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만화’의 고루함을 돌파하다
학습만화라 불리는 상당수의 만화들은 4×6배판의 큼지막한 크기에 좋은 종이를 쓰고 컬러로 인쇄한 모양새를 갖고 있다. 이 학습만화들은 ‘학습’이라는 강박증에 시달려 만화의 재미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잘 본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은 이미지 언어에 대해 우호적이기 때문에 잘 보는 것이지 어정쩡한 학습만화가 재미있어서 보는 것은 아니다. 학습 강박증은 만화의 완성도를 곧잘 무시하곤 하는데, 몇 페이지에 한번씩 학습코너를 집어넣으면 만화 자체의 완성도를 대거 상쇄할 수 있다는 완곡한 믿음, 혹은 뻔뻔스러움을 발견할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만화에 학습만화란 있을 수 없다. 만화는 그냥 만화다. ‘학습’이라는 당혹스러운 접두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학습소설? 학습영화? 학습노래? 어울리는가? 당연히 어울리지 않고, 이런 발상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만화에만 학습만화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확산된 것인가? 그것은 만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이다. ‘보통 만화는 어린이들의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지만, 이 만화는 학습에 이롭습니다’라고 항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용어다. 그러니 이 학습만화라는 용어 자체는 만화의 어두운 과거와 오늘을 대변해주는 우울한 용어인 셈이다. 아무튼, 학습만화라는 이름을 얻고 등장한 여러 만화들이 순간의 유행을 따라가며 조악하고 빠르게 생산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빨리빨리 원작의 인기가 식기 전에 만화를 만들어 성공해보자는 관습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런 달갑지 않은 풍토가 관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요즘 진지하게 기획되어 완성된 작품이 등장했다.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다. 우선 몇 가지 측면에서 이 만화의 등장은 반갑다. 첫 번째,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기획이라는 점이다. 성인도서 시장에서 히트한 작품을 만화로 번안하거나 아니면 화제가 된 문화상품을 만화로 번안한 학습만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정사’에 본격
도전한 기획은 높이 살 만하다. 두 번째, 만화의 스타일과 작가의 특징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시백은 1996년 한겨레신문의 만평작가 공모에 당선되어 ‘한겨레그림판’,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발표한 작가다. 박재동보다 조금 더 명랑만화에 가까운, 그래서 1칸짜리 만평보다는 연속되는 이야기가 어울린 박시백의 작화 스타일은 과거 역사의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재현하고, 격동의 순간을 적절한 긴장의 흐름으로 표현하는 데 효율적이다. 세 번째, 만화의 캐릭터가 살아 있다. 아류의 아류, 복제의 복제를 보는 듯한 여타 학습만화에 비해 이 작품은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이 만화 속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1권만 보더라도 정도전이나 정몽주, 이성계, 공민왕 등의 주요 인물은 작가가 해석한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아이콘화하여 캐릭터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만화의 장점이다.
영화라면, 연기자가 등장해 하나의 인물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여러 서사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만화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묘사할 수 있다. 이현세 만화에 등장하는 오혜성의 얼굴만 보더라도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만화의 인물은 또 다른 도상이다. 박시백은 여말선초를 개혁가인 정몽주와 혁명가인 정도전과 이성계의 대립으로 정리했는데, 인파이터형 개혁가 정몽주의 얼굴이나 변방의 장수에서 결국 한 나라를 건국하게 된 이성계의 얼굴, 그리고 이성계와 함께 혁명을 완수한 정도전의 얼굴은 바로 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 캐릭터가 팬시상품이나 유행의 코드를 넘어서 이야기에 안착된 것이다. 네 번째,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문자를 작가가 직접 썼다. 만화에 등장하는 문자도 만화의 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서양만화들은 작가가 직접 쓰거나 아니면 별도의 레터링 인력을 통해 독특한 문자체를 선보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만화에 작가의 글씨가 사라졌다. 이건 아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문자는 그 문자 자체로 발언을 하기 때문에 작가에 의해 직접 제어되는 것이 당연하다.
20권으로 기획된 만화를 1권에서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그러나 <만화 조선왕조실록>이 작품을 완성하고 별도의 독서와 토론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된 점만을 보더라도 이 만화의 탄생은 꽤 반가운 일이다. 만화가 책이 되기 위해서, 진지한 문화가 되기 위해서라도 기존 출판기획인력과 만화의 만남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례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다시 학습만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학습만화를 기획, 출판하려는 많은 분들에게 부탁한다. 먼저 ‘학습만화’라는 용어가 지닌 함정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학습’이라는 강박에 빠지게 되면 ‘만화’의 장점을 잃어버린다. 학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만화책에 별도의 페이지를 집어넣어 수학공식을 설명하고, 역사를 설명하면 학습인가? 아니다. 만화를 통해 무언가 생각하게 만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시작된다. 좋은 학습만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역사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만화 조선왕조실록》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역사 만화로 재해석하여 제공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디지털혁명 시대를 맞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 역사적 시점과 우리 사회가 가야할 미래를 생각하는 박시백 화백의 창조정신의 만남도 보기 좋다. 조선시대가 권력 투쟁의 역사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역사,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삶으로 점철되어 있는 역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박광용(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역사와 만화의 바람직한 교류
태조 이성계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 간에 걸친 《조선왕조실록》은 단일 왕조의 역사로는 세계 최대의 역사서이다. 그 내용의 다양함과 방대함은 국내는 물론 세계의 사학자들이 놀라는 바인데, 더욱 경이로운 것은 그 내용 하나하나가 지극히 정확하다는 점이다. 연산군 때 《성종실록》에 실릴 사초를 둘러싸고 무오사화가 일어나 사관 김일손이 사형당한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확한 역사기록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우리 선조들의 시대정신이 《조선왕조실록》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간 한문본이었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우리말로 국역되었고 또 CD로까지 제작되었으나 그 내용은 여전히 어린 학생들은 물론 일반성인들이 보기에도 어려운 것이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에 자랑할 우리 민족의 보고를 재미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 박시백 선생은 단순히 실록의 내용을 만화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의미까지 정확히 짚어 냄으로써 읽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역사 공부가 될 수 있게 구성했다. 게다가 창작만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풍부한 재미까지 한껏 살려놓은 점에서 역사와 만화의 바람직한 교류라고 할 것이다.
-이덕일(역사평론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읽는 교양 만화
역사를 지루한 과목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야사나 에피소드가 아닌 정사(正史)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긴장’과 ‘흥미’를 늦추지 않고 있어서,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학생과 함께 만화를 읽는 학부모가 되어, 역사가 주는 교훈을 더불어 찾아가려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 김육훈(서울 상계고등학교 역사 교사,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