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간지의 자연적 특성도 이름에 반영됐다. 몰리(Morley)의 개간지는 황야(moorland)에, 딩글리(Dingley)는 깊고 좁은 골짜기(dingle)에 위치했다. 이븐리(Evenley)의 땅은 평평하고, 로울리(Rowley)의 땅은 거칠고(rough), 스탠리(Stanley)의 땅은 돌이 많고(stony), 랭리(Langley)의 땅은 길쭉한 모양(long-shaped)이었을 것이다. 또한 애슐리(Ashley), 오클리(Oakleigh), 손리(Thornley)처럼 이름의 첫 부분이 그곳에서 자라던 나무를 알려주는 경우도 흔하다. 나무 이름은 파악하기 까다로울 때가 있다. 버클리(Berkeley)에는 자작나무(birch), 브론리(Bronley)에는 검은딸기나무(bramble), 울리(Uley)에는 주목나무(yew), 에이클(Acle)에는 철자로 가늠하기 힘들지만 떡갈나무(oak)가 숨어 있다. Lea가 붙은 이름 중 일부는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가리킨다. 클로블리(Cloverley)에는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 확실하지만, 팔리(Farleigh, ferns양치류)와 리들리(Ridley, reeds갈대)는 조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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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브리튼에서 벌꿀술의 사회적 위치는 달라졌다. 포도주가 상류층의 음료로 자리잡으면서 벌꿀술은 에일, 사과주와 함께 가난한 이들의 음료가 되었다. 그나마 훨씬 만들기 쉬운 에일과 사과주에게 자리를 내주고 2순위로 밀려났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ale(에일)은 15번 등장하지만 mead(벌꿀술)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벌꿀술은 서서히 다시 유행했고, 이따금 새로운 용법과 의미 변화도 생겨났다. 17세기에는 모든 달콤한 음료를 지칭했다. 1632년 로버트 버튼은 러시아식 음주 관행을 지칭하면서 meadinn(주로 벌꿀술을 파는 선술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8세기 영국인들은 mead wine(벌꿀술 와인)을 마셨다.
미국에서 이 이름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사르사 뿌리로 맛을 낸 달콤한 탄산음료를 가리켰다.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은 벌꿀술에 관심이 많다. ‘국제 벌꿀술 협회’가 있어 매년 콜로라도에서 축제를 연다. 관련된 단어도 계속 만들어진다. Meadfest(벌꿀술
축제)는 물론, 수많은 meadery(벌꿀술 양조장)와 mead-lover(벌꿀술 애호가)가 그 예다. 원하면 meadmaking(벌꿀술 제조) 코스를 듣거나, meading(시음회)에 참여하거나, meadzine(벌꿀술 잡지)을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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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놀라움이나 경악의 감탄사로 쓰이는데, 짜증이나 분노가 섞인 경우가 많다. What the devil! What the dickens! What on earth!처럼 강조하는 문구와 함께 써서 표현을 확장할 수도 있다. 감정에 압도당해 말문이 막혔을 때는 뒤의 문장을 그냥 공백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What in the name of …!(도대체가…) What the…!(어째서…)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what은 wot이라는 철자로 둔갑해 감탄사로 이목을 끌었다. 작고 둥근 머리에 코가 길쭉한 남자가 담벼락 위로 두 손을 올린 채 훔쳐보는 그림이 유럽전역에 출몰했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채드’로 언제나 물자가 부족하다고 불평했다. ‘Wot, no eggs?(모, 계란이 없다고?)’, ‘Wot, no petrol?(모, 석유도 떨어졌어?)’ 채드의 이름은 미국에서 ‘킬로이’로 변했다. 만화 캡션도 ‘Kilroy was here(킬로이 왔다 감)’가 되더니, 호주에서는 다시 ‘Foo was here(푸 여기 왔다감)’로 변했다.
채드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만화가 조지 에드워드 채터턴의 별명 챗(Chat)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Wot은 유행어가 되었고 전시 물자 부족에서 벗어난 뒤로도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최근에 누군가 휴대폰 연결이 불량하다고 담벼락에 불평 어린 낙서를 남긴 것을 보았다. ‘Wot, no signal?(모, 신호가 안 잡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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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영어는 아주 초기부터 매우 특색 있는 방언으로 등장했다. 모든 것은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침략하고 잉글랜드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스코틀랜드로 피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환대받았고 13세기 무렵에는 영어가 스코틀랜드 남동부 저지대의 지배적 언어가 되었다. 그러다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하면서 300년에 걸친 전쟁이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영어가 트위드 강 남쪽과 완전히 다른 지역적 특색을 띠는 방향으로 진화했
다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오늘날 스코틀랜드 영어는 다양한 방언과 gang(go 가다), richt(right 옳은), bonnie(pretty 예쁜), mickle(great 대단한) 같은 수천 개의 지역 어휘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쉰다. 일부 단어와 표현은 스코틀랜드 밖으로 전파되었다. 그중 하나가 wee다. 하지만 외부로 나가서 가장 성공한 스코틀랜드 표현에 상을 준다면 전통적으로 새해에 부르는 로버트 번스의 시 〈Auld Lang Syne〉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는 ‘old long since’의 방언으로 ‘옛날을 위해’라는 뜻이다. 그 가사와 곡조는 빌리 조엘, 바비 다린 같은 가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수십 편의 영화에도 등장했다. 영국의 일개 지역 방언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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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의 역사는 흥미롭다. 이 단어는 ‘어머니’를 의미하는 라틴어 mater에서 유래했다. 틴데일은 ‘자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라틴어 mater의 의미 중 하나다. 16세기에는 뭔가가 시작되는 장소, 18세기에는 뭔가가 깊숙이 박혀 있는 구조나 물질, 19세기에는 네트워크로 보이는 뭔가를 구성하는 요소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러다 사회적 네트워크에 이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예가 ‘정치적 매트릭스(political matrix)’다. 20세기 중반에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관계의 그물망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직을 ‘매트릭스 매니지먼트(matrix management)’라고 불렀다.
그 사이에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이 용어를 차용했다. 치과의사들은 충치로 생긴 틈을 메워 임시 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물질을 ‘매트릭스’라고 부른다. 사진사들은 인화 과정에, 인쇄업자들은 금속 활자를 주조하는 주형에, 전기 엔지니어들은 회로에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컴퓨팅에서 글로벌 전자 통신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대중적 용어가 되었다.
키아누 리브스를 위한 무대는 이렇게 마련되었다. 이제 matrix는 한편으로 조직 네트워크를, 다른 편에선 사이버 공간을 구성하는 전자 네트워크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단어가 공상과학계에서 사용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적절하다. 이런 장르에서 ‘매트릭스’를 처음 사용한 작품은 1976년에 방영한 〈닥터 후〉 시리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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