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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먹는 나날

: 열두 달, 계절을 먹고 깨닫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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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64g | 120*188*16mm
ISBN13 9791192099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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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나에게 자랑할 만한 요리 같은 건 없지만 그저 밭과 더불어 살며 제철을 맞은 재료를 먹는 정도의 재주는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내가 이 글에 ‘흙을 먹는 나날’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실은 내 정진요리, 즉 노스님에게서 요리법을 배운 나날이 곧 흙을 먹는 나날이었기 때문이다.”
--- p.22

“한겨울의 저장고에서 토란 한 알을 쓰다듬으며 꺼내는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바깥은 영하의 혹한이다. 윙윙 바람 불고 난로 연기마저 얼어붙어 하늘에서 부서지는, 한시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추위다. 그럴 때 손에 든 토란이 고맙다. 빨리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밭을 바라보다 칼로 조심스레 토란 껍질을 삭삭 긁어내듯이 벗긴다. “높은 산도 티끌이 모인 것이 아닌가” 하고 되뇌면서 말이다.”
--- pp.25~26

“자연과 맛의 상성을 알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 스승에게 욕을 먹거나, 호되게 야단맞거나 혹은 반대로 스승이 입맛을 다시거나, 스승에게 칭찬을 받으며 그날그날 가장 잘 어울리는 요리를 배우고, 칭찬받은 맛에 다시 또 궁리를 보태 문자 그대로 정진을 거듭한다. 마찬가지로 재료도 궁리해 사용하지 않으면 죽어 버린다. 몇 가지 안 되는 겨울 채소가 궁리를 더하면 빛나는 맛이 된다.”
--- p.55

“고원의 언 땅을 흠뻑 적시는 물의 온기에 얼음이 녹고 땅이 풀리면서 양분을 흡수해 싹을 틔운 풀들의 강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가슴이 복받친다. 갸륵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성일 것이다. 땅과도, 풀과도 무연해진 황량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이런 환희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땅을 갖고 싶다, 땅을 갖고 싶다, 외치는 게 아닐까.”
--- pp.62~63

“가진 것 없는 목수, 벌목꾼이라고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조금은 업신여김을 받으며 여름에는 아랫도리만 가리고 일했던 아버지가 도시락에 된장만 담고서 산에 들어가 캐온 산나물 등을 반찬 삼아 우적우적 먹던 행위가 진정한 참맛의 현현(顯現)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내가 주제넘게 똑똑한 척하며 다른 사람들의 도시락을 엿보고 아버지를 처량하게 생각했던 건 평범한 자식이었기 때문일 테다. 정어리도, 고등어도, 야생 땅두릅도, 두릅 새순도 진심을 아는 혀에서는 같은 맛이다. 개중 무엇을 업신여길 수 있을까.”
--- pp.72~73

“고개를 조아리고 각자 앞에 놓인 황밤을 입에 넣는다. 조그만 조각이니 입에 넣고 어금니로 오도독오도독 씹는다. 배도 고프기 때문에 으깨질 대로 으깨진 밤을 언제까지고 입에 넣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금방 먹어 버리기엔 아까운 단맛이 혀에 감돈다. 그 맛을 꽤 오래 맛보며 뜨거운 다시마차를 한 모금 마신다. 아직 밤을 입에 남겨 두고 다시 다시마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러는 동안에 황밤 조각은 혀 위에서 크게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부푼다. 다시마차가 따뜻하게 데워 주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밤 맛과 차 맛이 얼어붙은 배에 얼마나 사무쳤던가. 그렇게 맛있는 밤과 차의 선율을 나는 알지 못한다.”
--- p.206

“어쨌든 나는 열두 달 동안 흙을 먹는 나날을 산장 부엌에서 실천하며 그에 관한 생각을 되는대로 썼는데, ‘정진요리’의 ‘정진’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열두 달 동안 계속 생각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정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위해 구체적인 재료와 마주하여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고 1년이 지나서야 이것이 ‘정진’이었음을 깨닫고 이제서야 소름이 돋는다. 해 보면 안다는 말은 정말이다. 정진하지 않고서는 ‘정진’을 알 리 없다.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와 푸성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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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붙들고 단숨에 읽었다. 절밥 얘기인데, 아니다. 음식 얘기인데, 또 아니다. 사는 방식에 대한 노련하고 소박한 진술이 가득하다. 그의 글에서 나는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조금 긴 말인데, 정리하면 이렇다. ‘이론과 문자가 요리를 해주지 않는다.’ 그가 왜 음식 철학자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래도록 이 말이 남았다. 덧붙이자면, 그가 만드는 정진요리와 한국의 절밥은 아주 비슷하다. 물론 그 음식은 우리에게서 사라져가는 오랜 밥상과도 닮았다.”
- 박찬일 (요리사, 칼럼니스트)
“일 년 동안 자신의 손으로 거둔 채소나 과실만을 가지고 ‘정진요리’를 만들며 살아가는 삶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제철 식재료를 직접 기르고 가장 좋은 맛을 끌어내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하는 ‘정진’의 과정 자체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연과 벗하며 소박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건드린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흙’을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눈을 들었을 때 문득 인간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달리 보이게 만드는 것. 감히 이 책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 지비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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