손은 전부 파란색이었는데, 현실에서 나는 한 번도 파란 손을 본 적 없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왜, 왜, 왜?
--- p.50
인간이라면 그 소리를 쉽게 고칠 수 있을 텐데,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소리를 발명하고, 그게 끔찍한 실수인 걸 알면서도, 그 소리가 마치 날씨나 죽음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듯 그저 참고 산다.
--- p.98
누군가를 구한다는 게 얼마나 묘한 일인가 생각했다. 아이를 구해 준 대가로 지금 난 내 집에 인질로 잡혀 있다. 그 아이가 물에 빠져 죽게 내버려 두었더라면, 혹은 다른 누군가가 아이를 구할 때까지 구경만 했더라면, 난 지금 자유로웠을 것이다. 아무런 방해 없이 달릴 수 있을 테고, 아이 역시 누군가가 구했을 테니 무사했겠지. 무엇을 돕든 언제 누구를 돕든, 돕는다는 것은 특별한 희생을 동반한다는 게 뚜렷한 진실처럼 다가왔다. 난 늘 빛의 속도로 달렸기에 남들 눈에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다는 건 특별한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완전히 멈춰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멈춰서 사각형들을 구경할 땐 인간들에게 잡혔다. 지금은 멈춰서 아이를 구한 대가로 숨어 있다. 멈추는 건 문제다. 멈춘다는 건 포로가 된다는 뜻이다. 도와준다는 건 붙잡힌다는 뜻이다.
--- p.112
어쩌면 모든 건 복잡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단순하지 않은 것은, 도움을 받는 이의 상황이 단순하지 않아서다. 모든 것이 복잡하다고 생각하니, 그 생각 자체는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모든 것이 복잡할 거라고 이미 짐작한 상태에서 실제로 복잡한 삶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좀 더 준비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말은, 삶이 복잡할 거라고 예상한다면, 그리고 삶이 실제로 복잡하다면, 삶은 단순해진다는 거다. 그렇지 않나? 방금 내가 떠올린 이 멋진 논리를 버트런드에게 말해 줘야겠다. 버트런드는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 p.113
근사하다고? 아니다. 영웅적이라고? 그럴 리가. 비행 능력을 잃는 것이 왜 갈매기가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걸까? 날 수 없다면 걸어 다니면 된다. 그들은 아주 빠르게 잘 걷는다. 또 먹이를 찾고 대화를 하고 주위를 보면서,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의 대부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날지 못하는 것이 체면을 잃는 일이며, 자기뿐 아니라 자기 종족을 부끄럽게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긴다. 날지 못하는 것이 불명예라 생각하기에 코다라는 끔찍한 행위를 백만 년 동안이나 해 온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 p.132
마음속에 고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해방의 본질이다. 즉, 자유란 우리가 자신을 잊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다.
--- p.147
들소들은 이 섬 바깥에 섬보다 백만 배나 더 큰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메인-랜드와 세상의 나머지 부분을 작게 만들어 베낀 곳에 살고 있으며 세상에는 여러 메인-랜드가 있고, 다른 섬도 있으며, 수백만 가지 공간이 있다고 했다. 들소들은 내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알았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속삭이듯 나직하게 들려주었다. 내가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폭발하고,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로 대체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무한한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자 혼란스러웠다.
--- p.173
“앞으로 너희 종족 간에 신체적인 차이에 기인하는 차별은 없을지어다. 선의 유무, 털이 난 방향, 눈이나 발굽의 색깔 따위로 다른 동물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이런 행동은 너희 종족의 존엄을 모욕하는 일일지어다. 알아들었느냐?”
--- p.201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해.” 나는 그렇게 말하는 소냐가 너무 고마웠다. 때로는 한 친구의 ‘그래, 해 보자.’ 라는 말한마디에 무척 많은 것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는 말도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위대하고 근사한 일을 해내기 딱 좋은 때야.’ 라는 말도 그렇고.
--- p.207
“넌 늙은 게 아니야. 그저 변한 거라고. 예전엔 날 수 있었고, 지금은 걸을 수 있지. 나와 같이 달리면서 세상을 구경하자. 바다를 보고, 메인-랜드라는 곳도 보자. 볼 수 있을 것들을 모조리 보자고.”
--- p.282
세상을 마음껏 달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코요테 개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웅은 앞으로 나아간다. 산다는 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