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의 ‘소素’는 누에의 실을 막 뽑아 염색하기 전의 하얀 상태를 의미한다. 하얀 것은 빛을 상징하고, 빛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근본이나 본바탕을 의미한다. ‘박朴’은 다듬기 전의 원목 상태를 말한다. 곧, 소박은 인위적으로 가공되기 전의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이다. 옛 우리말의 ‘고졸하다’는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뜻이다. 완숙함 이후의 어떤 천진한 품격이다. 모든 경지를 넘어선 이후 천진하고 졸렬하기까지 한, 더 높은 상태를 보여 주는 역설이 바로 한국미의 고유성이다. 예술의 대가들이 만년에 이르러 어린아이가 만든 것과 같은 천진하고 소박한 작품을 보여 주는 것도 이러한 미의식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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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사를 포함하여 CNN이 선정한 대표적 한국 사찰 33곳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주 마곡사, 영주 부석사, 구례 사성암,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합천 해인사, 안동 봉정사, 여수 향일암, 남해 금산 보리암, 전남 곡성 태안사, 구례 화엄사, 춘천 청평사, 화순 운주사, 울진 불영사, 김제 모악산 금산사, 보은 속리산 법주사, 순창 감천산 감천사, 경주 함월산 골골사, 정읍 내장산 내장사, 청송 주왕산 대전사, 해남 두륜산 대흥사, 영월 태백산 만경사, 영천 팔공산 백흥암, 부산 금정산 범어사, 동해 두타산 삼화사, 진천 보련산 보탑사, 순천 조계산 선암사, 남양주 운기산 수종사, 화순 쌍봉사, 구례 지리산 연곡사,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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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입구 편백나무 숲은 피톤치드가 가득해 절에 진입하기 전부터 몸이 힐링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송광사의 입구인 일주문이 나온다. 다른 사찰과 달리 세로로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라고 씌어 있어 송광사가 수선修禪을 중시하는 사찰임을 알리고 있다. 최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 앞에는 오래되어 새카만 돌사자가 앉아 있다. 불교와 인연된 사자는 인도환생人道還生을 꿈꾸고 있는 걸까? 돌사자는 앞발 하나를 들어 턱을 고이고 수많은 선 지식들이 드나드는 길가에서 온갖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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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사적 125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5만 6,500평 규모의 울창한 숲은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녹지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녹지축은 창덕궁 뒷산 응봉에서 남산으로 연결되는 서울의 생태축이기도 하다. 종묘는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화려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종묘의 모든 건축은 지극히 절제되고 소박하다. 원래 오방색인 단청도 두 가지 색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신로, 월대, 기단, 담 등 필요한 공간만 만든 구성의 간결함은 종묘 건축을 상징적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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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송정의 소나무는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심은 것으로, 허한 마을의 서북쪽에 소나무를 심어 비보하도록 한 것이다. 억센 부용대의 바위 전체가 마을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여 경관을 순화한다. 지금의 나무들은 그의 후손들이 심은 것으로 수령이 150년 정도이다. 사진에서도 부용대가 저 너머에 희미하게 보인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삼신당 신목은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로, 양진당을 지은 류종혜가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도우며 마을을 지키는 신령스런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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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제대로 흙을 밝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자연과 만나는 기회의 박탈은 우리를 육체적으로 더 힘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든다. 정원은 길들여진 자연이다. 위험성이 제거된 자연이다.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정신과 육체가 쉬면서 여유를 찾게 된다. 맨 자연을 접하기가 쉽지 않을수록 공원이나 정원에라도 가야 한다. 특히 우리의 정원에는 우리 선조들이 그리던 이상 세계, 생명력 넘치는 낙원이 존재한다. 전통 정원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인공적인 도시 생활에 지쳤을 때에는 도심 속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떠나 보자. 천지인이 하나 되는 생명력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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